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나는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우리는 58명 1개 반이 6년을 같이 공부했다.
1학년 신입생으로 국민학교에 입학했는데 낯설기 그지없었다. 국민학교 때 담임 1학년 백0숙선생님은 얼굴이 하얗고 도시녀처럼 보였다. 동네 친구들도 여러 명 같이 입학했지만 거리가 10리 정도 되다 보니 학교가 재미가 없었다. 그나마 벽지학교라고 건빵을 배급해 줘서 집에 올 때는 책보에 배급받은 건빵을 책과 공책과 함께 담아 등에 메고 집에 왔다. 학교 건물은 운동장 아래 별관에 초가지붕이 있는 건물이었는데 비가 오면 운통 노린재라는 냄새나는 생물이 바닥에 떨어져서 곤혹스러웠다. 특히 화장실도 운동장 건너편 본관에 있어서 큰 걸 볼 때는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섭기만 했다. 단지 여자 담임선생님이 우리 집 별채에서 3년을 사셨던 분이라 나에게 친절하게 잘해 주셔서 다행이었다.
2학년 때는 남자 교감선생님이 담임이셨는데 선생님이 교실에 있는 시간보다 교무실에 있는 시간이 많을 정도로 가르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으셔서 우리는 딱지(빠치)치기, 구슬치기, 자치기 등을 하는 재미로 학교에 다녔다. 2학년 곽0근 교감선생님은 바쁘신지 같이 공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어떤 아이는 종이가 없으면 책이나 공책을 뜯어 딱지를 만들었다가 선생님께 혼나기도 했다. 나는 처음 상장이라는 것을 받아보았는데 딱딱하고 흰 상장종이 뒷면에 그림도 그리고 딱지를 만들어 아이들 딱지를 따 먹다가 아버지께 들켜 상장을 압수당하고 훈계를 들어야만 했다. 그해 가을 큰 태풍이 불어와서 해일이 일어났다. 학교 앞은 마을 들판이고 그 너머에 샛별해수욕장이 있었다. 해일이 해수욕장을 넘어 학교 앞 들판까지 넘어왔다. 짠 바닷물로 그해 가을 벼농사는 망치고 말았다. 학교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큰 언덕을 넘어가야 하는데 바람이 너무 세서 우리들 등에 묶었던 책보가 다 날아갔다. 골짜기 대나무 숲까지 뛰어 내려가서 몇 권의 책과 공책은 찾았지만 배급받은 건빵과 딱지는 모두 흩어져 버려서 울면서 집에 왔다.
3학년이 되었다. 3학년 이0태선생님 검정 가족점퍼 입고 다니며 백선생과 부부였고 우리 집 바깥채에서 3년을 사셨다. 아들이 이0원이었고 내 별명을 권감자라고 자주 부르곤 하셨다. 이제는 조금 자라서 학교 생활도 재미있고 집에 와서도 탱자나무 옆집 여자애들과 노는 재미에 푹 빠졌다. 삼 남매가 살았는데 큰딸은 이쁜이, 둘째는 0식이, 셋째는 똥예라고 불렀다. 아저씨는 곰보 얼굴에 고깃배를 가지고 계셨다. 부모가 없을 때 나를 집에 오라고 하더니 이쁜이와 둘째가 남녀가 성교하는 동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좁은 방에서 자면서 부모의 사랑 장면을 아이들이 흉내 내는 것이었다. 못하게 말렸지만 나에게 유년시절 성희롱을 했던 당고모 아들의 행동이 생각나서 트라우마가 되어 오랫동안 가슴 깊은 곳에서 나쁜 기억으로 떠 오르곤 했다. 결국 이쁜이네는 서울로 이사가게 되었고 다시는 만날 수가 없었다.
탱자꽃
도시에서 자란
계집아이 얼굴이다.
창백해 보이지만
접근하기 어려운
날카로운 가시
하얗게 핀 탱자꽃을 보면
어릴 때 같이 뛰놀던
이쁜이 생각이 난다.
온 집을 둘러싸
아이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옆집 애꾸눈에 곰보 얼굴을 가진
배를 타던 아저씨의 큰 딸
탱자나무 울타리에 구멍을 내고
나는 늘 이쁜이를 불러내
같이 놀았다
삐비 뽑고 박달나무 열매 따먹고
오디 열매에 입이 검어질 때까지
폭풍우 치던 어느 날
뱃사람 애꾸눈 곰보 아저씨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이쁜이네 식구들 모두 서울로 뜨고 말았다.
가을이 되어
이쁜이네 집 울타리에
탱탱하게 부풀어 오른 탱자알만
애꿎게 터뜨려 버리고
이쁜이는 영 못 만나고.
4학년이 되었다. 4학년 최0봉선생님 아침에 중장리에서 논물 보시고 출근하셨고 공부가 끝나면 청소당번에게 청소시키고 신문 덮고 주무셨다. 청소하면 집에 보내지 않아서 잠에서 깨서야만 보내주셔서 집에 늦게 가곤 했다. 그 당시 반장은 선거가 아니라 담임선생님이 지명하는 제도였는데 이0록이라는 똑똑한 친구가 3학년부터 줄곧 반장을 도맡았다. 자연히 담임 대신 권력자가 되었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엄석대처럼 권력자로 행세했다. 건빵을 나눠줄 때나 청소시간에는 반장이 왕이었다. 초나 들기름을 가져와서 매일 마룻바닥을 닦아서 검사를 받아야 했다. 반장과 그 주변의 졸개들은 의기양양했고 우리들은 공산주의 치하에 있는 인민들처럼 반항을 하지 못했다.
5학년 정0진선생님 교대 졸업 후 발령이 나서 동네 처녀와 결혼했다. 우리들에게 단체로 기합을 많이 주고 폭력이 심했다, 닭을 기절시킬 수 있다느니 하며 이상한 뻥이 많았다. 반장의 권력은 5학년 때도 여전해서 청소시간에는 덩치 큰 남자애의 등에 무등을 타고 청소하는 우리들을 괴롭혔다. 어느 날 다른 동네의 덩치가 커진 친구들이 힘을 합쳐 반장을 따로 공격해서 그 친구의 권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도 반장의 졸개였던 덩치 큰 친구에게 도전했지만 힘에 밀려 깔리고 말았다. 하지만 결국 우리 반에 새로운 질서가 생기고 평화가 찾아왔다. 다사다난했던 5학년이 지나갔다.
6학년 민0찬선생님 운동을 좋아했고 잘 생기셨으며 같이 체육 하기를 좋아했고 도시남이었다. 나중에 교직을 그만두시고 서울에서 사업을 하셨다. 토요일 자유학습의 날에는 자유롭게 야외 수업도 하고 바다에 가서 낚시대회도 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겨울방학이 되면 우리는 양달에 모여서 구슬치기 하느라 온 정신이 팔리곤 했다. 나는 구슬을 따서 판 동전을 모아 방학이 끝나자 학교에 가져가서 저축왕이 되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불로소득이라고 다른 친구에게 저축상을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6학년을 마치고 나는 읍내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다. 몇몇의 동네 친구들은 가난이라는 이유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