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서 배우는 것들

십대가 아니라 사십대로 싸우며 성장한다

by 이혜아


친한 언니와 싸웠다. 누구나 일기의 첫문장으로 쓸 수 있는 문장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인생에서 누군가와 싸워 본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굉장히 특별한 날이다. 싸움의 승패를 떠나서 당시 느낀 감정과 나의 대응, 언니와 나의 숨은 모습을 기억한다. 싸운 사정에 대해서 소상히 말할 수 없다. 누군가의 잘잘못을 가려달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싸움과 갈등의 시간은 하루를 넘기지 않았고 언니와 나는 소통의 해프닝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성장의 느낌을 받는다. 싸워봤고 화해했으며 동시에 관계는 여전히 믿음과 사랑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살면서 싸워본 적이 거의 없다. 어린 시절 한두번이야 있겠지만 그 한두 번마저도 싸움의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불편한 마음으로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너무 많은 눈물을 쏟으며 절친이 되었지만 싸움은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갈등은 피해갔고 적당한 감정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에 익숙했다. 사람들 앞에서 화를 낸 적이 없어서 이성적이고 의연한 태도를 좋아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의 평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는 상황을 대면하지 않고 외면해 왔는지 모르겠다.


언니는 안정과 균형이라고 믿었던 나의 세계에서 ‘경직성’을 읽어낸 사람이다. 그 경직성을 깨야한다고. 그만큼 서로를 깊이 바라보는 사람과의 우정은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났지만 그 때는 교류가 없었다. 2년 후, 결혼식 자리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았다가 번호를 교환했다. 먼저 자리를 뜰 때, 언니가 안아주었는데 언니는 나의 눈빛에서 불안과 우울을 느꼈다고 한다. 의사인 언니의 직감 덕분에 나는 몇 달간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언니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빨리 나빠졌다가 좋아진 케이스는 드물다고 했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 연약함을 서로 보듬어주어야 하는 것이기에 언니와 나는 서로 마음의 안부를 전하며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잘지내?”라는 말보다 “요즘 마음이 어때?”라는 말로 시작한다. 우리는 서로 이야기들을 들어주며 내담자와 상담자가 되기도 한다. 서로의 마음으로 깊숙이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우울과 불안에 시달릴 때, 언니 역시 나에게 힘든 일을 털어놓으면 나는 언니의 입장에서 힘이 되는 말을 하려고 애썼다. 그러면 동시에 그 말의 효과가 언니에게만이 아닌 나에게도 이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언니는 나에게 경직성에 대해 문제 삼았고 나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충고에 당황스러웠다. 어떤 문제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을 원하는 언니는 나의 지나친 안정적 태도에 화를 냈고 나도 불만을 표했다. 문자로 날선 말들이 오고 갔다.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고, 목소리를 듣지 않은 채, 왜곡된 마음으로 문장을 읽다가 서로 폭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처음으로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마지막 싸움이라고 할만한 것이 청소년기의 이삼십년 전이고 또 그 이후에는 애초에 거리를 두거나 관계를 끊는 방식으로 일관했었다. 언니는 내 인생에 굉장히 소중한 사람이고 관계가 끊어진다는 것은 절망적인 일이긴 하다. 하지만 언니와 내가 마음을 쌓아온 시간과 애정을 믿었다. 만에 하나 마지막이더라도 지금까지의 관계는 엄청난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있을 때, 언니가 먼저 문자를 보냈고 서로 사과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싸움을 통해서 얻는 것들이 많다. 나는 관계의 유지를 위해서 나의 마음을 어느정도 포기하고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마음으로 셈을 하다가 내가 손해라고 생각한 관계는 거리가 생기고 정리가 되었다.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감정적 고요는 겉으로는 유지되더라도 안으로는 무너짐에 익숙한 체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내리누르는 평형이 아니었을까. 싸움을 통해서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했고 그 과정에서 불안이나 두려움보다는 진심이 컸다. 그리고 언니 역시 화를 내더라도 그 안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서로가 가진 화와 불만은 ‘내가 아끼는 상대방의 모습’ 즉 애정에서 기인한 것이다.


다시 평소처럼 서로 만나고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나에게는 묘한 성취감이 생겼다. 싸움은 승패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감정은 역동적으로 요구를 했고 그 대상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불안이나 좌절도 없었다. 그리고 서로가 관계의 유지와 우정에 대한 진심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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