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또 만나요 할무니

by 뽈뽈

우리 할머니는 참 걱정도 많고 애정도 많은 분이셨다. 아빠 연세가 60이 다 될 때까지 항상 잘 댕기나, 잘 먹나, 별일 없나 궁금해하고 챙겨주셨다. 다 같이 식사를 할 때도 아빠가 양이 부족할까 밥 덜어주시고, 맛있는 반찬 못 먹었을까 앞에 가져다주시고 그랬다. 그땐 아빠도 참 귀찮겠다 생각했다.


물론 그 걱정은 나한테도 이어졌다. 본가에 왔다 가면 집엔 잘 들어갔는지, 회사는 잘 다니는지, 사소한 것부터 이사를 하면 별문제 없었는가 집은 잘 골랐는가.. 할머니는 자식도 많고 손자손녀도 많은데 온종일 걱정만 하시나 싶을 정도였다.


바보 같게도 그게 귀찮은 게 아니라 감사한 일이라는 걸 깨달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때때로 할머니에게 전화가 와선 잘 지내는지 묻곤 하셨는데, 언젠가부터 끊을 때 사랑한다는 말을 꼭 덧붙였다. 내가 먼저 전화드렸어야 되는데 자주 그러지 못해 죄송한 마음에 사랑해라는 말에 꼭꼭 눌러 담았던 것 같다. 그럼 할머니도 "할머니도 우리 지현이 사랑해~"라며 상냥하게 말씀하시곤 걱정 몇 마디를 더 한 뒤에야 전화를 끊고는 했다.


두어 달 전인 1월 31일, 이날도 할머니께 전화가 와선 짧게 안부를 나눴고 옆에 있던 남편도 간단히 인사를 드렸다. 그게 마지막 전화가 될 줄은 몰랐다. 며칠 뒤 할머니는 갑자기 쓰러지셨고,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산소마스크 같은 것과 콧줄을 달아 말을 할 수도, 잘 알아듣기도 힘들게 되셨다. 종일 열이 올라 얼음팩과 부채로 몸을 식혀야 했고, 약에 취해 잠들었다 깼다 하셨다. 그렇게 2, 3주 정도 병원에서 보내시고는 2월 22일 점심, 돌아가셨다.


실감은 나지 않는데 후회는 밀려왔다. 한 번만 더 먼저 전화드릴걸, 고민하지 말고 전화드릴 걸... 출근길에 잠깐이면 되는데, 점심 먹고 잠깐이면 되는데 그게 왜 어려웠을까.


돌아가시기 이틀 전인 2월 20일은 내 생일이었다. 할머니가 병원에 안 계셨다면 분명 전화해서 축하해 주셨을 거다. 매해 그랬던 것처럼.. 이쯤 되니 22일 날 돌아가신 것도 일부러 그러신 걸까 싶었다. 제사는 돌아가신 전날 지낸다고 하니 매년 2월 21일이 될 거였다. 겹치지 않게 하려고 기다리신 건 아닐까... 자꾸만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라도 할무니의 사랑을 느끼고 싶은 마음인 것 같다.


오늘도 그렇다. 몇 시간 전 꿈에 할머니가 처음으로 나왔다. 신기하게도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한 얼굴이셨고, 나한테 뭐라 뭐라 말도 하셨다. 그러다 늘 그랬듯 인자한 미소로 나랑 눈을 맞추더니 팔을 벌리셨고, 나는 그대로 안겼다. 그렇게 꿈에서 깼고, 깨자마자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남편에게 얘기하니 결혼기념일에 딱 나오셨냐며 잘 사나 보러 오셨나 보다 했다. 오늘은 어떻게 또 마침 남편과 나의 첫 결혼기념일이다. 이렇게 보니 할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이것마저도 기억하시고 축하한다며 전화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못하니 꿈에 나와서 안아주신 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잠에서 깨고 눈물도 안 그친 채로 꿈을 기억하기 위해 몇 자 남겨본다. 아침부터 눈이 퉁퉁 부어서 이대로 회사에 갈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참 인자하고 정도 사랑도 많은 우리 할머니. 많이 보고 싶다.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가 너무너무 듣고 싶다. 잘 살고 있으니 이제는 걱정 마시라고 얘기하고 싶다. 다음에 꿈에 나오면 도란도란 또 얘기해요 할무니,,


작가의 이전글뭔가에 푹 빠진 사람들 인터뷰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