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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오늘이 왔네요.
참 당연하고 뻔한 이 말....
"오늘"
우울증 환자에겐 당연한 이 말이 또 당연하지가 않습니다.
요즘 정신과와 약도 바꾸고 통증이 많이 줄었어요. 본래 활동적이라 아들이 다니는 킥복싱 무에타이를 같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정신과 육신이 모두 상승곡선을 타는 순간이라 생각했습니다. 오랜만에 많이 웃고 딩구르고 멍들고 참 행복했거든요, 어떤 치명적인(가정사) 상황을 한번 부딪히고 나니 한순간에 멘탈이 모래성처럼 부서지더라고요.
그동안 늘 생각했지만 생각하지 않기로 애썼던 물음표가 툭 튀어나왔어요.
"왜 살아야 하지?"
정신과 선생님도 딱히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말해줄 수 없는 질문이었죠. 나의 전원을 off 시키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어요. 그리곤 그동안 했던 여러 번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작심했습니다.
내 생활 반응을 지우기 시작했지요.
어떻게 죽을지 계속 찾아보며 방법과 장소를 물색했어요.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어요. 남은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까 봐요.
어떻게 하면 dna조차 흔적을 안 남길 수 있을까?
누구에게도 피해 주지 않고 가는 방법은 뭘까?
이 생각만 하며 며칠을 산거 같아요~
결국 아무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가는 방법은 못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중에 편히 갈 수 있는 방법은 찾았지요.
전 안락사를 찬성합니다. 올 때도 내 맘 데로 온 게 아닌 데, 갈 때조차 고통스럽게 숨만 붙어 버텨야 한다면 그건 형벌 같거든요. 내 인지가 멈추고, 사지를 못쓰게 되는 날 내가 내 생명을 결정하는 게 왜 안될까요. 아빠의 고통스러운 마지막을 기억해서인지 나는 그렇게 끝을 맺고 싶지 않더라고요.
여러 윤리 문제들이 있겠지만 합법화되리라 봅니다. 급속한 노령화 사회, 미성숙한 복지, 사각지대와 빈부의 격차, 사회적 윤리문제와 복합되면 방법이 없을 거 같거든요.
물론 그게 언제냐의 문제지만요..
오늘이 오길 바라지 않았던 날들이었습니다. 그 순간에도 참고 운동을 하고 왔습니다. 땀으로 옷을 적시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하며 겨우겨우 하루를 넘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그럽니다.
"그냥 살어"
땀은 나를 해소시켜 줬습니다. 그리곤 들뜨고 팽창된 나의 염증을 진정시키며 말했습니다.
"내가 함께하는 한 널 지켜줄게"
"그러니 힘들 땐 날 꼭 불러"
"잘못 삼킨 건 반드시 뱉어야 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