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맛이 든다.

설익은 내 손에도 땅맛이 들면 좋겠다.

by 이슬

할머니의 언어로 아이들과 이야기한다.

볍씨라고 하지만 벼알곡이 붙어있을 때 할머니는 나락이라고 한단다.

간단하지만 단어하나에 역사와 이야기가 지역이 담겨있다.

그래서 사투리를 혹은 이제는 잘 쓰지 않는 언어로 아이들에게 텃밭을 들려주는 일은 의아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단어가 아니면 담을 수 없는 정서와 색이 있다.

내가 할머니에게서 배운 그대로 말이다.


지주대에 8자로 끈 묶는 것을 알려주던 때였다.

친구하나가 내손을 가리키며 말했다.


"으이그~~ 이슬 손톱 때 좀 봐봐. 더러워"

"아 이거?"

그때 부리나케 옆에 친구가 말했다.

(텃밭에서는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 스스로 정한 별명으로 불린다. 말에서부터 문턱을 만들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이 담긴 방법이다.)

"야 이슬은 맨날 이렇게 흙이랑 일하니까 그런 거지"

퍼뜩 당황해하는 친구의 표정에 슬며시 웃음이 났다.

"맞아. 할머니가 장갑 끼고 하랬는데 잘 안 껴져.

이슬은 손에 흙이 낀 게 좋아!"

더럽다던 친구가 내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슬은 매일매일 흙을 만지니까 그런 거구나?!"


내손을 옹호하던 친구는 나는 다 안다 는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고 더럽다던 흙때 낀 손을 잡아주는 친구의 표정은 금세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나도 이슬 손 좋아!"

"나도 내손 좋아:0"


잊고 싶지 않은 예쁜 순간이었다.

장갑 끼고 해라 손이 못나 시집이나 가겠냐며 타박하던 할머니 말소리가 맴돌았다.

나를 아끼는 이들의 걱정 어린 잔소리 뒤로 다른 생각도 났다.

흙때 좀 낀 거친 손이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이었다면 할머니도 덜 걱정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스쳤다.


힘든 시간이다.

할머니의 안부를 종종 묻는 아이들에게 이슬은 이제 할머니 없어하고 담담하고 답하고 나면 속이 애리다.

수업을 할 때마다 내게 남은 나의 할머니를, 그지혜를 아이들과 공유한다.


"이사 간 어린 식물들의 마음은 어떨까?

이사를 잘 마친 친구들은 씩씩하게 세상을 살아나간다.

그렇게 씩씩해진 친구들을 할머니는 땅맛이 들었다고 얘기한단다."


아이들이 텃밭에서 '이제 땅맛이 들었나?'하고 말하며 작물을 들여다본다.


미생물과 땅속생명들의 힘을 받으며 작물이 밥값을 하는 때.

그 힘차고도 복잡한 이론을 할머니는 모르지만 알고 있었다.


[땅맛이 든다]


그만큼 정확하고 명쾌한 표현이 없다.

활착을 잘했다거나 자리를 잡았다 같은 표현이 담지 못하는 과학적 근거와 철학, 관계, 문화가 있다.


할머니의 언어를 나눈다.

흙때 낀 손이 나는 좋다.

대단케 보는 것도 하찮게 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손이 그런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아이들을 보며

쭈글쭈글하고 까맣고 그렇게 호미자루 쥔 자리에 두둑이 굳은살이 박인 할머니의 손이 생각난다.

할머니는 그런 손을 내놓기 부끄럽다며 손톱, 발톱을 깎아드릴 때마다

"즈 할머니니까 더러운데도 깎아준다"며 기특해하기도 부끄러워하기도 미안해하기도 하셨지만.

나는 좋았다.


풍신 나게 흙때끼고 슬며시 단단해지는 손이 할머니를 더 닮으면 좋겠다.

돌아가신 할머니생각에 할머니가 보면 속상할까 봐 장갑을 찾아 끼고

일하다 보면 답답해 얼마못가 벗어던지고

다시 할머니생각에 주섬주섬 장갑을 주워 낀다.


설익은 내손이 땅맛이 들려면 그렇게 보호와 그늘 없이 뿌리내리려면 어찌해야 할지 바닥을 더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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