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성의 문턱에서 쓰는 시
8화.
텔로미어에서 매트릭스로 _ 유한성의 문턱에서 쓰는 시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 세포 속 어딘가에서는 보이지 않는 시계가 이미 작동하고 있다.
염색체 끝에 자리한 작은 구조,
텔로미어는 신발끈 끝의 플라스틱 캡처럼 유전자를 보호하지만,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조금씩 닳아 없어져간다.
이 마멸은 멈춤이 아니라 흐름이고, 언젠가 더 이상 닳을 수 없는 한계에 이르면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조용히 맞이한다.
텔로미어는 단순한 DNA 조각이 아니라, 우리 몸에 새겨진 시적 언어이자 생명의 끝을 기록하는 작은 시간 연필이다.
인간의 생명은 끝없이 계속될 것 같지만,
염색체조차 이미 정해진 리듬을 따라 흐른다. 봄마다 꽃을 피우던 나무가 어느 해에는 그 꽃잎의 수 조금씩 덜어내듯이, 우리 또한 유한한 시간의 계절을 살다 걸음의 속도를 늦추고, 마침내 멈추게 된다.
노화와 죽음은 징벌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이며, 텔로미어는 그 질서를 조용히 표기하는 서명과 같다. 하이데거가 말했듯 인간은 본질적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고, 텔로미어는 그 언어를 세포 차원에서 시행하고 되풀이한다.
우리는 정해진 행 수가 있는 시 안에서 살아가지만, 그 시가 어떤 울림으로 남길지는 각자의 선택과 행동에 달려 있다.
DNA를 도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화학적 언어를 넘어 매우 섬세하게 짜여진 정보의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텔로미어는 그 반복된 리듬 속에 끼워 넣어진 쉼표 같은 존재이다. 이 시각에서 인간은 단순한 단백질의 조합이 아닌, 정보가 흐르고 해석되며 살아가는 코드임을 직감할 수 있다.
들뢰즈가 말한 ‘차이와 반복’처럼 우리는 인간이라는 객체의 인류 문명이라는 동일한 문화적 구조 속에서 각자의 미묘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그 변화가 개인의 개별성을 만든다. 텔로미어의 닳아 없어짐은 그 패턴의 공통적 유한성을 드러내면서, 곧 우리가 언젠가 도달할 불가피한 끝의 표시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양자역학의 기본 이론에 따라, 만약 우주가 하나의 거대한 정보장의 시스템으로 구조화되어있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움직이는 게임 속 작은 캐릭터일 수도 있지 않을까...
텔로미어의 길이마저 미리 짜인 정보적 규칙이라면, 우리의 생명 또한 단순히 코딩으로 프로그램된 정해진 수명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영화 '매트릭스'속 인물들이 자신이 코드 속 가상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보이지 않는 거대한 체계 속에서 하루하루 프로그램처럼 코딩으로 짜여진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신이든,
자연이든,
혹은 알 수 없는 창조적...
설계자이든,
그 힘은 언제나 침묵 속에 머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침묵 속에서도 우리가 느끼는
사랑과 고통,
선택과 후회,
꿈과 열망은...
결코 가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코드 속의 경험일지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은 진짜 시의 행과 연으로, 감정의 리듬으로 여기 남아있다.
결국 텔로미어는 우리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한성을 가르치지만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의 절대적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끝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부처는 이를 무상이라 부르며 집착을 내려놓으라 했고, 노자는 무위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라 했으며, 하이데거는 존재를 끝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자각하라고 했다.
우리는 매트릭스 속에 살고 있든, 현실에 살고 있든, 결국 그 안에서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어떠한 행동을 실행해 나가며 결국 어떤 울림을 남기느냐가 우리 삶의 진실을 결정한다.
어쩌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우리가 어떤 시스템 안에 있든,
어떤 공간에 묶여 있든, 우리 삶은 여전히 순간순간의 시이며, 우리는 그 시를 완성해 가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이 글을 쓰고 읽으며 우리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 순간,
지금 이 순간이 곧 우리이고,
우리가 곧 우주의 존재적 가치이며!
목적이고!
이유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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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