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교육위 밖, 학생들의 이야기 꼰대 편 [마지막 편]
팟캐스트: 꼰대 3부 — 듣는 어른이 되는 연습
진행자: 나, 친구 A
친구 A: 지난 시간에 이야기한 "Could I be wrong?" 질문, 그거 꽤 울림 있었어요. 그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 게 진짜 쉽진 않더라고요.
나: 맞아요. 그리고 그 질문을 품다 보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질문이 생기더라고요. 바로 "나는 얼마나 잘 듣고 있을까?"라는 질문이요. 사실 이 질문은 저한테 굉장히 불편한 질문이기도 해요. 내가 누군가를 말로 누르고 있진 않았을까, 혹은 내 안의 불안 때문에 상대 말을 자르지 않았을까 자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친구 A: 듣는다는 거, 쉬운 일 아닌 것 같아요. 말은 많이 배웠지만, 듣는 법은 잘 안 배운 느낌이랄까. 학교에서도 듣기 수업은 거의 없었잖아요.
나: 맞아요.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함께 연습해 볼 수 있는 ‘듣는 어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말 많은 어른이 아니라, 말보다 '존재 전체로 받아들이는' 그런 어른이요. 듣는다는 건 곁에 있다는 거니까요.
친구 A: 듣는다고 하면 가만히 있는 걸 떠올리잖아요. 근데 사실 듣는 것도 능동적인 거죠?
나: 맞아요. 듣는다는 건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이해하려는 의지, 감정을 함께 받아들이는 태도예요. 말의 논리뿐 아니라 그 이면의 정서, 그 순간의 맥락까지도 함께 듣는 거죠. ‘말’이 아니라 ‘사람’을 듣는 거예요.
친구 A: 듣는 어른은 결국 자기 자신과도 대화하는 사람 같아요. "왜 내가 지금 듣기 힘든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사람.
나: 그렇죠. 자기감정을 자각하지 않으면, 결국 듣지 못해요. 듣는다는 건 자기 인식이 전제된 태도예요. 왜 저 말이 거슬리는지, 내가 조급한 건 아닌지 계속해서 점검해야 하거든요.
친구 A: 그러고 보면, 듣는 태도는 일종의 근육 같기도 해요. 자주 쓰고 단련해야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아요.
친구 A: 구체적으로 듣기의 층위를 나누자면 어떤 게 있을까요?
나: 저는 보통 이렇게 나눠요. 첫째, 정보 듣기. 둘째, 감정 듣기. 셋째, 맥락 듣기.
친구 A: 오, 층위가 있네요. 예를 들어서 설명해 줄 수 있어요?
나: 예를 들어 학생이 "그 활동이 부담스러워요"라고 말했을 때, 그냥 '하기 싫다'고만 받아들이면 정보 듣기에 그치는 거예요. 근데 그 말 안에는 두려움이나 피로 같은 감정이 들어 있을 수도 있죠. "실수할까 봐 무서워요" 같은 맥락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죠.
친구 A: 혹은 최근에 가정이나 친구 관계에서 힘든 일이 있었을 수도 있고요. 그런 맥락을 모르고 판단하면, 오해만 쌓이겠네요.
나: 맞아요. 듣는 어른은 말의 표면을 넘어서, 그 말이 나온 배경과 정서를 함께 듣는 사람이에요. 마치 언어의 빙산 아래를 보는 감각이죠.
나: 그래서 듣기를 잘하려면 첫 번째로 필요한 건 ‘판단 유예’ 예요. 바로 판단하지 않고 한 박자 멈추는 연습.
친구 A: 예를 들어 후배가 낯선 방식으로 제안했을 때, "그건 이상한데?" 말고, "왜 그렇게 하려고 했는지 설명해 줄래?" 이렇게요?
나: 맞아요. ‘이상하다’는 말엔 이미 거절이 들어 있어요. 반면 “왜 그렇게 생각했어?”라는 질문은 대화를 계속 열어두는 말이죠. 그렇게 판단을 미루는 연습이 쌓이면, 상대는 더 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돼요.
친구 A: 판단 유예는 관계를 지키는 일종의 여백 같네요. 말 사이에 숨 쉴 틈을 주는 것처럼.
친구 A: 듣기 힘든 순간엔 내 안에 감정이 먼저 올라오는 경우도 많죠?
나: 맞아요.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날카롭게 느껴지는 말을 했을 때, 그 말 자체보다 내 불안, 조급함 같은 감정이 방해를 할 수 있어요. 내가 계획한 흐름이 깨졌을 때, 내가 정한 기준에서 벗어났을 때 화가 나는 거죠.
친구 A: 듣는 걸 방해하는 건 결국 나 자신일 수도 있겠네요.
나: 맞아요. 그래서 저는 대화 중에 이렇게 자문해 봐요. “지금 왜 이 말이 거슬리지?” “내가 조급해서 이 사람 말을 끊은 건 아닐까?” 그렇게 감정을 인식하면, 대화의 방향도 달라져요.
나: 듣는 어른은 말을 적게 하지만, 질문은 많아요. 그리고 그 질문은 상대가 더 깊이 자신을 탐색하게 도와주는 도구예요.
친구 A: 어떤 질문이 듣기의 태도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나: 예를 들면, "그때 어떤 기분이었어?" "그 선택하기까지 어떤 고민이 있었어?" 같은 질문들. 이런 말은 상대가 더 깊이 말할 수 있게 도와줘요.
친구 A: 단순한 궁금증을 넘어서, 상대의 세계를 존중하려는 질문이네요.
나: 맞아요. 질문은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말의 형태로 드러난 거예요. 그리고 그 마음은 반드시 전해져요.
친구 A: 혹시 그런 듣는 어른을 직접 만난 적 있어요?
나: 고3 때, PTSD로 학교에서 거의 말을 못 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때 담임 선생님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지금은 쉬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셨어요. 그 한마디가 나중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됐어요.
친구 A: 말보다 존재로 받아주는 힘이네요. 듣는 어른은 말도 다정하지만, 그 말의 뿌리가 깊어요.
나: 맞아요. 진로 선생님도 떠오르네요. 제가 국가교육위원회 학생 위원이 된 것도 그분 덕분이었어요. "지금은 어렵지만, 네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야"라고 해주셨거든요. 그 말은 마치 내 가능성을 먼저 믿어준 느낌이었어요.
친구 A: 듣는 어른은 결국 ‘먼저 믿어주는 사람’이군요.
친구 A: 그런데 듣는다는 게 마음만으로는 안 될 때도 있어요. 구조가 우리를 가로막을 때요.
나: 맞아요. 교육 현장은 특히 더 그렇죠. 시간 구조가 여유를 허락하지 않아요. 일정에 쫓겨서 말보단 결과가 우선이고, 느긋한 대화는 설 자리가 없어요.
친구 A: 수직적 관계 구조도 문제겠네요. 듣는 태도가 ‘권위가 없다’로 해석될 수도 있고요.
나: 성취 중심의 분위기도 커요. 느리고 복잡한 이야기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거죠. 감정이나 정서는 ‘비효율’로 여겨지니까요. 그래서 이야기하려는 사람이 오히려 위축되죠.
친구 A: 결국 구조를 조금씩 바꾸려는 시도도 중요하겠네요.
나: 맞아요. 예를 들어 회의 전에 5분 정도 감정 나누기를 한다든지, 피드백 시간을 조금 더 여유롭게 잡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어요. 작지만 오래가는 변화죠.
친구 A: 듣는 어른은 결국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네요.
나: 맞아요. 실수하고, 돌아보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의 총합이죠. 완벽할 순 없지만, ‘어떻게 말할까’보다 ‘어떻게 들을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교실도 조금씩 변할 수 있다고 믿어요.
친구 A: 듣는다는 건, 함께 살아가겠다는 약속이란 말… 참 좋네요.
나: 누군가 우리에게 말 걸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일. 그게 듣는 어른의 첫걸음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나: 오늘 대화가 여러분에게도 작은 울림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듣는다는 건 결국, 누군가의 삶에 조용히 동행하는 일이니까요. 이번 주엔 우리도 조금 더 ‘듣는 사람’으로 살아보면 어떨까요?
오늘 하루, 한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기 → 말 도중 끊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을 때, 어떤 감정이 있었는지 기록해 보세요.
‘왜 그렇게 생각했어?’라는 질문 한 번 해보기 → 판단 말고 질문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경험을 메모해 보세요.
오늘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 한 줄 적어보기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