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현대카드, JP모건 등을 거쳐 현재 메타 글로벌 비즈니스 그룹 부문장으로 일하는 최지은님은 월스트리트 금융권과 빅테크를 모두 경험한 보기 드문 커리어의 소유자입니다. 그녀는 '폴인'과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기업에서 성과를 잘 어필하는 방법'에 대해 가장 먼저 '스토리텔링'이라는 단어를 꺼냈는데요.
'스토리텔링'이요. 저는 이게 커리어에서 제일 중요한 역량이라고 생각해요. '사내 정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아니예요. 조직이 어떤 기준으로 의사결정하는지 파악하고, 그에 맞춰 내 성과를 어필하는 거예요. 이게 진짜 실력이라고 봐요. 이걸 잘하는 사람들이 일도 빠르게 진행하고, 팀도 잘 대변하고, 그 결과 리소스도 잘 확보하거든요.
- 최지은 메타 글로벌 비즈니스 그룹 부문장
성과는 반드시 '수치'로 나타내야 합니다. '1분기에 진행한 ~ 업무를 통해 매출이 크게 성장했다'가 아니라 '200% 성장', '300% 성장'과 같이 명확한 수치로 표현을 해야 하죠. 그런데 수치만 정확하게 쓰면 성과가 잘 어필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200%, 300%라는 숫자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죠. 예를 들어, 경쟁사는 150% 성장했는데 우리는 300% 성장했다든지 혹은 갑자기 팀원 리소스가 줄어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200% 성장을 만들어냈다든지 어필하고자 하는 숫자에 스토리텔링이 가미되어야 성과의 의미가 돋보이게 됩니다.
회사 면접을 볼 때도 스토리텔링은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경력 면접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질문 중 하나가 '이전 회사에서 왜 이직을 하려고 하는가?'인데요. 이 질문이 '더 많은 연봉을 받기 위해서'라는 당연한 답변을 받으려고 던진 질문은 아닐 겁니다. 현재 직장에서 겪는 인간 관계 문제나 조직 문화에 대한 불만 등 부정적인 답변도 당연히 도움이 되지 않겠죠. 저는 비영리 기관에서 일하다가 앱 회사로 이직을 할 때 이렇게 답했습니다.
1. 약 3년 반 동안 비영리 기관의 1인 마케터로서 조직 내 모든 사업의 PR·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며 OO부터 OO까지 정말 다양한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특히 OO업무의 경우 OO 성과를 만들어..
: 음, 지난 회사에서 다양한 일을 했고 성과도 괜찮았나보군.
2. 그러나 앞으로 마케터로서 계속 커리어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비영리가 아닌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에서 마케팅을 경험해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전 회사에 대한 불만 때문이 아니라 이직을 하고자 하는 명확한 이유가 있군.
3. OO와 같이 일상 속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는 앱을 실제로 사용하면서 앱 마케팅을 경험해보고 싶었고, 성장욕이 높은 저로서는 OO분야 1위이자 신규 서비스를 지속 출시하는 이곳에서 열정적으로 일해보고 싶습니다.
: 왜 수많은 회사에서 우리 회사를 선택했는지 알겠군.
4. 비록 앱 마케팅 경험은 없지만, 비영리 기관에서 1인 마케터로서 일한 지난 저의 경험은 빠르게 변화하고 성장하는 이곳에 도움이 되어 서로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앱 마케팅 경험이 없는 건 좀 아쉽지만, 회사에 빠르게 적응하고 혼자서도 알아서 잘하겠군.
사실 저도 처음부터 이렇게 답변을 하진 못했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성장하고 싶어서'와 같이 추상적인 답변을 하거나, 단답으로 대답하고 얼버무리며 회피하기도 했죠. 하지만 '왜 이직을 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스토리텔링 해놓으니, 오히려 이 질문이 기다려졌어요. 세상에서 가장 어렵게 느껴졌던 질문이 오히려 '이 사람과는 논리적으로 대화가 잘 통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위 답변을 스토리텔링하기 전에는 스스로도 내가 왜 이직을 하려고 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단순히 연봉을 높이기 위해서만 선택한 이직은 아닌데, 딱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연봉만 앞세웠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커리어를 넘어, 인생의 큰 그림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 내가 살고 있는 지역, 내가 즐기는 취미,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 등 인생의 모든 것들은 저절로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로 인해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것. 먼훗날, 인생을 되돌아 봤을 때, 그것을 아는 사람만이 인생의 의미를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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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