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국내 출판시장 트렌드
최근 출판사 편집장들과 ‘팔리는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집장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저자의 영향력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죠. 저자가 얼마나 판로를 열 수 있는지가 계약의 중요한 관건이 되고요.”
책 읽는 사람들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책을 쓰고 싶은 사람들은 오히려 늘어만 가는 시대, 수많은 투고 원고 중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건 결국 영향력 있는 저자의 기획물이다. 물론 출판사의 마케팅도 중요하다. 그러나 자본의 논리에 의해 마케팅력이 좌우되는 폭이 큰 이 시장에서 ‘읽지 않는 독자’까지 끌어와야 베스트셀러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걸 고려하면, 애초에 팬덤이 있는 저자의 책을 출간하는 게 출판사 입장에선 수지타산이 맞다.
과거, 등단이 중요했던 시대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떠했을까. 이전에는 ‘작가’라고 하면 ‘등단’한 이들을 일컫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출판사에 투고 후 책을 출간하는 것이 일반적인 서구권과는 달리 한국과 일본은 특이하게도 등단 제도가 존재한다. 과거 제도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는데, 과거에서 급제를 한 사람이 관리가 되었듯 등단을 하게 되면 ‘진짜 작가’로서 인정을 받게 되고 암묵적으로 책을 낼 자격이 주어졌다. 따라서 비등단 작가는 상대적으로 인정을 받기 힘들었고 비등단 작가로서 책을 내더라도 등단에의 꿈을 꾸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들이 한 권의 책을 출간하기 위해서는 대개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등단작인 단편 작품만으로는 한 권의 책을 만들 수 없기에 더욱 많은 작품들과 장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의 작품을 책으로 출간할지 여부는 출판사가 결정하게 되므로 작가들은 신문사의 선택과는 별개로 출판사의 선택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결국 신춘문예 등단이라는 것은 작가로서 인정받으면서 책을 출간할 가능성을 ‘높여주는’ 셈이었다.
그래서 각광받은 것이 각 출판사들의 공모 시스템이었다. 문학동네는 1995년 문학동네소설상을 신설했다. 2010년에는 등단 10년 이내 작가의 중단편소설을 심사 대상으로 한 문학동네젊은작가상을 제정했다. 2017년부터는 문학동네소설상, 문학동네작가상,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이 모두 '문학동네소설상'으로 통합되었다. 이 외에도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이 있다. 창비는 2007년부터 창비장편소설상과 창비청소년문학상 공모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창비신인문학상(시/소설/평론)을 통해서는 신인 작가들을 발굴한다. 두 출판사 외에도 문학과지성사가 문학과사회신인상(시/소설), 마해송문학상을, 자음과모음이 신인문학상과 청소년문학상 공모를 통해 안정적으로 출판 원고를 확보하고 작가들을 배출하는 산실이 되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TV 외에도 OTT, SNS 등에 여가 시간을 할애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책을 읽는 사람들은 매해 줄어들기 시작했다. 우리 출판계의 ‘웃픈’ 소리로 전해지는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을 매년 겪다 보니 더 이상 ‘등단’은 과거와 같은 지위를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이 시기, 공교롭게도 등단 제도에 대한 비평적 논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신경숙 표절 사태 이후 불안 요소로 작동하던 문단 권력 문제와 함께 등단 제도에 관한 비판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2018년 장강명은 《당선, 합격, 계급》(민음사)을 통해 문학상이 어떻게 좌절의 시스템이 되었는지 살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20년, 곪을 대로 곪았다 터져 나온 이상문학상 불공정 계약 문제는 그 정점이었다.
현재, 저자 파워가 중요한 시대
2022년 현재, 이제 책을 쓰고 출판하기 위해서는 등단 유무보다는 저자에게 구매를 추동할 만한 팬덤이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저자에게 파워가 있다면 등단하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책을 쓰고 출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최근 국내 출판시장의 책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먼저 이전부터 계속해서 작품을 출간해왔기에 기존 팬덤이 공고한 작가의 책들이 있다. 2022년 8월 12일 현재 베스트셀러 목록을 기준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김훈(《하얼빈》, 문학동네), 김영하(《작별인사 》, 복복서가), 이어령(《눈물 한 방울》, 김영사) 등의 책이 여기에 해당된다.
두 번째로 원래 지니고 있던 팬덤을 바탕으로 출판시장에 진입한 경우가 있다. 인플루언서의 책들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물론 이러한 책들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저자의 직업만 바뀌었을 뿐. 과거에는 연예인이나 셀럽의 책들이 여기에 해당했다. 이후 팟캐스트가 유행하면서 한때는 유명 팟캐스트 진행자들의 책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특히 동명의 팟캐스트를 바탕으로 2014년 겨울에 출간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초판 한빛비즈, 개정판 웨일북)은 밀리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이 즈음 트위터리안의 책들이 출간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인스타그래머 등 SNS 스타들의 책이 다수 출간되었다. 요즘은 유튜버들의 책이 쏟아지고 있다. 유튜브 채널 ‘라이프해커 자청’의 운영자 자청의 ‘돈·시간·운명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는 7단계 인생 공략집’ 《역행자》(웅진지식하우스), ‘월급쟁이부자들TV’의 진행자 너나위의 100억 자산 시스템 마련법 《월급쟁이 부자로 은퇴하라》(RHK), 채널 ‘이연LEEYEON’을 운영하는 유튜버 이연의 그림 에세이 《매일을 헤엄치는 법》(푸른숲) 등은 공고한 유튜브 구독자 수를 바탕으로 출판시장에 진입한 경우다.
한편 커뮤니티의 팬덤을 바탕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경우도 있다. 김동식의 《회색 인간》, 《세상에서 가장 약한 요괴》, 《13일의 김남우》(이상 요다)는 그가 ‘오늘의유머’ 공포게시판에 ‘복날은간다’라는 아이디로 업로드한 300여 편의 초단편소설 중 66편을 선별해 출간한 책들이다. 그는 성수동 주물공장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반까지 벽을 보고 앉아 주물 틀에 아연 물을 넣으며 머릿속에서는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 낸 이야기를 2016년 5월, 오늘의유머 공포게시판에 업로드한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창작, 업로드, 댓글 살피기, 수정을 반복했고, 언젠가부터 그의 글들이 자주 ‘베오베’에 가게 되면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후 2017년, 그의 소설집이 출간되자 오늘의유머 이용자들은 ‘구매인증’ 릴레이를 펼치며 ‘오유’ 출신 작가를 응원했고 2021년 11월, 《회색 인간》은 이러한 팬덤을 기반으로 50쇄를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세 번째는 기존에 견고한 팬덤이 없던 이들이 팬을 만들어 작가가 되는 경우다. 독립출판, 텀블벅 등의 방식을 택하는 경우, 출판사라는 스텝 자체를 건너뛴 뒤 원고 작성부터 디자인, 책 제작, 유통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낸다. 일부는 시장성을 검증받아 기성출판 시장으로 진입, 상업출판으로 재출간된다. 이미예의《달러구트 꿈 백화점》(전 2권, 팩토리나인), 백세희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흔)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시작은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였다. 이 책은 텀블벅 펀딩 목표 금액의 1812%를 달성(987명 후원)했고, 이후 입소문을 타면서 제목을 바꿔 상업출판으로 재출간되었다.《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시작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은 2000만 원(1292명 후원)으로 제작한 독립출판물이었다. 특히 독립출판 붐, 독립서점 증가와 맞물려 늘어난 독립출판 제작 클래스도 누구나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것에 불을 당겼다. 독립출판은 상업출판보다 저자만의 개성을 잘 살린 책을 출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지점을 확보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미래, 새로운 연결의 시대
이 외에 살펴볼 만한 국내 출판 시장 트렌드로 2015년부터 등장한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수상 책들을 꼽을 수 있다. 브런치는 카카오의 콘텐츠 퍼블리싱 플랫폼으로, 2015년부터 2021년 동안 8회에 걸쳐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통해 출간된 책은 총 131권이다. 지난 7월 18일에는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의 수상자는 276명, 수상작은 289개다. 브런치 측에 따르면 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는 전년보다 58% 늘어난 총 6000여 편의 브런치북이 응모됐다. 이 중 문학동네, 위즈덤하우스, 민음사 등 열 곳의 파트너 출판사가 각각 한 편씩, 총 열 편의 대상작을 선정해 도서로 출간했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는 신춘문예와는 달리 작가와 출판사를 연결해 출간까지 이르게 만들면서 또 다른 작가 등용문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제5회 브런치북 프로젝트 은상 수상작인 《90년생이 온다》(웨일북)는 장기간 베스트셀러 순위를 지키며 2018년〈올해의 경제경영서〉(<한국경제신문>, 인터파크 공동 선정)에 뽑혔으며, 2019년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책〉(경제/경영부문)과 주요 서점이 뽑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자신의 노하우 콘텐츠를 PDF(상품)로 간략하게 정리해 전자책으로 만들고 판매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런 전자책들은 프리랜서/아웃소싱 플랫폼 크몽, 온오프라인 클래스 플랫폼 탈잉,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 클래스 101에서 다수 판매되고 있는데, 이러한 플랫폼들은 셀러seller(프리랜서)와 바이어buyer(기업/개인)를 연결해 주는 매칭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 플랫폼들을 통해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노하우를 책으로 제작, 판매할 수 있으면서도 전자책이기에 종이책만큼의 제작비용이 들지 않아 각광받고 있다. 이른바 ‘전자책 부업’이라는 트렌드를 만들기도 했다.
지금까지 2022년 국내 출판시장의 트렌드를 살펴보았다. 과거의 등단 시스템에서 더 나아가 취향과 팬덤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작가들이 등장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저자 파워를 쌓아가며 출판시장에 진입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팬덤은 열정을 구매력으로 전환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이밖에도 연결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출판의 모습들과 책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도 살펴볼 수 있었다.
쓰는 사람은 많고 읽는 사람은 적은 시대를 지나 미래의 국내 출판시장은 또 어떠한 양태로 진화할까.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OTT와 인터넷, 데이터와 경쟁하더라도 반드시 책을 통해서만 마주하게 되는 연결과 경험이 있다는 거다. 미래의 출판은 이 본질에서 시작된다.
김미향 출판평론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웹진 <K-Book Trends> 9월 호(50호) 웹진 TOPIC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s://www.kbook-eng.or.kr/sub/trend.php?ptype=view&idx=1061&code=trend&category=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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