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애, 나르시시즘, 자존심
장대비 쏟아지던 여름밤. 전화기로 여자의 목소리를 듣던 술 취한 남자는 갑작스러운 그리움을 주체 못 하고 여자에게로 향했다. 그렇게 내닫기엔 무모하게 먼 길을 취중 용기를 내세워 내달린 남자가 막상 여자에게 도달했을 때, 남자도 놀랐고 여자도 놀랐다.
‘내가 이런 사람이던가.’
‘저 사람이 저런 사람이 아닌데.’
맹렬한 그리움에 사무쳤던 남자와 여자는 막상 서로를 앞에 두고도 어색함에 하염없을 수밖에 없었다. 아주 평범한 어느 날의 어느 한때인 듯 어울리지 않게 일상의 안부를 주고받고, 갑작스러운 일탈에 대한 감탄사만 연발하며 무심을 가장하기에 급급했다. 막상 일을 저지르곤 유치해져 버린 남자와 여자였다.
이봐, 남자. 그렇게 별일 아닌 듯 수습하기엔 당신은 너무 많이 젖어버렸어.
억수 같이 내리는 소나기에 남김없이 흠뻑 젖은 남자를 여자가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사랑은 때로 자신도 몰랐던 의외의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자신도 생소한 모습에 스스로도 깜짝 놀라기도 하고 또 낯선 모습에 신선함을 느끼고, 그러면서 사랑에 빠진 자신을 대견하고 뿌듯해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껏 도취된 초보사랑꾼들은 제 사랑을 몇 배 짙은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