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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빛 Nov 14. 2022

힘듦의 상대성

인생을 사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하루 반나절 썰을 풀 수 있을 정도의 어려움을 겪어봤을 것이고

누구에게나 인생의 어려운 고비를 마주함으로써 좌절도 느껴봤을 것이다.


어린날의 나에게 힘듦은

부모님의 강압과 억압으로 인한 자유의 박탈감이 그것이었고,

20대가 들어서자

뭘 해 먹고 살아가야 할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어렸을 적 내 꿈은 다 어디로 갔는지

이 세상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어려움을 경험했다.

30대가 되자

밑도 끝도 없이 한없이 지속되는 독박 육아의 현실과 죽을 때쯤 끝날 것 같은 가사노동

그리고 그것을 알아봐 주지 않는 남편의 무심함이 무거웠다.


인생의 굴곡과 힘듦은 끊임없이 나를 고생시키고 굴렸으며 고민하게 했고 이 지구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나일 거라며 몰아 댔다. 하지만 힘들었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직장에서 무책임하게 과한 업무를 가져와서 부하직원을 괴롭힌다는 한 친구는 하루에도 수십 번을 사직서를 마음으로 냈지만, 그만두면 발생하는 경제적인 어려움과의 괴리에 그만두지도 못하는 현실이 너무 슬펐고

가장 가까운 형제로부터 뒤통수를 맞고 돈도 명예도 형제도 잃은 내 아버지의 인생도 고되었다.


과연 어려움은 각자에게 정말 기발하게 다양한 모습과 방법으로 찾아와서 삶을 힘들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런데 타인의 힘듦을 당신은 백 프로 공감할 수 있는가.

아마도 '어 그래 힘들겠구나' 공감 내지는 예측만 할 뿐 일 것이고,

실제로 그 입장이 되어서 처절하게 눈물 흘리며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직접 그 일을 경험해 본 사람일 뿐이다.


내 아버지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용서해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가증에 화가 났던 건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잃지 않았으면서 쉽게 말했기 때문이다.

내가  끊임없는 독박 육아와 가사에 힘겨워 처절하게 울고 있을 때, 넌 그래도 애들이 가족이잖아 나는 생판 남이 나를 못살게 군단 말이야 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화가 났던 건,

당신이 그런 육아를 경험하지도 않고서 육아의 힘듦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나 내 인생에서 주인공은 나니까, 

내가 가장 힘들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는 한 누구도 백 프로 그 고됨을 알 수없다. 이렇게 내가 느끼는 어려움을 남들은 예측만 할 수 있듯, 나 또한 남의 어려움의 무게를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다. 단정 지어선 안된다.

그저 힘들고 어려웠을 그 마음을 쓰다듬어주고 안아줄 뿐,

힘듦의 무게를 논하는 순간 상대방은 당신과 싸우고 싶어질 것이다.


누구에게나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어려움이 닥친다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 그릇을 확인한다. 세상을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처연하게 가을의 단풍을 보며, 차가워져 가는 겨울이 묻은 바람을 맞으며

시간이 약이라는 말로 마음을 토닥여가며 버텨가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읽으며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을 보냈던, 보내고있을 당신들께,

마음 깊이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싶다.

잘해왔다고,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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