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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온 Nov 10. 2024

책 '죽여 마땅한 사람들' 리뷰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릴리에게 감정이입하게 되는 책

* 이 리뷰는 스포가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를 원하지 않는 분은 뒤로 가기 눌러 주세요.


* 이 글의 내용은 철저히 작성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


유명한 책인 거 같은데 나는 처음 보는 제목이었다. 제목만 봐도 '나 스릴러예요~'라는 분위기를 풍기는 책은 오랜만이었다. 원래 범죄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세상에 판치는 범죄만 해도 머리 아픈데, 내가 굳이 문화생활을 향유하면서까지 그런 내용을 접해야 하나 싶어서. 그런데 이 책을 보니 재미도 재미였지만 생각이 많아졌다. 세상에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존재하긴 할까. 희대의 연쇄살인마, 각종 성폭행을 일삼은 범죄자,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사기꾼 등 뉴스에 나오는 범죄들을 보면 '저 사람은 죽어도 싸'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러나 과연 그게 맞는 말인가. 그렇게 말하는 나는 완전무결한가.


이 책에 나온 릴리는 어릴 적 본인의 몸을 바라보는 쳇의 눈길에서 성적 불쾌감을 느낀다. 그 후에 쳇이 본인의 방에 찾아와 자위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를 죽이기로 결심하는데, 아주 계획적이고 치밀해서 언뜻 보면 도저히 13살의 범죄 계획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감탄하면 안 되는 일이지만 절로 감탄이 나왔다. '와, 이렇게까지 계획한다고?'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릴리는 사이코패스인데, 이 책을 쭉 읽다 보면 릴리의 그런 면모를 유추할 수 있는 구절이 나온다. (북마크를 해 두지 않아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살인이라는 행위는 내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 완벽한 증거라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릴리가 본인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그저 '사회의 악'인 사람들을, 썩은 사과 몇 개를 신의 의도보다 조금 일찍 추려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생각에 의문을 던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브래드 다겟은? 브래드는 왜 죽인 거지? 단순히 테드를 좋아하는 마음을 품게 되어서? 미란다는 에릭과 바람을 피웠다는 이유로 (사실 이것도 살인이 정당화되는 이유에 포함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였다고 치더라도, 미란다와 바람을 피운 브래드는 아무리 생각해도 죽일 이유가 없었다. 이 책에도 나온다. 무고한 사람을 죽인 거라고. 그런데 릴리는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쳇을 떨어뜨린 우물에 가 브래드를 떨어뜨리며 범죄가 완전히 묻히길 바란다.


내 글을 읽고 이 책을 찾아 읽을 분들이 계신다면 꼭 옮긴이의 말까지 읽어 보시길 추천드린다. 내가 생각해 보지 못한 사고의 폭을 넓혀 주었다. 낙엽을 치워야겠다고 한 일, 갑자기 밤에 릴리의 아빠가 소리 지르며 깬 일이 과연 우연일까,라는 말에서 소름이 돋았다. 뜬금없이 환경운동가처럼 행동하던 엄마도, 설마.... 릴리의 살인 행위를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작가가 이 대목을 집어넣은 이유도 어떻게 해서든 시체를 막기 위한 부모님의 분투라는 걸 알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부모의 사랑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식이 살인자라는 걸 알면서도 숨기고 싶은, 그런 마음은 과연 사랑일까.


지금도 아이러니한 건, 릴리가 밉지 않다는 것이다. 희대의 살인마라고 욕해도 모자랄 판에, 릴리가 밉지 않다니.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잘못되었다는 알면서도, 릴리의 입장에서 쓰인 부분이 많다 보니 어쩔 없이 릴리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것일까. 이러면 안 되는데.... 싶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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