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 소리 한 톨 없고
축축한 물방울이 시야를 가로막아
어릴 적 거대해 보이던
길 건너편 등대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
높은 곳에서 마중 나온 빛을 쫓아
짧은 보폭으로 경쾌하게 나아가다가
빽빽한 안개에 안기자 걸음을 멈추고서
우두망찰하게 섰다.
왔던 길을 잃어버리고
앞이 앞인지
뒤가 뒤인지 알 수 없어
제자리걸음만 하는 사이
북두칠성조차 돌봐주지 못하는 곳에서
끝내 발을 떼지 못한 채
주저앉아 멍하게 눈을 깜빡인다
이윽고 고개마저 숙인 내 속에도
안개가 스며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