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비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1920) >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일상으로부터 경계와 긴장감을 발생시키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은 대표적인 독일 표현주의 영화로 흑백 무성영화지만 강한 명암대비와 낮과 밤에 따라 달라지는 색채, 극대화된 인물의 표정 연기를 통해 극적인 효과와 긴장감을 조성한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인물들은 회화적인 세트 속에서 움직이며 미스터리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디자인(배경)과 끊임없이 뒤섞이는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 배경들이 마냥 초현실적이거나 현실에서 결코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집, 시장, 마을 골목 등 모두 우리가 일상에서 평범하게 마주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로베르트 비네는 초현실주의적인 공간이나 미지, 허구의 세계를 묘사함으로써 공포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지극히 익숙하고 친숙한 공간들을 낯설게 해부함으로써 두려움을 발생시킨다. 우리가 잘 알고 있고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낯선 형태로 제시함으로써 영화는 우리에게 언캐니(uncanny) 한 감정을 느끼게 하고, 쉽게 해소할 수 없는 불안함을 자극한다.
앞서 말했듯,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대표적인 독일 표현주의 영화로 분류된다. 여기서 ‘표현’이라는 용어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면, 곰브리치(E. H. Gombrich)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의도적인 하나의 표현 행위를 ‘표현’이라고 정의했으며, 허버트 리드(H. Read)는 예술에 있어서 표현이란, 일반적으로 직접적인 정서의 반응을 뜻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표현주의 예술은 내부의 응축된 감정과 내적 필연성을 외부로 해방시키는 예술이라고 보았다 . 독일 표현주의 영화는 왜곡된 공간과 과장된 미장센, 극단적인 명암 대비, 불안정한 시선 등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는 단순히 시각적 매혹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불안과 내면 심리를 형상화한 미학적 장치였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이러한 전략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는 표현주의 영화의 시각적 조형을 “심리적 진실의 외면화”로 규정하며, 시지각의 왜곡을 통해 사회적 무의식과 불안을 드러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표현주의 미학을 리얼리즘의 단순한 기록 장치로써 이해하는 대신, 세계를 재구성하는 감각적 형식으로써 이해한다.
<칼리갈리 박사의 밀실>은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장의 구분과 화면 전환은 연극적인 요소들을 연상하게 한다. 검은 화면이 원 모양으로 열리고 닫히는 화면효과와 장을 구분하는 커트가 서로 어우러지는 것은 연극 공연에서 막이 전환될 때 암막 커튼이 열리고 닫는 것을 연상시키며, 특히, 동그란 원 모양으로 점점 작아지며 검은 화면으로 전환되고 , 다시 새로운 장이 시작되며 화면이 열리는 듯 전환되는 화면 은 연극에서 암전이나 무대 전환 시 주로 사용되는 FADE-IN/FADE-OUT 조명을 연상시킨다. 또한 막이 전환되는 잠깐 사이 가지게 되는 공백은 관객의 긴장감과 궁금증, 기대감을 극대화하며, 연극 무대에서 암전 중 무대전환이 이루어질 때, 불이 켜졌을 때 어떤 무대 구성이 등장할 것이며, 어떤 이야기가 시작될 지 궁금해하며 기다리게 되었던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극 중 살인사건이 발생한 날, 살인이 일어났다고 외치는 마을주민의 모습이나 4장의 시작부분에서 제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부분은, 인물의 신체 일부(얼굴)만 동그랗게 남겨두고 남은 화면을 검게 보여주는 아이리스 효과(이때 사용되는 것은 아이리스 샷/쇼트 (Iris Shot)로, 원형 마스킹을 사용하여 특정 피사체나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거나, 망원경/열쇠 구멍을 통해 보는 듯한 효과를 준다.)를 이용함으로써 마치 돋보기로 인물 한 명, 한 명을 가까이서 상세히 들여다보며 사건의 용의자를 수색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특히, 이 동그란 원 모양이 움직이는 부분에서는 더욱 그러한 효과가 확대되는데, 살인사건의 전말을 찾아가는 탐정물, 혹은 추리극의 분위기를 더욱 조성, 강조하며 긴장감을 도모한다. 작아진 원 부분만큼이나 검은 화면 속 원 모양으로 나타나는 특정 부분에 관객은 시선을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로써 영화는 해당 장면 내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으로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킴으로써 해당 부분을 더욱 강조하고, 강한 명암대비를 곁들임으로써 인물의 표정과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한편,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극 중 극으로 진행되는 액자식 구성을 갖추고 있다. 약혼자와 자신이 겪은 기이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란시스의 증언으로 시작한 영화에서 프란시스가 증언한 칼리가리 박사와 몽유병 환자 세자르의 이야기가 내화가 되며, 영화의 마지막, 프란시스가 칼리가리 박사라고 증언했던 이가 사실 정신병원의 의사, 프란시스는 그의 환자로 지금까지 펼쳐진 칼리가리 박사의 이야기가 모두 프란시스의 상상이었음이 밝혀지는데, 이는 영화의 전반부부터 사용되던 연극적 효과들과 어우러져 프란시스가 연극의 해설자이자 연출자처럼 느껴진다. 즉,내화가 마치 프란시스가 구성한 한 편의 연극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칼리가리 박사의 이야기가 영화의 막바지에 도달해 갑자기 프란시스의 상상이었다는 그 진실이 드러나며 반전과 선사한다. 이에 관객은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되는데, 지금까지 믿어오던 이야기의 진위 여부가 불분명해질뿐더러, 이제까지 보고 들은 것이 광인이 꾸며낸 망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반대로 과연 그 광인이 정말 미친 것이 맞는지(그저 어떠한 권력과 구조에 의해 미치광이로 여겨지고 있는 건 아닌지), 또다른 반전의 여지가 없는지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크라카우어는 그의 저서 <칼리가리에서 히틀러까지 De Caligari à Hitler>에서 표현주의 영화 속에는 제 1차 세계대전 패배로 인한 독일 민족의 집단 심리와 독일 국가 이데올로기가 영화 속에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나치의 전형을 발견하는 동시에 무고하게 폭력에 내몰리고 스스로 죽음에 이르는 프란시스와, 칼리가리 박사에 의해 조종되는 세자르를 전 제적 폭력의 피해자로 해석했는데, 이처럼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그 당시 혼돈스러운 사회상에 대해 인간이 느끼는 불안과 강박관념을 환상이라는 기법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으며, 좌절과 혼란의 시기에, 권위에 대해 갖고 있던 기존의 믿음이 무너지는 현실을 보여준다. 또한, 거대한 조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한 인물이 개인에게 미치는 권력구조의 단면을 목격함으로써 현실을 재고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으며, 현실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이야기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해봤을 때, 작품 속 몽유병 환자의 망상과 정신병원이라는 극중 장소, 기이한 무늬와 선들로 구현되는 현실세계는 사회의 혼란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당대 독일인들이 시대적 현실에 대해서 독일인들이 지니고 있던 태도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막의 구분, 암전 효과와 같은 연극적 구성과 더불어 강한 명암대비, 낮과 밤을 구분하는 서로 다른 색채의 사용과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만드는 왜곡을 사용하는 등 다양한 표현기법과 음악을 사용함으로써 더불어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극 전반에 미스터리하고 기이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는 현대의 공포영화에서 흔히 활용되는 기괴한 CG, 갑자기 튀어나오는 귀신 등 관객들에게 직관적인 두려움을 줄 수 있는 화려한 장치나 직접적인 요소들은 발견할 수 없지만 않지만, 로베르트 비네는 영화에서 우리에게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을 낯설게 해부해 보여줌으로써 일상적인 배경과 사물에서 신비함과 기이함, 낯선 감각을 느끼며 불안함과 긴장감을 갖게 하고, 강한 대비를 통해 특정부분을 강조하는 카메라의 시선을 쫓으며 호기심을 갖게 한다. 이는 할리우드 서스펜스 영화와는 구분되는 특징이며, 당시 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내면의 불안함을 가지고 있던 독일 사회의 분위기가 반영되어 도출될 수 있었던 독특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사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특성들이 최근의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 감정들과 매우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익숙하고 친숙한 환경 속에서 공포와 불안감, 두려움을 조성한다는 점이 곧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의 감각이기 때문이다. 현실에는 보이지 않는 공포와 두려움이 많이 잠재되어 있다. 그것은 소속감을 잃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억울한 누명을 쓰는 일, 믿었던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아주 친숙한 공간(집, 직장, 학교 등)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와 범죄를 경험하는 일들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인데, 위험한 요소를 쉽게 떠올릴 수 없는, 긴장감과 두려움을 가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미 충분히 신체의 감각이 익숙해지고 친숙해진 환경 속에서 마주하는 사건 사고들은 낯선 것으로부터 마주하게 되는 두려움이나 긴장감보다 더욱 충격적이고 극대화되어 다가오며, 사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어쩌면 우리가 보지 못할 뿐) 우리를 둘러싼 현실에는 늘 그러한 위험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공포 소설이나 호러영화를 볼 때보다 “내 앞집에 범죄자가 살고 있다.” “내가 매일 지나는 역에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라는 말에 더욱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처럼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익숙한 요소들 속 해체와 변주를 통해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많은 두려움과 긴장감을, 익히 알고 있던 공포영화의 문법과 다른 가까운 공포감을 선사한다. 또한 영화는 회화적 배경, 즉, 정지 되어있는 2차원 평면으로부터 운동이 발생하는 것을 보여주며 영화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 원제 <Das Cabinet des Dr. Caligari (1920)>, Robert Wiene
*Iris out : 화면이 원형으로 점점 작아지면서 검게 사라지는 전환 효과. / Iris In: 검은 화면에서 원형으로 점점 커지면서 장면이 나타나는 전환 효과.
[참고문헌]
<단행본>
-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영화의 이론 물리적 현실의 구원』, 김태환·이경진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4.4
<논문>
- 서영주, 「독일 표현주의 회화와 영화 연구 :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중심으로」,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2004년.
- 이영, 「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의 독일 표현주의 전략: <살인! Murder!>(1930)를 중심으로」, 『영화연구』 제105호, 2025, 769-807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