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을 먹은 족발

먹고 먹고 먹고

by 이음

띵동~

배달의 민족이 우리 가족의 저녁을 데려왔다.

‘세상 맛난 족발’이라는 이름값을 믿고 주문한 ‘불블반반족발’.

반은 매운 불족, 반은 짭짤한 간장족발.


비닐봉지를 뜯자, 윤기가 좔좔 흐르는 족발이 뽀얀 무쌈 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상추, 마늘, 쌈장, 그리고 예상보다 귀여운 사이즈의 콜라 한 캔.

우리 가족은 족발을 하나씩 집어 들고 통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간장파야.”

아빠가 젓가락을 놀리며 말했다.

“간장은 말이야, 기본 중의 기본이지. 원래 족발은 이런 맛이야.”


“아니지, 요즘은 매운 게 대세지. 매콤한 불족은 스트레스도 날려줘.”

엄마는 입가에 땀이 맺히며 매운 걸 먹는다.

혀는 고통스럽다며 헥헥거리지만 젓가락은 쉬질 않는다.


동생은 상추에 간장족발을 올리고 마늘을 세 개나 얹더니 한입에 쏙 넣는다.

그리고 말한다.

“난 고기보다 마늘이 좋아.”


“그럼 마늘을 먹지, 왜 족발을 시켰냐?”

내가 묻자, 동생은 입을 가득 채운 채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간장 안 먹고 족발 먹는 사람이 어딨어. 간장 마늘 쌈이 진리야.”


나는 불족 하나, 간장 하나 번갈아가며 먹으며 생각했다.

맵고 짠 인생. 그리고 가끔은 달달한 마늘 향이 감도는 순간들이 좋다.


그때, 아빠가 젓가락을 멈추며 진지하게 한마디 던진다.

“근데 말이야. 인생도 반반이면 좋을 텐데.”


우린 멈칫했다.

“반은 불 같고, 반은 간장처럼 순한 인생. 맵고 짜고 달고, 그게 다 버무려져야 밥도 술도 술술 들어가지.”


“근데 진짜 생각해보면…”

아빠가 갑자기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말했다.

“이 반반이라는 게 꼭 족발에만 있는 게 아니야.”


“또 시작이다…”

동생이 콜라를 벌컥 마시며 중얼댄다.


“정치도 그렇잖아. 좌파 있고 우파 있고. 요즘엔 가족끼리도 정치 얘기 함부로 못 하는 세상이래.”

엄마가 탁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 그러니까 그놈의 정치 얘기 좀 그만해.”


“아빠는 좌파야? 우파야?”

내가 물었다.


“나는 중간이야. 중립. 족발로 치면 무쌈이야.”

“헐, 아빠 그건 신념이 없는 거지.”

동생이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가 고개를 저었다.

“나는 좌우 이런 거 모르겠고, 그냥 살림에 도움 되는 쪽이 최고야. 누가 뭐래도 생활형 정치지!”

“그게 포퓰리즘이야.”

“됐고, 넌 고기부터 씹어.”


그때 동생이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좌파.”

“그래? 왜?”

“왜긴, 세상이 불공평하잖아. 다 같이 잘 살아야지. 복지! 연대! 평등! … 사각지대가 얼마나 많은데!”


그러더니 불족을 툭 집어 들었다.

“그래서 난 이 불족이 좋아. 매워도 같이 땀 흘리는 맛이 있어.”


아빠가 콧웃음을 치며 간장족발을 집었다.

“그럼 나는 우파네. 자기 힘으로 버티는 맛. 시장경제! 경쟁! 효율!”


“에이, 간장도 배달이잖아요. 족발집에서 만든 거.”

“그래도 직접 시킨 건 나잖아.”

“돈 낸 건 나야.”

엄마가 말하자, 모두 조용해졌다.


식탁이 다시 평화를 찾았을 때, 나는 생각했다.

이 집에도 좌파가 있고, 우파가 있고,

중립인 척하는 아빠가 있고,

그 사이에서 계속 고기만 집어 먹는, 나 같은 방관자도 있다.


우리 가족은 반반이다.

그 반은 간장이고, 반은 불이다.

반은 평등을 말하고, 반은 자유를 말한다.


하지만 결국엔 한 상에 둘러앉아,

같은 족발을 뜯는다.


생각보다 괜찮은 세상이면서,

생각보다 불편하고,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은 나라다.


족발이 남은 마지막 한 점을 누가 먹을까 눈치보다가,

결국 여당인 내가 먹었다.

우리 집은 장기집권제이고,

VIP는 엄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