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아침 알람이 울리기도 전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에 깨어 눈을 떠보면 천사 같은 아이들이 세상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있다.
주섬주섬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며
부랴부랴 주방일을 보기까지- 나는 몇 번의 감정을 거쳤을까.
알람이 울리기 전 눈을 뜨다니, 더 잘까 말까 하는 고민과 아쉬움
잠든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느끼는 사랑스러움,
아침을 준비하는 분주함 속에 느끼는 벌써 피곤함
갓 잠에서 깬 둘째가 내는 짜증에 단전 깊숙이에서 올라오는 빡침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과 기분은 내가 말하기 전까지 드러남이 없다.
머리 위에 이모티콘이 떠있어서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과 표정이 띠링띠링 바뀌어주면 모를까,
아쉽게도 여기는 철저한 현실이다.
감정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메마른 사막의 느낌으로
기계 작동하듯 똑같은 일상의 루틴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쳇바퀴의 삶 그 자체가 아닐까.
많은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우울증의 근본적인 원인은 이런 데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러했으니까.
사실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들은 어쩔 수 없이 매일매일 똑같은 루틴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변수라곤 친구들과의 약속 내지는 내일 아침을 염두하지 않은 심야영화 관람 정도.
그런 쳇바퀴를 계속 돌다 보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감과 동시에 삶 자체가 너무 무의미해지고 이게 맞나 싶은 의구심이 들며 건조하다 못해 팍팍한 일상에 지칠 수밖에 없다. 돌파구는 늘 가슴속에 지니고 있던 은장도 같은 사직서뿐인 것 같고.
나의 20대 자취생활은 그런 메마른 사막 같은 쳇바퀴 속에서 막을 내렸다.
사랑을 주고받고 화내고 속상해하고 그리워하고 즐거워하고 고민함 없이 사는 메마른 삶은 내 정신을 병들게 했다. 나는 사직서를 내는 대신 장거리 출퇴근을 택함으로써 일상의 변화를 택했고, 가족과 함께 하는 삶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었고, 화 낼 대상이 있었고 고독함을 그리워할 수도 있었으며, 나를 괴롭게 하는 직장 상사를 대신 욕해주는 근사한 부모님도 있었다.
'지금도 나는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내 마음의 감정이 메말라가는 것을 느끼면
변화를 끼얹는다.
늘 보는 가구의 위치를 옮기고, 거울속의 내 머리색을 바꿔보고, 즐겨입는 옷의 색을 바꿔본다.
메말라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조급함으로 바꿔보다보면 권태로움을 피할 수 있고, 색다른 환경이 주는 신선한 공기와 함께 바래져 가는 감정의 땅에 물을 주곤 한다.'
나를 괴롭게 했던 것들은
보통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있었다.
나를 행복하게 했던 것들도
보통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없는 것이 아니고
눈에 보인다 하여 그게 전부이지도 않았다.
잠든 아이를 보는 따뜻한 눈길 속에 사랑과 애정이 있으며
지친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손에 들린 맥주 한 캔에 설레임도 있다.
의견이 맞지 않는 가족과 오가는 언성 속에 분노가 있고
그 안에 미안함도 있다.
이 세상을 따뜻하게 이끌어가는 소중한 감정들이다. 대부분 형태도 소리도 없지만
그 감정들이 있어야 내가 건강하게 숨 쉴 수 있다.
그리고 건강하게 표출해내야 비로소 내 마음의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세상이 좀 더 따듯해질 수 있다.
건강한 분노의 표출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큰 힘이 있지만
잘못된 분노의 표출이 여기저기 사회의 각종 범죄행위를 이끌어 낸다.
사회에 분노가 많아지고 혐오가 채워지는 데엔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소홀함.
그리고 삐뚤어진 감정에 대한 표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