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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재비 Jun 09. 2019

테크 기업에서 교육하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할까?

퍼포먼스 교수 설계자, 콘텐츠 교수 설계자, 그리고 커뮤니티 설계자  

최근에 후배가 영어 명함을 만들면서 "우리 하는 일을 영어로 어떻게 적으면 돼요?"라고 물었다. 나는 1초의 고민도 없이 'Insturctional Designer'라고 답해 주었다. 


교수설계자. Instructional Designer.


교육학, 교육공학을 공부하고 이 업에 진출한 사람은 당연히 스스로를 교수설계자 = instructional designer라고 부를 것이다. 하지만 막상 instructional designer라는 말을 쓰려고 하다 보니, 내가 만드는 것이 강의 = instruction인지, 그리고 내가 설계 =design만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업계의 교육 니즈를 파악하고, 심지어 이 교육을 만들기 위해 관련 당사자들을 설득하고, 예산도 만들고, 사람들을 모으고, 행사를 주최하고, 출석부도 만들고, 다과도 준비한다. 아마도 나와의 접점에서 나를 스치듯이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행사 전문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근데 '강의를 설계하는 사람'으로 나를 한정 짓기는 좀 부족한 설명이지 않을까? 




어떤 판이든 여러 '놈'들이 존재한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어떤 판이든지 여러 '놈'들이 존재한다 


이 업으로 만 5년을 가득 채웠다. 코딩도 할 줄 모르면서 소프트웨어 개발이라는 엄한 분야에 떨어졌을 때, 나는 가슴이 뜨거웠고 학교에서 갓 배워온 컨설팅 스킬로 논리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리라는 결심으로 그득했다. 


기업 HRD HQ, 또는 컨설턴트로 진로를 정한 동기들과 내가 하는 일이 아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부 고객인 경영진에서 요구하는 교육적 니즈, 체계적인 접근을 통한 논리적인 컨설팅으로 결론을 추려서 교육과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상적인 기회는 거의 없었다. 기술 중심 분야에서 핵심은 '기술, ' 정확히는 '기술의 적용'이었다. 이쪽 분야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컨설팅을 기다릴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분야가 아니었다. 기술의 적용 속도가 서비스의 성패와 직결되는 요소이다 보니, 기술의 문외한인 교육 부서에서 기술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체계적인 컨설팅 능력보다는, 필요한 사람을 적시적소 빠르게 찾아서 데려올 수 있는 섭외력 같은 것들이 되려 교육의 품질을 결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연출력 없이 화려한 스타만으로 성공하는 영화가 없듯. 기획력 없는 섭외가 핵심 요소 일리 없다. 결론적으로 기술 친화적인 마음을 가지고, 기술의 핵심을 따라가되, 빠르게 효과적인 교육을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퍼포먼스 교수 설계 VS. 콘텐츠 교수 설계 


마케팅의 영역에 빗대어 생각을 확장해 보자면, 퍼포먼스 마케터와 콘텐츠 마케터의 일에 빗대어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마케팅의 분야에서는 효과를 측정해서 지표 달성을 하는 전문가인 '퍼포먼스 마케터'들이 있는가 하면, 콘텐츠 마케팅을 하기 위해 카피라이트를 만들거나 동영상, 스토리를 등의 콘텐츠를 뽑아내는 '콘텐츠 마케터'가 있을 것이다. (나는 마케터가 아니므로, 이 분류가 정확하지 않더라도 양해를 바란다)


내가 교육공학을 공부하면서 훈련받은 것은 학습자가 배워야 할 '콘텐츠를 설계'하는 것에 가까웠다. 마케터를 비유하자면 콘텐츠 마케터에 가까웠던 것이다. 무엇을 교육 과정에 포함해야 고객의 니즈를, 또는 시장의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는가? 그리고 이것은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사람들이 마음속에 쏙쏙 와 닿게 전달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이 두 가지 문제에 한정해도 2년도 부족할 정도의 많은 이론이 있고, 몇 달이 걸릴 정도의 프로세스가 필요한 상황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더욱 강하게 요구를 받았던 것은 조직, 또는 생태계의 기술력을 향상하는데에 직,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것으로, 이 부분에서 '빠른'이라는 부분은 핵심적인 피쳐 중 하나였다. 국민 의무 교육을 벗어난 현장의 교육은 '성과'를 달성해야만 존속할 수 있다. '왜 교육을 해? 교육이 효과가 있으니까!'라는 공식이 나이스 하게 성립해야 했다.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라는 부분에서 나는 니즈를 끌어모아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자료를 모으기보다는 빠르게 결정할 수 있는 핵심적인 데이터를 빠르게 파악하는 역량이 더욱 필요했다. 그리고 복잡한 기술의 영역은 내가 모두 이해해서 판단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었다. 큰 방향에 있어서의 빠른 결정. 그리고 이 결정이 진짜 제대로 된 것인지 다시 빠르게 회고하고, 또 다음 기술을 향해 나아가는 나날들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행사 봇이 되었다



Technology(기술)이 아닌 Art(기술)


교육공학(Edcucation Technology)에서의 공학(technology)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체계적인 접근을 의미한다. (다들 첨단 기술의 '공학'을 적용하는 영역 정도로 생각하고 있겠지만) 하지만 5년이라는 길고 짧은 세월을 실무에서 달려온 바, 빠르게 변화는 세상에서 좋은 교육을 만드는데 필요한 것은 기술(technology)이 아니라 기술(art)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여기서 기술(art)은 묘수라고 생각해도 좋다. 


합리적이고 사고를 테크니컬 하게 수행하는 것은 기술(technology)이다. 하지만 좋은 기술을 가진 사람을 빠르게 파악해서 배움의 일에 동참하게 하는 능력은 묘수(art)다. 나아가 기술을 가진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기획과 실행에 필요한 많은 부분을 자동화할 수도 있다. 


졸업장의 잉크가 마르지 않았던 혈기 왕성한 시절에는 기획을 할 시간이 부족한 것, 기술의 전파가 교육의 전부인 양 여겨지는 것들이 내심 못 마땅했던 날도 있었다. 기획자로써 내 부분의 몫이 사라지는 것 같은 생각에 앞날이 불안하기도 하고, 엔지니어들을 서포트하는 'behind scene'의 역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데도 시간은 필요했다. 


학습 커뮤니티 설계자 


그리고 배움을 전파하는 묘수의 끝은 결국 커뮤니티일 것 같다. 개인적으로 커뮤니티를 조직하고 운영하기로 한 것도 여러 가지 대의적인 이유가 있지만,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커뮤니티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behind scene'에 있는 사람으로서 미래의 핵심 역량이 될 것이라는 확신도 있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그리고 기술이 중심이 되는 영역에서 배움을 설계하는 사람은, 수요와 공급이 저절로 매칭 될 수 있고 지속 가능하게 굴러가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사람으로 변화해야 한다. '체계적인 접근' 보다는 '비체계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접근' 그래서 다음 기술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자동화되는 접근이 점차 중요해진다. 기획과 간섭이 줄어들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능력은 쉬이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나는 그저 내가 하는 일이 Fullstack 교육 설계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획에도 머리가 필요하고, 사람들을 모으는 데는 매력이 필요하고, 운영을 할 때는 꼼꼼함과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내가 'behind scene'을 벗어나 사람들과 만날 때는, 아주 멋있는 기획자처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장면에서 나는 후다다닥 뛰어다니기에 바쁘고, 저녁 근무나 주말 근무 등으로 표정이 어두울 수도 있으며, 현장에서 터진 운영 이슈를 커버하느라 정신이 없을 수도 있다. 커뮤니티를 만든다는 것은 곧 자질구레한 잡일을 도맡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에게 나는 강사에게 마이크를 전달하는 사람, 출석부 거둬가는 사람, 음료수 깔아주는 사람 정도로 보여지고 말지도 모른다. 


누구나 퇴사를 고민한다던 입사 3년 차. 교육공학을 공부하고 회사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나'라는 자괴감에 빠진 사람들끼리 골방 회의실에서 긴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지금은 퇴사한) 한 현자가 "나는 학습 공동체 - Community of Practice-가 이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우리가 배운 것을 그대로 쓸 수 있지는 않을 거고, 우리 각자도 콘텐츠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 여기서 할 일이 계속 있을 것 같아"라고 했던 말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 그 때도 공감되었던 말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공감되고 있다. 결국 나는 building의 끝판왕, 살아있는 유기체, 커뮤니티를 만들 것이다. 


테크 기업의 변두리가 될지 언정, 그게 나의 콘텐츠가 되면 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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