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아래 홀로 남은 여인의 이야기
10화.
새벽 이전의 사랑 _ 침묵을 가르는 결단
요셉은 문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그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나무 문에 닿은 손바닥은 차가워졌고, 그 차가움이 팔과 어깨를 타고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마당의 공기에는 마리아가 남긴 낮의 흔적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매운 고추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잎이 뾰족한 식물 줄기와 이파리들, 핏물에 젖은 흙, 그리고 땀 냄새까지 희미하게 뒤엉켜 어둠 속에서 오래된 기도처럼 무겁게 자리하고 있었다.
“마리아…”
그가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붙잡고 있던 숨이 조용히 허물어져 내렸다.
문 안쪽에서 느린 발소리가 다가왔다.
등잔불의 옅은 그림자가 문살 사이로 번지더니 문이 아주 조금 열렸다. 그 틈으로 따뜻한 빛이 그의 얼굴에 닿았다.
마리아의 얼굴이었다.
그녀가 나타난 순간 요셉은 숨을 멈췄다. 한층 말라 있었고 볼에는 열이 조금 남아 있었다. 입술은 바싹 말랐지만 눈빛은 여전히 빛을 품고 있었다. 다만 그 빛은 바람이 스치면 꺼질 듯한 등불처럼 조심스러운 흔들림을 머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연약함 속에는 오히려 깊고 고요한 결심이 숨어 있었다.
요셉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녀의 손끝으로 내려앉았다. 처음엔 그저 두 손이 떨리는 것만 보였다. 그러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손등과 손바닥에 새겨진 상처들이 서서히 선명해졌다. 배를 감싸 쥔 손은 소녀의 것이라 부르기 어려울 만큼 거칠게 상해 있었다. 따스한 빵 냄새 대신 피와 흙이 뒤섞인 냄새가 스며 있었고, 오래 굳은 피딱지의 쇳내가 코끝을 때렸다.
손톱들은 제 모양을 잃은 채 군데군데 부러져 있었다. 특히 검지손톱은 절반이 떨어져 나가 붉은 속살이 부풀어 있었고, 그 미세한 열기조차 요셉의 살갗으로 번져 왔다. 손바닥에서 가장 깊게 파인 물집들은 이미 여러 번 터지고 굳어 마른 피와 속살이 여러 층을 이루고 있었다.
요셉은 숨을 깊게 들이쉬려 했지만, 가슴이 차갑게 죄어들어 호흡이 점점 짧아졌다. 그녀의 미세하게 흔들리는 신음이 들리는 듯했고, 그 소리 없는 고통이 그의 가슴 가장 깊은 곳을 무너뜨렸다.
그는 조금 더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마리아의 발끝이 시야에 닿는 순간 마음이 서늘히 내려앉았다. 요셉은 두 다리가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혹독한 날씨 속에서도 신발 없이 밭을 걸었던 흔적이 그대로 그녀의 발 안에 남아 있었다. 발톱 밑 깊은 곳에는 씻어내지 못한 흙이 박혀 있었고, 발등에는 붉고 굵은 물집이 군데군데 겹을 이루고 있었다.
차가운 새벽에 생긴 상처 위에 노동의 굳은살이 다시 겹쳐지고, 그 자리에 서리 속 동상의 흔적까지 더해져 있었다. 발가락 사이에는 가시에 찍혀 나간 자국들이 살점을 앗아갔고, 깊게 파인 상처는 얼룩처럼 남아 있었다. 그 틈마다 차가운 공기가 스며드는 듯한 통증이 요셉의 감각에까지 번져 들었다.
요셉은 더는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눈을 감아도 마리아의 상처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손을 뻗으려 했으나, 닿는 순간 그녀가 더 아파할까 봐 손끝이 허공에서 떨리며 멈췄다. 결국 그는 조용히 두 무릎을 바르게 모아 꿇어앉았다.
뜨거운 눈물이 차갑게 굳은 땅 위로 떨어졌다. 흙은 그 눈물을 삼키며 작은 어둠의 얼룩을 만들었다. 요셉은 울음을 죽이려 했으나 목구멍이 저려 와 거친 숨이 더 크게 떨렸다. 소녀의 발등에서 올라오던 미세한 열기, 그녀의 몸 전체에서 퍼져 나오던 고통과 외로움의 파동이 그를 완전히 감싸고 있었다.
그 순간 아주 약한 숨소리가 그의 귀에 닿았다. 마리아의 숨이었다. 고통을 참느라 애써 가라앉힌 숨이었고, 그 연약하고 얕은 호흡이 그의 광대를 스치며 닿았다. 그 찬 감촉이 오히려 그의 가슴을 뜨겁게 찢어놓았다.
요셉은 떨리는 손끝으로 눈물을 닦아내려 했지만 닦이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그녀의 고통이 그의 몸속으로 스며든 듯한 떨림의 기록이었다.
결국 그는 조심스럽게 마리아의 상한 손 하나를 들어 두 손으로 감싸 올렸다. 마치 허공을 감싸듯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마리아…”
그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낮았고, 그 안에는 연민과 죄책감,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사랑이 섞여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그녀가 홀로 견뎌온 모든 시간의 무게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늦은 발견이 그녀의 고통을 더 깊게 만든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왜… 아무도 당신을 지켜주지 않은 거야!”
그의 말은 그녀에게 던진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향한 처참한 고백이었다.
마리아는 미소를 지으려 했으나 웃음이 채 피어나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흘러내렸다.
“요셉, 저는 괜찮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눌리고 눌린 고통의 잔향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괜찮다고…?”
요셉은 눈을 감았다.
“이런 게 괜찮은 거야?”
그의 목소리는 신에게, 동시에 자신에게 향한 절규처럼 갈라졌다. 등잔불이 살짝 흔들렸고 두 사람의 그림자가 벽 위에서 다정스레 겹쳐졌다.
요셉은 마리아의 방 안으로 들어와 다시 예를 갖추어 무릎을 꿇었다. 그녀 앞에 앉았지만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의 손은 무릎 위에서 움켜쥐어졌다가 다시 풀렸다. 마음 깊은 곳에서 각오를 다지듯 한참을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했다.
“사람들이 뭐라 해도, 나는 당신이 거짓을 말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그의 목소리는 떨렸으나 단단했다.
“하지만…”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바닥을 바라본 채 숨을 고르며 속삭였다.
“하느님이 정말 당신에게 그 아이를 주셨다면… 왜 나를 이렇게 침묵 속에 두셨을까요?”
그 말은 신앙과 사랑 사이에서 금이 간 심장 깊은 곳에서 올라온 절규였다.
마리아는 손을 내밀어 그의 손등 위에 올렸다.
그 손은 식은 돌처럼 차가웠다.
“요셉, 저는 저와 당신을 단 한순간도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저는… 그저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있을 뿐이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부서질 듯 단단한 결심이 있었다.
요셉은 숨을 고르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마리아…”
그는 다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함께 감당하겠소. 내가 그것을 당신과 함께 감당하겠소… 이제 절대 당신을, 절대! 혼자 두지 않겠소!”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등잔불이 조금 밝아졌다. 마리아의 눈동자에 불빛이 흔들렸다. 그것은 새벽 직전의 별빛처럼 미약하지만 뜨거웠다.
두 사람의 따스한 숨결이 아주 가까이에서 서로에게 맞닿았다. 흙냄새, 눈물 냄새, 그리고 아주 희미한 생명의 향이 공기 속에 함께 섞였다. 그 향기는 슬픔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약속이었다.
바깥에서는 거칠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 집의 틈새를 스치며 지나갔다. 마치 죄책감의 먼지를 털어내듯 조용히….
요셉은 달빛이 비치는 창가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 빛이 마리아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녀는 마치 한 겹의 빛으로 감싸인 듯 고요했다.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스쳤다. 순간 모든 소리가 멎었다. 등잔불도, 바람도, 두 사람의 떨림조차 멈춘 듯했다.
요셉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비난도, 하느님의 침묵도.
그 모든 것을 넘어선 결단만이 그의 눈빛에 굳건히 자리했다.
“이제 그만 울어요.”
그의 말은 단순했지만 모든 결심이 담겨 있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내가… 당신과 아이를 지킬 겁니다.”
그 말에 마리아의 어깨가 떨렸다.
지금껏 삼킨 서러움이 조용히, 그러나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이번 눈물은 두려움이 아니라 안도였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속삭였다.
“요셉… 고마워요. 당신의 믿음이 제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대답이에요.”
불빛이 점점 잦아들었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오래도록 서로의 숨결을 느꼈다.
그 고요 속에서 세상은 아주 잠시 멈춘 듯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도, 한 생명...
그 새로운 생명은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