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조장의 흔한 시작(아이어른)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성인이 되기까지 바로잡지 못한 부적응 성장.

by 보건쌤 김엄마

어른 아이라고 하면, 어른이 우선인 느낌이 있기 때문에 70% 정도는 성인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되 30%정도의 아이같은 면모가 섞여있겠다 하는 짐작을하고 받아들였다. 몸과 마음이 커지고 나이가 스무살을 바라보다보니 어른아이라고 하는것이 낫겠다 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 마음은 마치 조금은 더 토닥토닥 응원해주며 격려하는 마음이 더 큰 입장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지금 학교에는 그리고 사회에는 그보다 조금 더 안타까운 아이어른이 더 많아지는 느낌이 든다. 18, 19세 고등학생이지만 여전히 품 안에 있는 귀여운 내새끼여서 그럴 수도 있다지만 그런 경우라면 다행히 부모님이나 선생님 말은 잘 듣는 편이어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 자신은 다 자랐다고 생각하며 부모님과 선생님을 조절하려는 태도를 가진 학생들이 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나고 받아들여질때까지 문제 행동을 하는 경우를 말하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이러한 태도를 사춘기 반항 또는 학업 스트레스 관련 불안과 연결지어 적절히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정신사회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떼를 쓰는 어린아이로 남겨지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보건실에 온 한 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파요. 목과 등 근육이 굳어져서 앉아있을수도 누워있을 수도 없어요. 당장 뭐라도 해주세요." 이 학생은 이미 어머니와 함께 소아청소년과, 내과, 정형외과, 신경과, 정신과까지 모두 다녀왔고 병원에서는 대부분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들었으며 현재 하고 있는 치료는 거북목으로 인한 도수치료 정도가 전부인 상황이다. 친구나 교사가 괜찮나고 어깨나 팔을 토닥이면 온 몸이 다 아픈데 왜 만지냐며 화를 내고, 정작 병원에서 처방받은 진통소염제는 복용을 하지 않고 보건실에 와서 안아프게 해달라며 인상을 쓴다.


마르고 갸냘픈 어머니는 지칠대로 지쳐 이제는 학교에서 아들이 거는 전화는 거의 받지 않으시고, 교사의 전화에도 학교에서 알아서 해달라고 하신다. 더이상 조퇴를 하고 갈 병원도 없고, 다소 거칠고 난폭한 언행을 쓰는 아들을 맞딱뜨리기 버거워하시는 상황이다. "어떻게든 학교에 좀 있게 해주세요. 데리고 갈 병원도 없구요. 아이는 자꾸 응급실을 가겠다고 하는데, 응급상황이 아니다보니 병원에서 받아주지도 않아요. 그러면 병원에서 또 화를 내서 제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요."라고 말이다.


수능이 끝나고나면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이미 그 다음 학년으로 마인드 세팅이 된다. 지금 고2라서 예비 고3이라 불리어진다면 그냥 고3 모드로 들어가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학업에 열성을 다하는 치열한 분위기 속에서 나와 부모의 기대에 성적이 부응하지 못할 때 가혹 이 학생처럼 여러 신체 증상이 표출되는 사례가 더 많아지고 있다. 오랜 시간 가만히 앉아서 공부하다보면 이곳저곳 통증을 호소하는 학생은 늘 있어왔고, 그러다가 체육시간을 맞아 갑자기 격하게 움직이게 되면 관절 곳곳을 다쳐오는 학생들도 늘 있어왔지만 마음이 아픈 학생들은 매년 많이 늘어난다.


정신과 병원으로 보내기에 아직 미미하고, 정형외과로 가서 10회 이상의 도수치료를 받고 있기에는 늘 시간이 부족한 고등학생들이기에, 가까운 가족과 학교의 보건실을 찾고 두드리고 호소해댄다. "나 힘들어요. 힘들어. 집에 갈래요. 공부하기 싫어요." 등수를 매겨 서열화 하지 않고, 누구나 A를 받고, 제출만 하면 수행 만점을 주며, 체험 위주의 수업을 하다보니 수능 전까지는 학업에서 냉철하게 패배감을 느끼고 강단있게 새로 시작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 학생들. 여태 마음 편히 다녔으니 고등학교에서 느끼는 좌절감은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여야하는 것인가? 학원에서의 성적 검증을 통해 알아서 보완을 했었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성적으로 인한 허탈감을 신체 정신적 증상과 반항어린 태도로 표출하는 것은 언제까지 받아줄 수 있는 상황인가?


어제 응급실을 다녀왔고, 그러나 처방 받은 약은 복용하지 않았고, 등교하여 보건실에 와서 다시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는 저 반아이 반어른 예비고3을 보며 안타까워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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