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꽃눈 아래서 기다리는 봄

by 옥빛두루 이경주

봄은 늘 같은 자리로 돌아오지만, 그 봄을 맞는 사람의 마음은 해마다 조금씩 다르다. 어떤 봄은 설렘으로 오고, 어떤 봄은 간절한 기도를 품고 온다. 같은 햇살 아래에서도 누구는 새 출발을 꿈꾸고, 누구는 그저 무사한 하루를 바라며 두 손을 모은다. 그래서 봄은 계절이기 전에, 저마다의 마음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한 편의 사연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나는 문득문득 생각한다. 삶이 얼마나 여리고도 귀한 것인지. 아침 창으로 스미는 햇살 한 줌, 나뭇가지 끝에 맺힌 꽃눈 하나,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나누는 밥 한 끼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날들이다. 예전에는 미처 지나쳤던 것들이 이제는 마음을 붙들어 주는 작은 기적처럼 다가온다.

내 오랜 벗은 오랜 시간 남편의 병과 함께 살아왔다. 생과 사의 경계가 흔들리는 고비를 여러 번 지나며, 말로 다 할 수 없는 날들을 견뎌 왔다. 곁에서 지켜보는 나조차 마음이 저미는데, 그 시간을 온몸으로 살아낸 친구의 심정은 얼마나 깊고 아렸을까. 감히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견딘 세월의 무게만큼 친구의 눈빛도, 침묵도 이전보다 더 깊어졌으리라 짐작해 본다.

그럼에도 그 집에는 사랑이 있었다. 어쩌면 아픔이 깊었던 만큼 사랑도 더 단단해졌는지 모른다. 아이들은 어느새 부모의 손을 잡아 주는 어른스러운 마음으로 자라났고, 엄마 아빠의 흔들리는 시간을 제 자리에서 함께 버텨 주었다. 그리고 세월은 또 흘러, 그 아이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삶은 참으로 이상하다. 가장 아픈 자리 한가운데에서도 꽃처럼 눈부신 순간을 남겨 두기 때문이다.

나는 기도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삶의 저무는 들녘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건너는 그 친구가, 어느 날 문득 하얀 목련의 꽃봉오리를 바라보다 다시 희망을 품게 되기를. 햇살을 머금고 환하게 피어날 그 꽃을 기다리며, 그 나무 아래서 한없이 꽃을 바라보고 행복해할 수 있기를. 아픈 시간을 아직 다 지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오늘 하루만큼은 “참 곱다, 참 좋다” 하고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집 앞에도 목련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요즘 그 나무를 보면 꽃눈이 탱글탱글하게 부풀어 올라 있다. 아직 활짝 피지는 않았지만, 마치 곧 세상을 환하게 밝히겠다는 듯 잔뜩 기운을 머금고 있다. 그 봉오리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마음이 설렌다. 올해는 또 얼마나 고운 꽃을 피워 낼까 생각하면, 봄은 이미 가지 끝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목련을 볼 때마다 친구를 떠올린다. 친구도 저 목련처럼 다시 기운을 얻고, 아프지 말고, 부디 건강을 되찾아 봄 햇살 아래 환하게 웃는 날이 많아지기를 바라게 된다. 꽃은 제때가 되면 피어나듯, 사람의 마음에도 다시 피어나는 시간이 있다고 믿고 싶다. 지금은 비록 긴 겨울의 끝자락에 서 있을지라도, 그 끝에서 분명 봄은 오고 있다고.

오늘 저녁, 나는 그 친구를 만나러 간다. 기운을 내라고 맛있는 음식을 사 주려 한다. 거창한 위로나 화려한 말보다, 함께 앉아 따뜻한 음식을 나누는 시간이 더 큰 힘이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말없이 국 한 숟갈을 떠 주고, 잘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만히 웃어 주는 일. 어쩌면 그런 사소한 시간이야말로 상처 난 마음을 가장 조용히 어루만지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하루를 조금 덜 외롭게 해 주는 일. 그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사랑일지 모른다. 봄은 해마다 돌아오지만, 그 봄을 견디고 맞아 내는 마음은 모두 다르다. 그래서 어떤 봄은 꽃보다 사람이 먼저 떠오른다. 올해 내게 목련은 봄의 상징이기보다, 아픈 시간을 지나고 있는 친구를 위한 기도이며, 끝내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목련이 끝내 하얗게 피어나듯, 친구의 날들에도 다시 환한 웃음이 피어날 것임을. 그 믿음 하나로 오늘도 나는 봄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