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예 Dec 24. 2018

이토록 작위적인 세계

05 모나코, 몬테 카를로 Monte-Carlo

일단 모나코라고 하면 호화로운 휴양지와 카지노, 박진감 넘치는 F1 그랑프리가 떠오른다. 그 외에 세계에서 2번째로 작은 나라, 세계에서 집 값이 가장 비싼 나라, 소득세가 없어 전 세계 백만장자들이 모여드는 나라 등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모나코를 직접 마주해보니 정말로 이런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쉬이 믿어지지 않는다. 예전에 마카오에서도 그랬었는데 이번에 모나코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도시라기보단 그저 하나의 커다란 놀이 동산 느낌이랄까. 다들 일상을 잊고 신나게 놀 수 있어 무척이나 이 곳을 좋아하지만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기분? 마카오에 갔을 때는 그게 도시가 너무 휘황찬란하고 온통 요란한 카지노뿐이어서 그런 느낌이 드는 걸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은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닌데도 풍기는 느낌은 꽤나 비슷했다. 예쁘고 세련되고 우아하지만 여기서 정말 사람이 산다고? 여기서 누군가 슬퍼하고 분노하고 아프고 죽기도 한다고? 싶은 곳이었다. 진짜에 가까운 아주 정교한 가짜. 우리의 혼을 쏙 빼놓기 위해 계획적으로 구성된 작위적인 동네.


근위병 교대식은 모나코에서 가장 유명한 볼 거리로 꼽히지만 그 명성에 비해서는 생각보다 볼게 없다는 평이어서 처음부터 볼 생각이 없었다. 대신 대공 궁전과 카지노에 들어가보려고 했는데 이런 저런 상념들이 떠밀려와 모두 포기했다. 대공 궁전은 당시 모나코의 왕자였던 레니에 3세가 5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미녀 배우였던 그레이스 켈리에게 “내 궁전은 혼자 지내기엔 너무 넓다”는 말로 프로포즈를 하고 결혼식을 올렸던 곳으로 유명하다. 물론 그 말 한마디 만으로 프로포즈를 한 건 아니고 12캐럿짜리 다이아 반지도 함께였단 이야기는 더 유명하다.


아무튼 그렇게 그냥 몬테 카를로에 머무르며 차를 마셨다. 카지노 앞을 돌아나가는 원형 교차로 한 켠에 자리잡은 커다란 카페의 이름은 카페 드 파리스. 몬테 카를로의 명물이라고 한다. 모나코 한 복판에 왠 파리 카페? 싶지만 모나코는 프랑스로부터 전기, 수도, 철도 등을 공급받고 있으며 외교권, 국방권 등 국정의 일부도 프랑스에 의존하는 등 프랑스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별 볼 것도 없는 테라스에 다들 나와 앉아 있어서 왜그런가 했더니 원형 교차로를 돌아나가는 차들이 모두 엄청나다. 생전 처음보는 차도 많았고, 종류도 색깔도 몹시 다양. 헉 소리나게 비싼 차들과 ‘저런 차가 아직도 굴러다닐 수 있는건가?’ 싶을 정도의 아주 오래된 클래식 카들이 계속해서 교차로에서 빙글빙글. 이곳은 오가는 차들을 구경하기 위한 테라스 자리였던 듯 싶다.


모나코의 대표 행사인 F1 그랑프리 역시도 전용 트랙이 아니라 일반 도로에서 진행된다. 이 말은 호텔의 발코니나 루프 탑 바 등에서 편히 관람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날의 우리는 아주 느린 F1 그랑프리를 구경하는 기분으로 뜨거운 차를 마시며 오가는 차들을 실컷 구경했다. 덤으로 매연도 듬뿍 마셨겠지만 어찌되었건 오늘은 좋다.


이전 04화 접시 위의 예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