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뮤지컬 <베르테르>로 다시 피어나다.
“롯데!”
이룰 수 없는 사랑일수록 우리는 더욱더 간절해지고, 돌이켜보면 후회가 가득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첫사랑의 기억이 다른 어떤 사랑보다도 오래도록 추억의 잔향으로 길게 남는 것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어쩌면 영원한 미완성이기에 영원히 아름다운 기억으로 자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한 개인의 절실한 사랑을 담은 소설을 바탕으로 25년 전 국내 뮤지컬로 첫선을 보였던 작품이 마치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첫사랑처럼 제게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제가 나누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뮤지컬 <베르테르>입니다. 1774년 괴테가 발표한 걸작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2000년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초연되었고, 고선웅 연출이 각색과 연출에 참여한 이후 더욱 깊이 있는 작품으로 거듭났습니다.
뮤지컬 <베르테르>의 이야기는 여행 중이던 베르테르가 롯데의 모습에 매료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롯데가 마을 사람들에게 '자석산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을 본 베르테르는 그녀에게서 운명적인 유대감을 느끼고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죠. 이 '자석산 이야기'는 강렬한 인력으로 배들을 끌어당겨 부수는 산처럼, 롯데에게 거스를 수 없이 끌리는 베르테르의 파괴적인 사랑을 은유적으로 암시합니다.
그러나 베르테르의 사랑은 시작부터 좌절될 운명입니다. 롯데에게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남자, 알베르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르테르는 롯데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뇌하며 끊임없이 갈등합니다. 2000년 초연 당시에는 멜로드라마의 특성이 강했지만, 고선웅 연출이 2013년 13주년 기념 공연부터 각색과 연출에 참여한 이후로는 주연 배우들의 대사 없이 거의 '송쓰루'에 가까운 구성으로 베르테르의 절실한 내면 감정에 더욱 집중하는 작품으로 변화했습니다.
뮤지컬 <베르테르>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독특한 연출을 선보입니다. 25년 전 뮤지컬의 정수를 감상에 전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려한 미디어 아트나 포그 같은 특수효과보다는 최소화된 무대 장치와 핀 조명을 활용한 고전적인 연출이 주를 이룹니다. 이러한 연출은 베르테르의 고독한 내면 세계와 롯데와의 관계에 오롯이 집중하게 만들며, 낭만주의 시대의 연극 양식을 현대 뮤지컬 무대에 재현하는 미학을 보여줍니다.
넘버의 구성 또한 색다릅니다. 최근 대극장 뮤지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조연과 앙상블의 화려한 합창 넘버 대신, 주조연 특히 베르테르의 솔로 넘버가 극의 대부분을 채웁니다. 베르테르는 극 중에서 대사가 스무 마디도 채 되지 않고 거의 송쓰루(Sung-Through)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작품 전체가 송쓰루 뮤지컬은 아니지만, 베르테르의 파편화된 감정과 끝없는 고뇌가 음악으로 흘러넘치는 방식은 그의 절실한 마음을 더욱 깊이 전달합니다. 대사보다 음악으로 표현되는 그의 내면은 고독한 지식인의 모습을 극적으로 드러냅니다.
무대 위 피사체 활용을 통해 베르테르의 캐릭터와 사랑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무대 뒤에 놓인 커다란 바위와 그 곁에서 강인한 생명을 지닌 나무는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저는 이 바위가 롯데에 대한 베르테르의 변치 않는, 그러나 요지부동한 사랑을, 그리고 바위 옆을 비집고 자라난 작지만 강한 나무가 바로 그 사랑이 직면한 냉혹한 현실의 벽 속에서도 끊임없이 피어나는 베르테르의 순수하고도 절실한 갈망을 상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강렬한 사랑이 알베르트라는 현실의 장벽 앞에서 완전해질 수 없음을 암시하는 듯했습니다.
이러한 상징적인 무대 배치는 베르테르의 함축적인 대사와 절실한 넘버, 그리고 그의 움직임을 통해 베르테르의 깊은 내면을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작품은 복잡한 이야기보다 인물들의 감정선에 집중하여 사랑과 고뇌, 그리고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낭만적인 필치로 그려냅니다.
솔직히 뮤지컬 <베르테르>가 모두에게 '재미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담백하고 올드하게 느껴지거나, '도파민 터지는' 요즘 뮤지컬을 선호하는 관객에게는 만족도가 높기 어려운 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추억을 곱씹고, 옛 향기를 찾으며, 자극적이지 않지만 깊은 여운과 무게가 있는 이야기를 찾는다면 뮤지컬 <베르테르>는 충분히 추천드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좋은 넘버들과 장면마다 각 인물이 느끼는 깊은 감정선, 그리고 거창하지 않지만 필요한 요소들이 적절히 배치된 뛰어난 구성의 작품입니다.
소설 속 인물들의 감정선을 중심으로 직관적인 이야기를 잘 풀어낸 이 작품은, 마치 롯데의 삶에 베르테르라는 해바라기의 향기가 깊게 스며들었듯이, 관객들의 마음에 짙은 향기를 남깁니다. 어렴풋하지만 선명하게 남아있는 부모님이 데려다주셨던 첫 뮤지컬 무대에서의 감동처럼, <베르테르>는 지금도 제 마음속에 생생한 향기로 기억되는 특별한 무대였습니다.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첫사랑의 기억처럼, 당신의 마음에 오래도록 아름다운 잔향을 남길 뮤지컬 <베르테르>를 만나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작성자 정보]: 은밀한 수집가, 丁火 丁海緣 드림
[질문]: 뮤지컬 <베르테르>를 보면서 당신의 마음에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은 무엇이었나요? 혹은 당신이 생각하는 '담백하지만 무게가 있는 이야기'는 어떤 모습인가요? 댓글로 함께 이야기 나눠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