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꼬마 손님이 있었다. 보통의 꼬마 손님들은 치즈파이나 초코파이를 선호하는데 이 특별한 친구는 호두파이를 좋아했다.
그 당시는 파이집이 4시에 닫을 때였다. 간혹 단체 주문 준비로 6시 넘도록 열려 있을 때면 이 꼬마 손님이 나타났다.
알고 보니 맞벌이하는 부모님이 6시 넘어서 유치원에서 데려오기 때문이었다.
엄마를 따라 파이집에 온 첫 만남에서 이 꼬마 손님에 대해 많은 걸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친구는 수다쟁이었다. 문 열고 들어온 순간부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인데요! 5살이에요! 사랑유치원 햇님반이에요! 엄마랑 호두파이 사러 왔어요! 호두파이 하나 주세요!"
엄마가 말릴 틈도 없이 하고 싶은 말을 와다다다 쏟아냈다.
그날부터 우린 친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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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6시 넘어까지 파이집을 열어둘 때면 난 꼬마 손님을 기다리게 됐다. 그러면 어김없이 그녀가 나타났다.
사실 처음엔 대부분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 말 속도가 빠른데 비해 발음이 부정확한 아가 발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름을 다시 물어보고 싶었는데 못 알아듣는 게 미안해서 못 물어봤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다시 알아낼 수 있나 고민하다가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녀의 다음 방문 때 물었다.
"친구야! 혹시 한글로 이름 쓸 줄 알아?"
"네! 저 글씨 잘 써요!"
냉큼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종이에 끼적였다. 짜잔 하고 내민 종이를 받아 들고 당황스러웠다. 내 능력으론 읽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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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물어봤다.
"친구야, 이 글씨 뭐라고 쓴 건지 한번 읽어봐 줄래?"
"라원! 정라원!"
"아! 라원아 고마워! 맛있게 먹어~"
그렇게 꼬마 단골손님의 이름을 알게 됐다.
그동안 엄마는 뭐 했냐고? 엄마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독립심 강한 라원이가 혼자 호두파이를 사 오겠다고주장하는 바람에 엄마는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라원이는 이후에도 수많은 TMI를 방출했다. 아빠랑 파이집에 온 어느 날, 라원이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