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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록빛의 겨울비 Sep 15. 2020

저는 스물넷의 베이비시터입니다.

경력단절을 막는 첫 걸음, 베이비시터 아르바이트

“안 돼, 지지! 그걸 입에 넣으면 어떡하니.”


잠시 한 눈 판 사이, 어느새 국자를 입에 넣고 오물이는 수한이. 자기가 집어 물었으면서, 앙 깨무니 이가 아야 하다고 또 으아앙~. 19개월이라는 명성답게 아주 걸어다니는 ‘시한폭탄’ 이다. 목욕시간이야 물세례 몇 번 맞으면 되지만, 식사시간은 왠만한 땡깡이 아니다. 반찬투정은 기본이고, 밥그릇을 휭하니 밀쳐내는 일도 부지기수. 전쟁터같던 식사시간이 끝나면 바닥은 온통 수한이가 던진 반찬 잔해들로 난자하다. 정신없이 치우고 나면, 수한이는 ‘뽀로로인형’ 이라는 다음 미션을 준다. 어디 한 번 ‘숨겨 보라는’ 의미다. 그렇게 또 우당탕탕 온 집안을 헤집으며 숨바꼭질을 하다보면, 삑 - 삑 - 삑! 오우, 땡큐 갓! 바로 수한이 어머님께서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 즉 나의 업무가 종료되는 알람이 울린다. 그렇다, 수한이는 내 아이가 아니다. 난, 스물 넷의 ‘베이비시터’ 다.


난 내년에 떠날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위해 적지않은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점심시간에 잠깐 일하는 식당 아르바이트로 자금을 충당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투잡을 뛰어야 겠다’  다만 여느 대학생이든 거치는 평범한 서빙알바나 편의점 알바 외에, 조금은 색다른 업무의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었다. 다행히 살고 있는 동네 근처 나름 잘 산다는 아파트 단지의 한 가정이 특별히 눈여겨봤던 ‘베이비시터’ 알바생을 구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고, 난 망설임없이 인터뷰를 신청했다.


“흐아앙~.” 문을 벌컥 열자마자 터져나오는 아기 울음소리, 현관문 앞까지 굴러다니는 장난감들, 코를 찌르는 향긋한(?) 아기 똥 내음! 아차, 이게 바로 ‘육아의 현장’ 이구나! 그 때, 머리가 잔뜩 헝클어진 사모님께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날 맞이하셨다. ‘오늘 베이비시터 인터뷰보러 오신 분이시죠?’ 35세, 그녀는 젊은 수의사였다.


두 돌 지난 첫째 아들 수호, 내가 맡게될 둘째 아들 19개월의 수한. 베이비시터를 구한 이유는 유치원 하원시간부터 3시간 동안 수한이를 돌볼사람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사모님은 친정어머님께 몇 번 수한이를 돌봐달라 부탁했지만, 어머니도 이제 자유시간이 필요하다 여겨 부탁을 그만두셨다고 한다. 젊은 시절을 공부방에서 지새우며 합격했던 수의사, 그러나 의사 가운을 입자마자 생긴 첫 아이 수호, 그리고 뒤 이어 세상에 태어난 수한이까지. 남편에겐 누구도 아무 말 없었지만, 사모님은 ‘이기적인 엄마’ 라는 차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수한이 하원 후에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정말이지 몇 일을 밤새워 고민했어요. 수의사를 그만두어야만 할까, 그럼 수한이와 함께할 수 있는데. 그렇지만 이 직업을 그만두면 난 행복할까. 정말 되고 싶었거든요…. 수의사.”


그러다 우연찮게 발견한 베이비시터를 구하는 앱, ‘맘시터’. 풀 한 포기 잡는 절박한 심정으로 베이비시터 모집글을 올렸지만, 몇 주가 지나도 마땅한 지원자가 없었다. 그런데 포기하기로 단념하고 앱을 삭제하려 킨 순간, 내가 지원버튼을 누른 것이다. 유아교육과도, 전문베이비시터도 아니였지만, 사모님은 너무나 기뻐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했다. 아이도, 직업도, 모두 포기하지 않게 되었다.


“만일 여울씨가 지원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수의사를 그만두었을 지도 몰라요. 어렵게 합격했지만, 그래도 저에겐 제 아이 수한이가 가장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여울씨, 베이비시터에 지원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정말 .. 정말로 고마워요. 여울씨도 혹시 나중에 결혼해서 육아를 한다면, 이런 저런 방법들이 있으니까, 자신의 꿈을 꼭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끝까지 좇아가세요.“


수한이가 옆에서 작게 칭얼이자, 사모님이 수한이의 입 아래로 흐르는 침을 닦아주었다. 나는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찾으러 지원했지만, 누군가는 일과 아이 모두 포기하고 싶지 않은 절실한 마음으로 모집글을 올렸다. 그리고 나의 작은 선택이,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평생 꿈을 지켜주었다. 올해 느낀 감정들 중 가장 나의 가슴을 크게 울렸던 경험이었다.


“으아앙-.” “잠깐, 야야! 숟가락 물기 전에 기저귀부터 차고!”

오늘도 칭얼 대마왕답게, 수한이는 침 가득 묻힌 숟가락을 내 볼에 들이민다. 얼굴을 찡그리니, 수한이는 그 예쁜 미소로 배시시 웃어보인다. 오늘도 변함없이, 그리고 다시, 사모님의 번호키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도 일을 한다, 당신과 내가.

평생의 꿈이 끊기지 않고, 변함없이 이어나간다.

엄마이기에 꿈을 포기하는 일은 없기를,  

앞에 펼쳐진 넓은 길을 우리 모두 끝까지 걸어나갈 수 있기를.



청록빛의 겨울비 소속 직업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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