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즈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 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낸 채
한가닥 꾸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우에 세로팡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길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간다.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90』(조선일보 연재, 2008)
시각적 렌즈로 포착한 소외된 현대인의 초상
이 작품은, 가을 풍경을 그림 그리듯 제시함으로써 내면의 고독을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는 시입니다. 화자는 자신의 정서를 직접 토로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물과 장면을 화면 위에 하나씩 배치하듯 보여주면서, 한 폭의 쓸쓸한 풍경화로 자기 내면을 드러냅니다.
이 시의 화자는 세상의 활기찬 흐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풍경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그가 보는 낙엽, 길, 열차, 공장, 구름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물이 아니라, 소외된 현대인의 내면이 스며든 이미지로 바뀝니다. 특히 밝은 오후 두 시의 시간마저 황량하게 느끼게 하고, 거대한 열차의 연기를 조그만 담배 연기처럼 축소해 바라보는 시선은, 세계와 화자 사이의 멀고 쓸쓸한 거리감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단순한 가을 시가 아닙니다. 가을 들판의 자연 위에 넥타이, 급행열차, 공장, 철책, 세로팡지 같은 근대적 사물 감각이 스며들면서, 한 지식인의 고독과 무상감이 차갑고 선명한 화면으로 형상화된 작품입니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즈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낙엽과 가을
화자가 바라보는 가을은 익숙하고 정다운 고향의 풍경이 아닙니다. 그는 낙엽을 보며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주권을 잃고 떠돌던 폴란드 망명정부를 떠올립니다. 이때 낙엽은 단순히 떨어진 잎이 아니라, 제자리를 잃고 떠도는 존재의 상실감을 품은 이미지가 됩니다. 또한 포화에 상처 입은 도룬 시의 하늘을 함께 끌어옴으로써, 눈앞의 가을 풍경은 평화로운 계절의 정취가 아니라 전쟁과 폐허의 기운이 스민 화면으로 바뀝니다.
또 이렇게 이국의 지명을 사용하여 화자의 외로움을 단순한 개인감정에 머물게 하지 않고, 시대적 불안과 상실의 정조 속으로 넓혀 줍니다. 낙엽 한 장에서조차 평온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유랑과 소멸의 이미지를 읽어 내는 데서, 화자의 내면이 얼마나 쓸쓸하게 기울어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 열차가 들을 달린다.
한낮의 길과 급행열차
길을 ‘구겨진 넥타이’에 비유한 것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길은 본래 자연 속에 놓인 것이지만, 화자는 그것을 도시적이고 인공적인 사물의 감각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비유는 풍경 전체에 단정함이 풀리고 질서가 헝클어진 인상을 덧씌웁니다. 즉, 화자에게 가을 들판은 생명감 있는 자연의 공간이라기보다, 어디인가 지치고 흐트러진 세계로 보이는 것입니다.
특히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내뿜는 연기를 ‘조그만 담배 연기’로 인식하는 대목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장 밝고 또렷해야 할 오후 두 시인데도 풍경은 활기보다 공허에 잠겨 있습니다. 또한 거대한 기차의 연기가 한낱 담배 연기처럼 작게 보일 만큼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은, 빠르게 움직이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단독자의 쓸쓸한 위치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여기서 열차는 힘찬 속도의 상징이라기보다, 화자가 멀찍이 관조하는 하나의 차가운 풍경 요소가 됩니다.
포플라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낸 채
한가닥 꾸부러진 철책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우에 세로팡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공장의 지붕 그리고 구름
이제 자연은 더욱 차갑고 인공적인 모습으로 바뀝니다. 포플라나무는 푸르게 살아 있는 나무라기보다 ‘근골’, 곧 뼈대만 드러난 존재처럼 보입니다. 공장 지붕이 ‘흰 이빨’을 드러낸 형상으로 제시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자는 사물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보지 않고, 날이 서고 메마른 감각으로 포착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람에 나부끼는 철책과 ‘세로팡지로 만든 구름’이라는 표현은 이 풍경이 단순한 자연의 정경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철책은 공간에 폐쇄와 긴장의 느낌을 더하고, 구름조차 얇고 인공적인 물질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이처럼 자연 속 풍경에 공장, 철책, 세로팡지 같은 근대적 사물 감각이 섞이면서, 화자의 세계는 더욱 서늘하고 삭막한 표정을 띠게 됩니다.
이 대목은 사물을 설명하기보다 인상적인 장면으로 포착하는 이미지 중심의 수법이 잘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화자에게 자연은 더 이상 위안의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고독과 불안을 비추는 차갑고 메마른 거울이 됩니다.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한 생각 버릴 길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기울어진 풍경의 장막 저쪽에
고독한 반원을 긋고 잠기어간다.
화자의 내면
화자는 자욱하게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마치 발로 차는 물체처럼 다룹니다. 이는 청각적 대상을 시각적·촉각적으로 전이한 공감각적 표현으로, 외부의 자극마저 편안한 정취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화자의 황량한 내면을 보여줍니다. 가을밤의 풀벌레 소리가 보통 서정의 대상이 된다면, 여기서는 오히려 답답하고 거슬리는 감각으로 변합니다.
견딜 수 없는 허무 속에서 던진 돌팔매는 어떤 현실도 바꾸지 못한 채 허공에 ‘고독한 반원’을 그리며 가라앉습니다. 이 곡선은 잠깐 허공에 흔적을 남길 뿐, 끝내 어디에도 닿지 못합니다. 결국 이 무력한 몸짓은 탈출구를 찾지 못한 화자의 슬픔과 고독이 차가운 풍경 너머로 침잠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시를 마무리합니다.
현대적 감수성이 빚어낸 이미지의 성취
이 작품은 전통적인 서정성을 앞세우지 않고, 근대적 사물 어휘와 감각적인 비유를 통해 소외된 현대인의 고독을 조형해 내고 있습니다. 시인은 슬픔을 직접 설명하지 않고, 낙엽·길·열차·공장·구름 같은 사물들을 낯설게 배열함으로써 한 편의 차가운 풍경화를 완성합니다.
특히 넥타이, 급행열차, 공장 지붕, 철책, 세로팡지 같은 표현은 자연 풍경 속에 근대적 감각이 스며 있음을 보여주고, 기차의 연기를 담배 연기로 축소하는 거리감의 시선과 밝은 낮의 시간조차 황량하게 만드는 시각은 이 작품을 단순한 계절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합니다. 자연도 문명도 더 이상 온전한 안식처가 되어 주지 못하는 자리에서, 화자가 허공에 그려 보인 고독한 반원은 지금 읽어도 여전히 쓸쓸한 울림을 남깁니다.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