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 오브 로스트 아트
거대한 폭발과 함께 분출된 재앙의 파편들은 문화의 꽃이 만개하던 그곳을 흔적도 없이 덮쳐버렸다. 하지만 순식간에 없어진 건 먼 옛날의 폼페이였을 뿐, 미래의 후손들이 그들의 흔적을 발견해 과거의 영광을 되살렸다. 그들에게는 눈치채지도 못한 사이에 일어난 재앙이었지만 후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문화적 가치를 남겨주었다. 화산재가 빠르게 굳으며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역사적 가치는 물론 예술적, 지정학적 가치까지 지니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은 건축물의 상태는 잘 보존되어 있었고, 당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는지 잘 남겨주었다.
특히 최근에 발견된 건물이 매우 흥미롭다. 여태껏 발견된 건물은 주로 고위층들이 사용하던 건물의 양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건물은 하층민들이 주로 사용하던 건물, 그중에서도 길거리에서 음식을 팔던 공간이다. 닭이라고 명확히 인식할 수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여러 개의 화로가 보인다. 화로 내부에는 음식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위 건물에 그려진 그림을 통해 당시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어떤 계층이 자주 찾았는지, 요리법은 어땠는지 등 많은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겪어보지 않은 과거의 유산을 보고 추측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건축양식과 그림 덕분이다.
박물관에 있는 물건들은 전부 주인이 제각각이다. 명확하게 누구의 작품인지 표기되어있는 것도 있고 신원 미상이거나 어느 시대의 작품인지를 겨우 추측하고 있는 물건들도 있다. 이에 더불어 박물관이 설립된 나라의 작품들만 모아져 있는 것도 아니다. 서양에서 동양의 것이 전시되어있기도 하고 동양에서 서양의 것이 전시되어있기도 하다.
수천 년의 역사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국가들이 생기고 사라졌다.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국가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근거는 예술품 덕분이다. 문화의 발전으로 그 나라의 독특한 문화양상이 나타나고, 그것을 고스란히 계승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박물관에 비치된 작품들은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를 떠나 작품을 보존하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에게 인류 역사의 정수를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과거의 유산은 한번 손상되면 아무리 현대의 최신 기술을 사용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지 못하고 흩어진다. 때문에 작품의 보존 상태는 가치를 매김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 예로 우리나라의 석굴암을 들 수 있다. 석굴암은 일제시대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게 되는데, 이때 석굴암의 보존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전체적으로 해체를 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선택한다. 먼저 목재로 기둥을 세우고 불상을 해체하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습한 환경 탓에 여러 문제가 생기자 당시 최고의 재료였던 시멘트를 사용해 마감을 한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누수와 결로를 불러일으킨 근본적인 문제인 습한 환경을 제어하지 못하고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이어진 몇 차례 추가 보수가 있었지만, 주먹구구식 작업으로 인해 점차 형태를 잃어갔다. 아무리 당대 최고의 재료와 기술로 과거의 유물을 복원한다 해도 작품의 가치까지 복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예술품은 어떻게 소실될까.
주된 원인은 바로 전쟁이다.
국가와 국가는 당연히 서로 다른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그렇기에 전쟁을 마치고 하는 작업 중 하나가 문화말살이다. 승자는 패자의 땅과 물자, 인력을 흡수해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전후처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다. 물자와 영토는 물리적을 컨트롤할 수 있는 분야이기에 시간과 돈을 들이면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자아를 가지고 있는 생명이기에 순순히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승자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문화말살이 된 것이다. 패자를 강제로 승자에게 편입시기엔 예상되는 반발이 거셌기에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을 서서히 소멸시켜갔다. 패국의 정신적 상징인 문화재를 파괴해 그들의 지주를 무너뜨리고 빈자리를 자국의 문화로 채워 넣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문화재들이 파괴되었고, 또 주인을 잃었다.
그 외에도 본문 처음에 서술한 화산 폭발처럼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영향으로 소실되기도 하고 종교 전쟁으로 소실되기도 한다. 놀랍게도 최근까지도 종교에 의한 문화재 파괴는 계속되고 있다. 중동의 테러조직 ISIS에 의해 그들과 대치하는 종교의 박물관을 무참히 테러한 사건을 예로 들 수 있다.
여담이라면 종교와 신화에서 파생된 예술품들은 그에 맞는 전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바다 어딘가에 존재하는 아틀란티스나 과거 위대한 영광을 누렸던 공중정원처럼 말이다. 내 기억 속에서도 어릴 적 신화 속 건축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고 굳게 믿곤 했다. 그야 이집트에 피라미드가 있지 않은가? 이처럼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건축물들이 굳건히 버티고 서있기 때문에 분명 과거에는 위대한 문명이 있었고, 지금은 지구 어딘가에 그들만의 낙원을 만들고 인류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과거의 작품은 먼 옛날 살았던 사람들의 문화와 역사를 추측하고 공감할 수 있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마냥 허무맹랑한 소리도 있지만, 현존하는 적당한 작품들의 존재,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호기심을 일깨워주는 작품들이 존재한다.
나는 역사, 지질학처럼 과거의 흔적을 찾는 학문은 100% 확신할 수 없는 애매함 속에서 연구하며 논리를 바탕으로 믿음을 형성하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미래의 인간이 과거의 작품을 보며 당시의 상황을 추측한다 해도 결국 그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당대의 사람을 타임머신을 타고 데려와 증언하게 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존재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보존 상태를 판단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흔적이 남아있는 작품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 과거에 작품을 만든 누군가는 기뻐할 것이다. 자신의 가치관과 고뇌가 녹아든 작품을 미래의 누군가가 발견하고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창작자 입장에서 매우 행복한 일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많은 작품들이 역사 속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또한 수많은 작품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지금은 희미하게 빛을 내지 못하는 작품들이 미래의 누군가에게는 매우 귀한 작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