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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빙수라는 작은 호사

빙수 앞에서 우리는 잠시 멈춘다

by 이디뜨

투박한 놋그릇에 하얀색 눈꽃이 소복이 쌓였다

눈꽃언덕에 고소한 콩가루가 내렸다


"빙수 하면 팥빙수지. 팥은 어디 갔어?"

달콤한 팥조림과 쫀득한 떡토핑은 센스 있게 따로 나온다.

취향존중의 시대에 맞게 넣어먹고 싶은 사람만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작은 배려다.


선거날인 휴일 오전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을 만들어먹고 카페에 왔다.

집 앞 교회 카페에는 여름이면 우유에 달콤한 연유를 넣은 '눈꽃빙수'를 판다.

우유를 넣어 갈면 눈꽃처럼 소복하게 쌓여서 눈꽃 빙수다.

작년 여름에도, 재작년 여름에도 이 빙수를 먹으러 왔었다.

여름 한철 한두 번 맛있게 먹으니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이 왔음을 체감한다.

동네 큰 공원 앞에는 사계절 줄이 긴 '눈꽃빙수가게'가 있다. 주메뉴가 눈꽃빙수 하나인데 항상 손님이 북적거리니 신기하다.


줄 설 필요 없는, 아지트 같은 집 앞 카페에서 시킨 눈꽃빙수

하얗고 소복한 눈꽃이 예쁘니 기분 좋게 사진 한 장 찍고, 시원하고 달콤하게 한입한입 먹는다.

'빙수야 팥빙수야! 녹지 마 녹지 마!'

입안 가득 고소하고 달콤한 빙수를 먹으니 빙수 먹었던 여러 날들이 생각난다.


나에게 빙수는 시간적으로 여유롭거나 평화로울 때 먹는 디저트다.

그 의미는 여유가 생길 때 먹고 싶은 디저트라는 뜻이다.

배고플 때도 먹지 못한다. 배도 부르고, 바쁘지도 않고, 컨디션도 좋을 때 생각나는 게 여름날의 빙수다.


어릴 땐 엄마랑 시장에 가면 콩국이나 빙수, 커피를 파는 카트에서 즉석으로 만들어 주시는 빙수를 서서 먹었다.

남편과 연애할 때 먹은 빙수는 롯데리아에서 1000원~2000원에 행사하는 알록달록한 젤리 들어간 빙수였다.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들과는 서울의 힙한 카페에서 유행이라는 망고 가득 올려진 빙수를 먹었다.


맛으로 기억하는 시간이다.


요즘은 가족외식 후 도란도란 둘러앉아 숟가락 바쁘게 오가며 먹는 빙수가 제일 맛있다.

아이들이 크니까 다 같이 모여 외식하는 시간도 내기 쉽지 않다.

그러니 온 가족 빙수 먹는 날은 평범한 여러 날들 중 특히나 기분 좋은 하루인 것이다.

설렘 가득한 여행지에서 달콤하고 시원한 게 당길 때에도 카페에서 빙수를 시킨다.


여섯 식구 빙수 먹는 취향도 다양하다.


남편은 팥인절미 빙수

큰딸은 블루베리치즈 빙수

아들은 무조건 초코 빙수

작은딸은 초코칩이나 쿠키 토핑이 올라간 빙수

막내딸은 연유 많이 들어간 우유눈꽃빙수

나는 콩가루 올려진 우유빙수가 원픽이다.


개성 가득한 아이들 성격처럼 입맛도 가지가지라 '설빙'같이 메뉴가 다양한 빙수 전문점에서는 오히려 선택이 어렵다.

다 같이 모여 먹을 땐 서로 먹고 싶은 걸 고르게 되니 한참을 고민하다 두세 가지 종류로 타협한다.


"하나로 통일해!"

"차라리 다 시켜!"

"안 먹은 거 먹어 보자!'


올여름도 무탈하게 지내며 빙수를 먹고 싶어지는 여유로운 날들이 많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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