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랫동안 기술 발전을 하나의 공식처럼 이해해왔다.
기술이 발전하면 생산성이 높아지고, 생산성이 높아지면 일자리가 늘어나며, 그 결과 사회는 더 풍요로워진다는 공식이다.
이 공식은 오랫동안 유효했다.
증기기관, 전기, 컴퓨터, 인터넷까지, 기술은 언제나 새로운 일을 만들어냈고,
사람들은 노동을 통해 소득을 얻으며 그 소득으로 다시 시장을 지탱했다.
하지만 AI와 로봇의 등장은
이 오래된 공식에 처음으로 균열을 만들고 있다.
AI와 로봇은 분명 생산성을 극대화한다.
문제는 그만큼 대체되는 일자리도 함께 늘어난다는 점이다.
일자리가 대체되면, 노동을 통해 창출되는 전체 소득의 규모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근로소득자는 약 2,085만 명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소비 기반 상당 부분이 여전히 노동을 통한 소득 위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AI와 로봇의 발전은
이 근로소득 기반의 경제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기업은 생산성을 높였지만, 그 생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 소비 여력은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 변화는 단기적인 경기 변동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신호다.
일자리가 줄고 근로소득이 감소하면, 소비는 자연스럽게 한계에 부딪힌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전망을 내놓는다.
생산성이 극대화되면서 물가는 크게 하락하고,
소득이 줄어들더라도 소비 여력은 유지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오히려 남는 돈이 자산이나 투자로 흘러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이 전망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다.
물가가 하락하더라도 소득 기반이 약화된 사회에서
소비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소비는 가격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소비는 소득의 안정성과 미래에 대한 확신에 의해 결정된다.
아무리 자율주행 택시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하더라도,
경제적 안정성이 없는 사람은 그 선택을 쉽게 하지 않는다.
이 경우 기업의 수익 구조는 오히려 더 취약해질 가능성이 커진다.
가격이 내려간 만큼 이용자가 늘어나야 매출이 유지되지만,
소비 자체가 위축되면 생산성의 향상은 곧바로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전망도 존재한다.
정부의 이전소득이 확대되면서, 사람들은 생계 걱정 없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나 역시 그런 사회가 가능하다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피하기 어려운 질문이 남는다.
이전소득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할 재정의 기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는 문제다.
기업의 수익성이 약화되면 세수 역시 함께 줄어든다.
특히 근로소득이 세수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는 사회에서는
이 구조적 압박이 더욱 크다.
세입 기반이 약화된 상황에서 이전소득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내가 우려하는 AI 시대의 경제 패러다임이다.
생산성은 높아지지만, 그 성과를 순환시키는 구조는
오히려 취약해질 수 있는 미래.
우리는 지금 그 가능성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