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에 대한 두려움

by 엣지있는 김작가

어릴 때부터 아빠와 유대 관계가 없었던 나는

남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집안의 유일한 남자였던 아빠는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혼자 자라,

가족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집에 있는 날이면 늘 잠을 자거나,

TV를 보는 일이 전부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부터는

외국에서 지내시며 일 년에 한 번,

12월 보름 정도 한국에 머무르다 가셨다.

그 빈자리는 내 안에서

남자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라났다.


어릴 때 나는 예쁘장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지만

남자아이들과 어울리거나,

누군가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건

언제나 두려운 일이었다.


중학교 시절,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생겼지만

3년 내내 고백하지 못했다.

나중에 그 친구가 용기 내어 고백했을 때도

“그냥 친구로 지내자.”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지만

왠지 모를 불안이 내 발목을 잡았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는

그 두려움이 더 깊어졌다.

등교 버스가 만원일 때,

남자고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타야 하는 순간이면

나는 중간에 내려

다음 버스를 타곤 했다.


지각을 하면 방송부 선배들에게 혼이 나곤 했지만

그보다 버스 안에서 견디는 일이 더 힘들었다.


아마 그건 중학교 2학년 때의 일 때문이었을 것이다.

친구 집에 놀러가려고 빌라 계단을 오르던 중,

사복 차림의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너무 놀라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그저 친구 집으로 뛰어 올라가 숨었다.

무섭고, 부끄럽고, 서러웠다.


그날 집엔 아무도 없었다.

도움을 청할 곳도,

기댈 어른도 없었다.

나는 혼자 울며 공포를 삼켜야 했다.


그때부터였다.

남자라는 존재가 두렵기 시작한 게.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그 두려움은 서서히 옅어졌다.

여중, 여고만 다니다가 처음으로

남자아이들과 같은 교실에 앉아보니

‘남자도 그냥 사람이구나’

그제야 조금씩 안심이 됐다.


부산에서 경기도로 올라와

기숙사 생활을 하던 시절,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사귀었고

첫사랑과 첫키스를 경험했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노래하고 춤추는 걸 좋아했고,

학교 행사마다 무대를 꾸미며 행복해했다.

선생님들도 종종 수업 시간에 노래를 시키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그 시절의 나는

가수가 되어 돈을 많이 벌고,

그 돈으로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돈이 많으면,

우린 다시 함께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또 다른 꿈도 있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주는 엄마가 되는 일.


당시엔 막장드라마보다

‘가족의 온기’가 그려진 드라마가 많았다.

나는 그 화면 속의 평범한 가정을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아빠는 집에 없고,

엄마는 늘 바빴던 우리 집이 아니라

아이들이 돌아오면 간식을 내어주는 그런 집.

나는 그런 ‘보통의 가정’을 꿈꿨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사랑보다 ‘안정’을 꿈꾸었다.

결핍이 만든 환상 속에서

보통의 행복을 바랐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야 안다.

그 모든 두려움과 결핍이

지금의 나를 만든 힘이었다는 걸.


“쓰는 건 살아내는 일과 같다.”


나는 오늘도,

그렇게 살아내고 있다.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