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박제된 천재의 비극

이상의 '날개', 일제 강점기 무기력한 현실을 침묵으로 전한 연극적 체험

by 은밀한 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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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에서 언어가 없는 '무언극'으로 과연 작품의 줄거리와 등장인물의 복잡한 감정을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요? 과거 대학생 시절, 저는 동아리 후배에게 이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연기에는 언어와 말 이상으로 비언어적 표현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이야기했지만, 솔직히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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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오래 흐르고, 저는 마침내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하나의 작품에서 접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근대소설을 무언극으로 재구성하여 선보인 작품, 무언극 <화담의 날개>입니다.


극단 화담에서 만든 이 작품은 이상의 생애 후기 대표작이자 1936년에 발표된 단편소설 '날개'를 무대로 가져왔습니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라는 문구로 시작되는 소설 '날개'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무기력하게 자아를 상실해가는 지식인의 비극을 처참하게 그립니다. 교과 과정에서 한번쯤 어렴풋이 접했을 '날개'를 과연 '무언극'으로 어떻게 선보일지, 저는 큰 기대를 안고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언어가 지워진 공간에서 피어나는 현실의 비극


무언극 <화담의 날개>의 내용은 매춘부의 남편으로 사는 남자가 무기력하고 폐쇄적인 반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데서 시작합니다. 생활을 위해 자신의 몸을 파는 아내 뒤, 작은 쪽방에서 폐인처럼 사는 남자는 인간으로서 거세된 자신의 삶과 점유하지 못하는 아내에 대한 열망 속에서 저항하고 갈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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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소설 '날개'는 이상의 자아 분신을 이입해서 만들어졌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소설 속 남자는 이상 자신의 분신이며, 현실과 경험 속에서 마주하는 갈등에 저항하고 개선하려는 자아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도피하려는 자아의 대립 속에서 펼쳐지는 열린 결말을 보여준다는 관점입니다. 또한 소설 속 아내는 이상이 사랑했던 기생 금홍을 대입하고, 폐결핵에 걸려 직업을 포기했던 자신을 남자에 대입하여 만든 소설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화담의 날개>는 이러한 '날개'의 복합적인 해석과 처참한 시대 현실, 그리고 비극적 개인사를 언어 없이도 명확히 드러내고자 합니다.


침묵 속에 확장된 구절들: 비언어 연출의 압도적인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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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극 <화담의 날개>는 '무언극'이라는 형식으로 음향, 조명, 의성어, 그리고 배우들의 섬세한 움직임으로 소설의 구절들을 절묘하게, 그리고 강렬하게 담아냈습니다. 대사를 들을 수 없는 침묵의 공간에서, 오히려 백 마디 말보다 더 날카롭고 절절하게 인물들의 감정이 전달됩니다.

아내가 주는 돈을 모아 아내에게 전하며 그녀의 하루를 '살려는' 장면: 돈 봉투가 오고 가는 손짓, 그 돈을 바라보는 남자의 공허한 시선, 아내의 무표정 속 차가움이 남자의 무기력한 욕망을 처절하게 보여줍니다.


일하는 아내를 쪽방에서 관찰하며 보이는 복합적인 감정: 조명은 좁은 쪽방에 갇힌 남자의 고립된 세계를 그려내고, 남자의 미세한 몸짓은 아내를 향한 관찰, 열망, 그리고 자조적인 감정을 혼란스럽게 표현합니다.


고뿔에 걸려 아내에게 받은 아스피린이 아달린 수면제여서 혼란한 감정을 느끼는 장면: 남자가 알약을 입에 넣는 순간, 음향은 날카로운 굉음으로 그의 혼란을 증폭시키고 조명은 왜곡된 현실감을 극대화합니다.


미쓰꼬시 백화점 정상에서 날개가 돋아나는 가려움을 느끼는 장면: 비로소 해방감을 갈망하는 듯한 그의 움직임은 관객의 숨을 멎게 합니다. 절규하듯 허우적대는 몸짓은 단순한 춤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살아있음'을 갈망하는 처절한 비명을 침묵 속에 담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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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핵심적인 장면들은 소설의 구절이 머릿속에서 상기될 정도로 정확하고 확장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무언극인데도 불구하고 소설의 내용을 정확히 모르는 관객에게도 줄거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전달했다는 점은 그야말로 무언극의 위력이었습니다.


'박제된 천재'의 그림자, 그리고 아내의 참담한 공존


<화담의 날개>는 소설의 함축된 문장들의 의미를 확장해서 다양한 움직임으로 극의 참담함을 표현합니다. 무언이기에 백 마디 말보다 남자가 느끼는 인간으로서의 삶이 죽어버리고 삭제되어 '관찰자'로 살아가는 그의 비통함이 더욱 강력하게 전달됩니다. 이 작품은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이상의 첫 문구처럼, 시대의 억압 속에서 '말을 잃고' 무기력하게 '박제되어'버린 식민지 지식인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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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생존을 위해 남자를 침묵시키고 약을 건네는 아내의 참담함 역시 무언의 움직임 속에서 짙은 여운을 남깁니다. 그들의 관계는 삶을 걸어가는 '절름발이'처럼 온전하지 못하고 결손된 채 위태롭게 나아가는 모습을 강렬하게 각인시킵니다. 남자의 자아가 훼손되는 비극, 그리고 그 비극을 공유하고 지탱해야 하는 아내의 모습까지, <화담의 날개>는 소설보다 더 극적이며 강렬하게 객석에 인물의 감정과 비참한 상황을 전합니다.


말과 언어를 넘어선 공감: 당신의 '날개'는 안녕한가요?


무언극 <화담의 날개>는 6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무언극의 매력을 압도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말과 언어가 배제된 극이 선사하는 새로운 매력을 찾고자 한다면 꼭 한번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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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 공연이 끝난 후 이상의 '날개'의 첫 문장을 곱씹어 보게 됩니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우리의 삶은 과연 '박제된' 상태는 아닌지, 우리는 잃어버린 '날개'를 다시 찾아 날아오를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집니다. 침묵 속에 깊은 울림을 전하는 <화담의 날개>는 무기력한 시대의 그림자를 넘어, 우리 내면의 잠재된 '날개'를 되찾을 용기를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당신의 '날개'는 안녕한가요?



[작성자 정보]: 은밀한 수집가, 丁火 丁海緣 드림

[질문]: 무언극 <화담의 날개>를 보면서 당신의 마음에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침묵의 순간은 무엇이었나요? 혹은 당신이 생각하는 '박제된 천재'의 모습은 어떤가요? 댓글로 함께 이야기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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