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서울대 필수 교양 과목인 '대학 글쓰기'를 12년째 가르치고 있는 나민애 교수는, 해당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소통의 방식'을 배운다고 말합니다. 대학교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대학생으로서의 소통 방식을 반드시 익혀야 하기 때문에 '대학 글쓰기'가 필수 교양 과목으로 지정되어 있죠.
그렇다면 '소통 방식'은 어떻게 배울까요? 바로 글 읽기와 글쓰기입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이 수업에서 어떤 내용을 배우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나민애 교수가 말한 3가지 훈련법은 책 한 권도 못 읽던 제가 출간 작가가 될 수 있었던 방법과 동일해 공감이 되었습니다.
3가지 훈련법 중 첫 번째 훈련법은 '무엇이 중요한지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입니다. 학창시절, 우리는 선생님께서 '시험에 꼭 나온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을 중점적으로 공부하며 자라왔습니다. 그 문제가 왜 중요한지,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문제인지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정답'만 달달 외우면서 말이죠.
2022학년도 수능 생명과학Ⅱ20번 문항이 출제 오류 논란에 휩싸이면서, 대학 입시 일정이 미뤄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석학이자 스탠퍼드 교수인 Jonathan Pritchard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수학적 모순'이 있다고 말했고, 해당 문제를 풀어본 그의 연구원들도 '터무니없이 어렵고 사실은 푸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문제를 맞힌 학생들이 있다는 것. 우연히 정답을 맞혀 좋은 성적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정말로 그 문제가 학생들을 성장으로 이끄는 문제였는지는 의문이 듭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인이 된 이후 무엇이 중요한지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저는 경제경영서나 에세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어떤 문장에 밑줄을 그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깨끗한 책에 낙서를 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정말 이게 중요한 부분일까?'하는 자기 의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권 한 권, 읽은 책이 쌓여갈수록 밑줄을 긋고 싶은 부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밑줄 그은 부분이 실제로 중요한 부분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독서는 남들이 생각하는 중요도가 아닌, 스스로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두 번째 학습법은 '주어진 텍스트 속에서 읽어낼 자료를 선택하는 훈련'입니다. 저는 문예창작학을 전공했지만, 수능 시험에서는 국어를 5등급 받았는데요. 너무 많은 텍스트가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면 글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결국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은 '모든 문제를 하나하나 꼼꼼히 읽으려고 하지 말고 핵심을 찾으라'라고 말씀하셨지만, 당시 저는 그 말씀이 '서울에서 김 서방을 찾으라'는 말처럼 들렸죠.
짧은 시험 시간 동안 틀린 그림 찾기 하듯 문제를 푸는 것이 옳은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넘치는 정보들 사이에서 핵심을 빠르게 찾아내는 능력은 현대 사회에서 유용한 능력은 맞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기획안을 작성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우리는 수많은 인터넷 자료들을 서칭하고, 필요하다면 여러 권의 책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넉넉치 않은 시간 안에 그 정보들을 모두 다 살펴볼 여유는 없겠죠. 실제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너무 오래 자료 서칭만 하다가 기획안 마감 기한을 놓치거나, 모든 자료를 때려담는 식으로 기획안을 작성하는 사례를 여러 차례 본 적이 있는데요. 그 결과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핵심을 빠르게 도출하는 능력은 '꾸준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만약 제가 학창시절에 비문학 독해 연습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연습했다면 국어 5등급을 받지는 않았을 겁니다. 성인이 된 이후, 글을 읽는 훈련을 하면서 조금씩 글 읽는 속도도 빨라지고, 핵심이 자연스럽게 강조 처리 되어 눈에 들어오는 현상을 경험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연습만 한다면, 서울에서 김 서방을 찾을 수도 있다고.
마지막 훈련법은 '선택을 바탕으로 논리를 펼치는 글쓰기 훈련과 토론'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밑줄을 긋고,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서 핵심 정보를 찾아냈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나만의 생각을 글로 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저는 매주 에세이를 쓰고 발행하면서 훈련을 하고 있는데요. 처음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던 2017년에는 완결성이 떨어지는 한 편의 글을 쓰는 데에도 며칠이 걸리곤 했지만, 지금은 한 편의 에세이를 쓰는 데 아무리 오래 걸려도 5~6시간 내에 씁니다. 그리고 그 글의 가치를 인정받아 두 권의 책으로 출간도 할 수 있었죠.
또한 주말마다 진행했던 글쓰기 모임을 통해 간접적으로 토론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각자 글을 쓴 뒤, 쓴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었는데요. 같은 주제를 가지고도 완전히 다른 글을 써낼 수 있다는 것, 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글쓰기 모임은 저를 진정한 사회의 어른으로 성장시켜주었습니다.
인생에도 필수 과목이 있다면, 저는 '글쓰기'를 꼽습니다. 같은 언어로 말한다고 해서 모든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 사회에 이토록 많은 싸움과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을 테니까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태도, 어려운 문제를 끝까지 풀어내고자 하는 의지와 인내심, 자신의 생각과 의견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꼭 배워야 할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우리는 반드시 글쓰기를 배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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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