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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FG 이엪지 Mar 08. 2022

올림픽이 내 집을 부수고 불태웠다

EFG REVIEW : 꼬꼬무 <무등산 타잔 박흥숙> 편

여러분은 이번 베이징 올림픽, 어떻게 보셨나요? 올림픽을 꽤나 관심 있게 보셨다면 마냥 좋은 평가만 나올 것 같지는 않은데요. 참 여러 가지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올림픽이었습니다. 저도 화를 내면서 보다가 급기야 '올림픽의 의미'에 대한 의문이 들어 분노의 서치를 해보기도 했죠. 그런데, O.M.G. 그러다 올림픽이 갖고 있는 더 다양한 문제들을 발견해버렸지 뭐예요? 강제 철거와 이주, 선수들에 대한 폭력, 올림픽이 파괴하는 환경까지… 


그래서 오늘은 올림픽이 끝난 직후에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을 전달하려 합니다. 올림픽은 앞으로도 2년에 한 번씩 있을 텐데, 저는 점점 더 나아진 올림픽과 함께하고 싶거든요. 그러니까 뒷북이 아니라, 2년이나 앞선 거라고 해두죠. :) (게다가 패럴림픽은 아직 한창이라고요.)


오랜만에 돌아온 EFG REVIEW 시간! 내용의 이해를 위해 아래 영상을 먼저 보고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FG REVIEW : <꼬꼬무> - 무등산 타잔 박흥숙



위 영상은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무등산 타잔 박흥숙'편이에요. 1977년 박흥숙 일가는 마땅히 살 곳이 없어 무등산에 움막을 짓고 살다가, 어느 날 구청 직원들에 의해 이 작은 움막마저 불타게 되는데요. 자신의 집이 사라졌을 때에도 화조차 내지 않던 박흥숙이, 근처에 아픈 노인들이 사는 움막이 불타는 것을 보고는 이성을 잃고 망치로 구청 직원 4명을 살해한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이게 올림픽이랑 무슨 상관이 있나 싶으실 텐데요. 60~70년대에는 도시화, 산업화로 인해 서울에 인구가 몰리기 시작했는데, 집이 부족한 탓에 하천 주위나 산 아래에 판자촌이 많아졌어요. 그런데 외국과의 교류가 늘고 재개발이 본격화되자, 정부는 철거 용역 깡패를 동원해 서울 곳곳의 무허가 빈민촌을 철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절정에 달했어요. 그 일대를 성화 봉송 주자들이 지나가기로 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임시로 설치한 건물을 무너뜨리기도 했죠. 그렇게 88 서울 올림픽 준비 중에만 무려 72만 명이 집을 잃었고, 1986년 4월부터 1988년 2월까지 14명의 철거민이 사망했습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은 땅속에 굴을 파고 살았다고 해요. 그렇게 1987년 대한민국은 '가장 비인간적인 철거를 하는 나라'로 선정됐죠. 



#'무등산 타잔 박흥숙', 어떻게 봤어?


사진 : ⓒ <꼬꼬무> - '무등산 타잔 박흥숙' 中


브랜디 : 내가 지금까지 본 <꼬꼬무>의 에피소드들은 한 사건에 대해서만 깊이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편을 통해서는 특정 사건을 예시로 당시 사회상을 볼 수 있었던 점이 인상 깊었어. 그리 멀지 않은 과거라고 느껴지는 1980년대에도 참 많은 비극이 있었다는 걸 다시금 느낀 것 같아. 이럴 땐 내가 편하게 살고 있는 게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참 복잡 미묘하더라고. 



올리브 : 이게 그 유명한 88올림픽 때의 이야기잖아. 대한민국에서 개최된 최초의 올림픽 말야. 나는 사실 88올림픽하면 호돌이나 <손에 손잡고>라는 노래가 제일 먼저 떠오르거든. 그만큼 내 머릿속에서 88올림픽은 '평화의 상징', '한국의 위상을 높인 세계적인 행사'였는데, 이번에 꼬꼬무를 보고 엄청 충격받았어. 생각보다 정말 잔혹하다고 느꼈고, 내가 학창 시절에 배웠던 근현대사는 도대체 뭐였나 싶더라고. 어렸을 때 내가 배운 88올림픽은 '한강의 기적'을 상징하는 행사였거든. 이런 걸 보면 역사가 모든 걸 말해준다고 하지만, 제대로 배우지 못한 역사는 오히려 갇힌 시선을 만드는 거 같아.      


그럼 브랜디는 혹시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 


브랜디 : 사실 박흥숙에게 사망한 사람들도 공무원이 아니라 구청에서 고용한 박봉의 일용직이었잖아.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무등산을 오른 거지. 이걸 보고 게스트 분이 하신 말이 기억에 남는데, "본인이 결정할 수 있는 권한 밖의 일들 때문에 어렵고 힘든 사람들끼리 부딪치는 게 가장 큰 비극이다."라는 거였어. 생존의 최전선에 놓여있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끼리의 비극적 참사라는 게 정말 안타까워. 정말로 벌을 받아야 될 존재는 위에서 그냥 지켜만 보고 있고, 그 현장엔 힘없는 서민들만 서 있는 모습은 비단 이 사건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 



올리브 : 나는 건물을 철거할 때 어떤 사람이 옷에 불이 붙은 채로 위에서 떨어지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 정말 가슴이 철렁했거든. 브랜디 말대로, 누군가에게는 정말 생존의 문제였잖아. 십수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어렵고 조심스러운 거 같아. 우리는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마음에 많이 와닿았지만, 뭐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운 강렬한 장면이었어.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박흥숙이 쓴 자필 최후 진술서 중 한 문장이었어.


"돈 많고 부유한 사람만이 이 나라 국민이고, 죄 없이 가난에 떨어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오래전에 한 말인데도 어쩐지 낯설지 않게 느껴지더라고. 여전히 사회는 능력과 돈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고 있고, 남들 일할 때 너는 뭐 했냐는 식으로 개인을 타박하는 분위기가 만연하니까. 박흥숙이 살았던 시대에 비해 지금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이런 걸 생각하면 조금은 씁쓸해지네.



#올림픽, 마냥 즐겁게 봐도 되는 걸까


영상 : ⓒ 스포츠머그 - SPORTSMUG


브랜디 : 맞아. 사실 박정희나 전두환(당시 대통령)을 두둔하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말이, "이들 덕분에 경제가 살았다."는 거잖아. 그렇다면 나는 그 성장한 경제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고, 어떻게 보면 당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짓밟고 올라온 국가에서 살고 있지. 이런 걸 '누린다'라고 표현하기도 부끄럽네. 국민이 살기 좋은 땅을 만들기 위해 국민의 삶을 무너뜨린다는 게 참 모순적으로 느껴져. 국가의 성장에는 꼭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걸까?


올리브 : 문제는 이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거야. 브라질은 2016년 리우 올림픽 개최지였던 아우토드루무의 개발을 구실로, 최소 7만 명의 지역 주민들을 쫓아냈다고 해. 일본 또한 2020년 도쿄 올림픽 때 주민들을 강제 퇴거시킨 사례가 있지. 그곳에 살고 있던 주민 대다수는 홈리스 노인, 장애인이었다고 해. 올림픽이 개최지 인근의 땅값을 폭등시키는 걸 고려하면, 앞으로도 이런 일은 계속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국가가 올림픽을 명분으로 지역 주민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빈민가를 철거해서 올림픽 난민을 발생시킨다면, 난 앞으로 올림픽을 즐기면서 볼 자신이 없어.



#철거는 여전히 진행 중


사진 : ⓒ <꼬꼬무> - '무등산 타잔 박흥숙' 中


올리브 : 사실 나는 올림픽을 보면서 기분이 묘할 때가 있거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올림픽에서 느껴지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 때문이었던 것 같아. 한국도 그렇고 요즘은 많은 나라가 다민족, 다인종 국가잖아. 그런데 올림픽이 한창일 때 "저 사람은 한국인인데 왜 저 나라 선수로 출전했냐", "이 사람은 누가 봐도 외국인인데 한국인 선수가 맞냐", 이런 말을 종종 듣게 돼. 이럴 땐 '한국인'이라는 게 무언가 정해져 있는 '관념'같은 느낌이 들더라고. 그런 점에서 올림픽은 "우리는 하나"를 외치면서도, 그 '하나'라는 범위를 굉장히 좁게 가져간다고 느껴. 그래서 같은 국민인데도 어떤 이는 소위 '한국인 답지 않다'는 이유로 소외되는 일이 발생하는 거 같아.


브랜디 : 1987년, 대대적인 철거 작업이 이루어졌던 상계동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명동성당에 천막을 치고 생활했대. 그러다 여기서 언제까지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부천으로 이동을 했는데, 거기서는 빈민촌이 보이지 않게 담장을 세워버렸다더라. 당시 정부가 행한 '환경미화작업'은 여기서 끝이 아니야. 부랑자, 노숙인, 장애인들을 말만 '보호시설'인 곳에 강제로 수용시키기도 했다고 해.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후 우리 사회에는 용산 참사가 있었고, 6명이 사망했지. 27년 뒤에는 304명이 차가운 물속에서 목숨을 잃었어. 상계동 빈민촌 철거가 진행되던 1987년은 6.10 민주항쟁이 있었던 해야. 수많은 사람들이 국민의 권리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고 목숨을 잃었는데, 지금의 우리는 이 권리를 완전히 찾았다고 볼 수 있을까? 지금도 여전히 국가가 부정하고 싶어 하고, 때문에 무시당하는 존재는 남아있지 않을까?




88 서울 올림픽으로 강제 철거를 겪은 분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대부분이 끝끝내 서울 밖으로 밀려났다고 합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정부가 무작정 철거한 것은 집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것이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이 겪었던 일임을 생각하면, '올림픽을 대체 왜 하는 걸까?'라는 의문도 드는데요. 찾아보니 올림픽에는 '보다 발전되고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는데 이바지'하는 역할이 있다고 하네요. 여기서 말하는 '평화'의 의미는 또 무엇일까요? 이건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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