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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뭉치 May 13. 2024

서로에게 기대어 보낸 찰나의 시절, 기억은 힘이 세다


《로봇 드림》사라 바론 지음 l 출판사 놀 l 가격 1만9800원


글 없이 그림만 활용한 독특한 형식으로 감동적인 스토리를 전달하는 그래픽 노블이에요.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하나의 장면이 더 큰 울림을 자아내기도 하는 법이지요. 이미 익숙한 언어적 틀에서 벗어나 각 장면의 의미와 캐릭터들의 감정을 추론하면서 자신만의 상상력과 경험을 활용해 해석하는 과정은 독서 경험을 보다 깊이 있게 만들어 줄 거예요.


적막한 도시에 사는 ‘개’는 손수 조립한 ‘로봇’과 둘도 없는 단짝이 돼요. 그러나 여름을 맞아 떠난 해변에서 로봇이 바닷물에 녹이 슬어 꼼짝할 수 없게 돼요. 대부분의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요.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오고 말아요.   


개는 도시로 돌아가 해결책을 찾아 헤매요. 수리용품을 들고 다시 해변으로 돌아간 개는 충격에 빠져요. 해변은 이미 폐장되어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로봇만 해변에 남겨진 채 계절은 흘러가요. 개와의 행복했던 기억만이 해변에 홀로 남은 로봇을 버틸 수 있게 해 줘요. 행복한 기억은 아무리 찰나더라도 한 생을 버티게 해주는 큰 힘을 가지고 있거든요.


로봇을 두고 다시 도시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개는 외로웠어요. 로봇이 그리웠지만 계속해서 펼쳐지는 삶에 적응해야만 해요. 그래서 새로운 친구를 찾기 위해 노력해요. 오리 가족과 개미핥기들, 겨울을 맞아 온 눈사람과 펭귄까지 많은 친구들을 만나요. 그러나 그 어떤 친구를 만나도 어김없이 이별의 순간은 찾아와요. 오리 가족은 플로리다로 떠나요. 개미핥기들과는 식성이 안 맞아 친구로 지내기 어려워요. 봄이 오니 눈사람과 펭귄은 떠나지요.  


혼자 해변에 남은 로봇은 어떻게 됐을까요? 개와의 행복했던 시간을 추억하며 로봇은 점점 녹슬어갔어요. 결국 로봇은 폐품으로 여겨져 고철로 처리되기 위해 해변에서 수거되지요. 로봇은 머리, 몸, 다리가 모두 분리된 채 고물상에 버려져요. 다행히 누군가 고물상으로 찾아오고, 로봇의 머리를 가져가 재활용해요. 몸통에 라디오를 붙여준 이 새 친구 덕분에 이제 로봇은 이전과는 달리 음악을 들려주는 로봇으로 다시 태어나게 돼요.


바람과도 같은 우정의 찰나를 포착한 이 책은 ‘개’와 ‘로봇’이라는 두 캐릭터를 통해 관계의 기쁨과 상실, 그리고 그로 인한 변화와 성장을 아름답게 그려내요. 찰나의 한때를 함께 보낸 개와 로봇이 서로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고,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만 하는 이별의 순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지요.


동명의 애니메이션의 원작이에요. 미국 청소년도서관협회가 추천하는 그래픽 노블이자 2007년 미국의 출판전문잡지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선정한 올해의 책이지요.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역시 호평을 받았어요. 2023년 칸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고, 같은 해 시체스영화제 관객상, 부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관객상을 받았어요. 2024년에는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지요. 이 책을 읽고 애니메이션까지 본다면 더욱 풍부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김미향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2024년 5월 13일(월)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http://newsteacher.chosun.com/site/data/html_dir/2024/05/12/20240512017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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