영원한 방랑자

일단은...나의 국제결혼 생활부터.

by 상윤 Tim Lee

평소 인터넷으로 한글 사이트는 자주 안 간다. 네이버 검색도 한번 한적 없다. 그런데 지난 10일간은 매일, 그것도 거의 밤을 새 가면서 한글로 쓰여진 다른 분들의 인생 이야기를 읽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자세한 이야기들은 나중에 차차 풀기로 하고, 지금 구구절절 읽어 내려가는 다른 분들의 이야기는 바로 국제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한국이나 외국에서 살면서 겪는 행복이나 어려움 등에 관한 것이다. 런던에서 만나 같이 살던 루마니아인 아내와 2세 반 혼혈아 딸을 데리고 1년간 서울에 살면서, 여기에 정착할지 아니면 런던으로 돌아갈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에 와닿는 얘기도 많고 공감도 많이 갔지만, 아무리 뒤져봐도 정작 내가 처한 상황, 내가 하는 고민들과 속시원하게 들어맞는 인생사는 찾을 수가 없었다. 아마 그 이유는


1. 대부분, 아니, 100퍼센트 국제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분들은 외국인과 결혼한 여성분들이다. 그런데 나는 남성이다...

2. 내 아내는 루마니아인이지만 우리는 런던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영어로만 소통한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배우자와의 언어 소통에 관해 쓰는데, 정작 나는 9살까지는 미국에서 자라서 한국어든 영어든 그냥 둘다 편하다. 오히려 영어는 내가 원어민이기 때문에 아내가 종종 언어 소통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한다.

3. 비슷한 이유로, 한국에서 대부분 학교를 마치고 군대까지 15년 살았지만, 미국에 총 15년 (어려서 9년, 유학가서 6년), 독일에 6년, 프랑스에 2년, 영국에 6년을 산 나는 그냥 방랑자로 사는 게 익숙해졌고, 지금까지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 생각을 제외하면 굳이 어딜 살아도 별 상관이 없었다. 중년까지도 가끔 정체성의 혼란이 온다. 물론 나 자신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고, 항상 한국을 고향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족과 옛날 학교 친구들을 제외하면 한국보다 미국이나 유럽 어디를 가도 친구와 지인이 더 많다. 그중에 "한인 친구"는 단 한 명도 없다.


그럼에도 지금 왜 서울에 정착하고픈 마음이 생길까, 열흘을 밤새워 복잡한 마음과 생각을 정리해 보니 크게 두가지인 것 같다.


1. 나는 방랑자이지만, 영국인이라는 의식은 전혀 없고 그런 의식을 키울 생각도 없다. 런던같은 문화 잡종 대도시에 사니까 살지 영국의 다른 곳에 살라면 별로 살고 싶지 않다. 나나 아내나 고국에 대한 정체성은 확실하지만, 아내는 아이를 루마니아에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단다. 그런데 아이가 커가면서 정작 나는 아이를 영국인으로 자라게 놔둘 것인가, 한국인으로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더라. 이 점에 대해서는 국제결혼한 엄마들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닿았다. 왠지 아이와는 편하게 한국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영어로 소통하는 게 낯설어서라기보다는 언어에 스며들, 영국이라는 문화를 기반으로 소통하는 게 싫어서. 반대로 내가 한국 얘기를 하면 그게 아이의 직관에 와닿기를 바라서.

2. 아이를 제외하면 지금 한국으로 와야겠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지만, 왠지 은퇴하고 나이들었을 때는 한국에 있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런던에 아무리 친구가 많아도, 어쨌든 그네들도 영국사람은 아니고 (한국 사람도 아니다) 나와 마찬가지로 방랑 인생들이 많아서 언제든 떠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렇게 되면 노년에 너무 외로울 것 같다. 그러면 그냥 진작에 들어와 사는 게 좋지 않을까? 한국의 친한 친구들은 주욱 한국에 정착해 사니까. 의료보험이 뛰어난 건 그에 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내가 한국에 있고 싶은 이유들이, 우리 가족들을 생각하면 상당히 이기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나와 딸을 위해서라면 한국에 살아보려고 노력을 해보겠다고 말을 했지만, 마흔 다돼서 한국말도 못하는데 한국에서 아이 키우면서 남편 뒷바라지나 하는 삶이, 아무리 한국 음식이 맛있고 서울이 안전하고 일상생활이 편리해도 너무나도 큰 희생인 것 같다. 거기다가 아무리 한국에 다문화 가정, 혼혈아가 많아졌다고는 해도, 런던에 살아도 되는데 나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 3중 국적인 이 아이를 서울에서 키우는 것도 뭔가 공정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 그냥 1년간의 안식년이 끝나면 런던에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정착할 기회를 주었던 한국의 대학에게는 정말 감사하고, 임용 포기를 하게 되면 많은 불편을 끼쳐드려서 죄송하면서도, 나 하나의 아쉬움 때문에 가족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을 했다. 이제 연로하신 부모님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 그리고 평생 정체성 문제로 우왕좌왕하던 내가 아, 이제는 내가 정말로 한국을 등지는구나, 생각하니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살다보니 그렇게 됐다. 나는 언제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찌보면 20년 넘게 외국을 방랑하고 외국인 가족까지 만난 내가 아직까지도 그런 생각을 한 것 자체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리고 지금 내가 생각해봐도, 우스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그냥 한국에 돌아갈 수 없는, 어릴 때는 교포였다가 한때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에 정착할 수도 있었겠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스스로의 의지로 그냥 해외 동포가 된 것이다...


가슴이 아파서, 아무도 읽을지 알 수 없는 여기에 설을 풀게 되었다. 어느 누군가는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가 안된다 하더라도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공감해 줄 수 있을까. 언젠가는 아내도 한글을 배우던지, 번역기를 돌려서라도 이 글들을 읽게 될까.


그것도 아니라면,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실테니까. 이제부터 평생 떠돌던 나의 인생을 정리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