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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얼 Oct 30. 2019

취업이 결혼만큼 어려운 이유는?

그리고 일부일처제를 택한 새들이 더 지능이 높은 이유는?

"온싸이트 인터뷰를 꽤 잘 본 것 같은데, 3주가 넘었는데 밍기적거리면서 답을 안 주네요. 떨어진 거냐고 물어보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하면서 별별 핑계를 다 대네요. 아직 인터뷰어들의 의견을 취합하지 못했다느니, hiring team에서는 뽑고 싶어하는데 윗 단계의 승인을 못 받았다느니, 올해 headcount를 다 써서 HR에 더 요청을 했다느니 핑계를 대네요. 밀당이라도 하자는 건지, 원. 떨어졌다고 하면 깨끗이 잊고 포기할텐데, 절~~대 떨어졌다고는 안해요. 답답해 미치겠는데 이거 그린라이트가 맞긴 맞나요?"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인터뷰를 마치고 지원자들이 이런 속풀이를 하는 경우가 흔하다. 나도 이런 경험이 엄청 많기 때문에 이런 지인들을 보면 얼싸안고 같이 울고 싶다. 마치 천국에 간 것도 아니고 지옥에 떨어진 것도 아니고 연옥을 떠도는 영혼처럼, 인터뷰에 붙은 것도 아니고 떨어진 것도 아닐 때의 그 속타는 마음! 여기서 키워드는 '밀당'과 '그린라이트'라는 연애 용어다. 구직은 연애(또는 결혼)와 공통점이 많다. 미국 회사는 공채보다는 한국에서 '특채'라고 부르는 채용방식을 띈다. 1년 한 두 번씩 몇 백 명 단위로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필요하면 '1명씩' 채용한다. 구직과 연애의 공통점은 둘 다 일대일 매칭이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회사의 일자리도 하나, 구직자가 갈 수 있는 회사도 한군데이다. 일부일처제 하에서는 내가 사귈 수 있는 사람도 1명, 상대방이 사귈 수 있는 사람도 1명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구직도 연애도 성공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러한 공통점 때문에, 인터뷰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해가 안되는 상황 중 상당수는, 썸 타는 경우에 대입해 보면 상황 파악이 쉬워지는 경우가 많다. 인터뷰 과정은 5시간에 걸친 소개팅이라고 보면 된다. 별로 잘나가는 것도 아닌 회사가 왜 인터뷰 질문은 그렇게 어렵고 별별 능력을 다 요구할까? 연애에 대입해서 한 번 생각해보라. 스펙이 낮은 사람도 눈은 높은 경우가 많지 않은가? 앞에서 속풀이한 지원자의 상황 역시 연애에 대입해서 한 번 생각해 보라. 소개팅 후 애프터 신청을 하면 딱 거절하는 것도 아니면서 자꾸 날짜를 연기하는 사람은 왜 그럴까? 당신에게 첫눈에 반한 건 아닌데 다른 소개팅 약속이 잡혀 있어서 그것을 해보고 결정하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지원자는 지금 한마디로 '어장 관리'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후보자가 있다는 말이다. Hiring teamd은 다른 후보자와 이미 인터뷰를 했는데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거나, 앞으로 인터뷰를 더 해보고 결정하려고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가 답을 주지 않고 밍기적거릴 때, 어떻게 이 답답한 상태를 벗어날 수 있을까? 회사가 밍기적거리는 이유는 다른 지원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도 다른 회사를 끌어들이자. 연애에서 흔히 쓰이는 '질투심 유발 작전' 내지는 '품절 마케팅 작전'이다. 나는 곧 품절남 또는 품절녀가 될테니까 우물쭈물하지 말고 지금 바로 오퍼를 달라는 얘기다. 일단 어느 회사로부터든 첫번째 오퍼를 받아내라. 그러면 이 첫번째 오퍼가 다른 오퍼를 줄줄이 트리거할 것이다. 일단 하나의 오퍼를 받고 나면 다른 회사들도 줄줄이 당신 앞에서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쓰러지고 신고산이 와르르 무너지듯 무너진다. TV의 흔한 짝짓기 프로그램에서처럼 '사랑의 짝대기'를 일단 한 개를 먼저 받은 사람은, 갑자기 매력지수가 상승해서 다른 이성들도 우르르 그 사람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연애란 고도의 '지능'을 요구하는 종합예술이다. (그래서일까? 일부일처제를 택한 새들이, 다부다처제의 새들보다 더 지능이 높다고 한다.) 소개팅할 기회를 얻기도 어렵고, 썸타는 관계에서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어렵고, 연애에서 결혼까지 가기는 더 어렵다. 구직 활동도 마찬가지이다. 인터뷰 기회를 얻기도 어렵고, 오퍼를 받기도 어렵고, 오래 다닐만한 직장을 구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딱 1명만 연애/결혼 상대로 고를 수 있는 일부일처제 하에서라면, 또는 헤드카운트가 딱 1개 남은 hiring team이라면, 아무리 상대가 마음에 들어도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미련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그런데 나(지원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상대방(지원한 회사)도 똑같은 마음이라면? 그냥 썸만 타다 흐지부지 되기 십상인 것이다. 이것이 일대일 대응의 딜레마다.


나는 그대를 위해 기원한다. 잡마켓에서는 여러 회사로부터의 멀티 오퍼가 우르르 쏟아지기를, 연애시장에서는 사랑의 짝대기가 우르르 꽂혀서 고슴도치가 되기를. 자, 이런 뻘글에도 인터뷰 tip은 나간다.


인터뷰 tip 요약:

구직 과정에서 상황 파악이 어려울 때는 연애에 비유해서 생각해보라. 그러면 상황 파악이 쉬워진다.  

첫 번째 오퍼를 어떻게든 받아내라. 눈에 안 차는 회사라도, 원하지 않는 지역에 있는 회사라도, 일단 오퍼를 받아라.  

인터뷰 분위기 좋았다고 낙관하지 마라.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내가 아무리 잘했어도 다음 날 다른 후보가 더 잘해버리면 나는 간택받지 못한다.  

오퍼를 하나를 받았다고 인터뷰를 그만두지 마라. 다른 회사와 인터뷰를 계속해서 연봉을 올려라. 이제부터는 오퍼 1개 당 연봉이 $20,000씩 오르고, 내 실력으로는 가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회사로부터도 오퍼를 받을 수 있다. 오퍼 받았으면 밀당(=negotiation)에 들어가라. 다시,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오퍼를 일단 억셉하고 그 회사에 안 가는 것이, 언젠가 그 회사를 다시 지원할 때 나쁜 인상을 준다는 소문이 있다. 그러나 요즘은 이직 주기가 짧아지면서, 오퍼를 억셉하고 번복하는 것을 점점 비난하지 않는 추세다.


그리고 앞으로 쓸 (지도 모르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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