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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Jan 21. 2019

세잔, 세잔, 세잔

09 엑상 프로방스, 세잔의 길

다양한 분수들이 곳곳에서 물을 뿜어대고 푸른 하늘이 유독 잘 어울리는, 플라타너스들이 대로변에 나란히 뻗어있는 모습의 엑상 프로방스. 프로방스 지역의 법과 교육의 중심지로 발전해온 이 곳은 프랑스인들이 가장 살고싶어하는 도시 1위로 몇년째 꼽히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스쳐가는 여행자들에게 엑상 프로방스는 '세잔의 도시'로 통한다. 엑상 프로방스는 세잔의 흔적을 따라 동네를 돌아볼 수 있도록 잘 꾸며져있고 관광 안내소에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아예 그렇게 안내한다. 이곳은 세잔이 나고 자란 곳이며 그림을 그렸던 곳이니 당연한 일일터.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세잔의 작품은 엑상 프로방스에 거의 남아있지않고 대부분 파리에 가있다.

세잔과 에밀 졸라, 피카소 등 많은 예술가들이 단골로 들렀다던 카페 <카페 두 가르송>과 세잔의 흔적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이정표.


관광 안내소에서 받은 지도를 받아들고 세잔의 흔적을 찾아 걸었다. 대략 30여곳 정도가 되는데 세잔이 어릴 때 살았던 곳, 나이 먹고 살았던 곳, 다녔던 학교, 근무했던 은행 등 별게 다 표시되어있다. 심지어 세잔의 부모가 결혼한 곳, 세잔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모자 공장, 세잔의 여동생이 살았던 곳 등 별로 궁금하지 않은 곳들까지 모두 기록되어있어 시간 여유가 없다면 반드시 취사선택을 해야 한다. 나는 시간이 충분해서 산책하는 느낌으로 겸사겸사 거의 다 돌아보긴 했는데 대부분은 지금도 평범하게 누군가 살고있거나 여전히 학교로 쓰이고 있는 곳들이라 실제로 외지인들이 들어가 볼 만한 곳은 별로 없었다.


시내에서 그렇게 세잔의 흔적들을 찾아다니고 난 후에는 세잔의 풍경화에 자주 등장하던 별장과 세잔의 아틀리에를 찾았다. 이 두 곳은 시내에서 약간 떨어져있어 걸어서 방문하기에는 조금 힘에 부치는 곳들이다. 


# 자 드 부팡 Jas de Bouffan

자 드 부팡은 그 시절 세잔의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었던 정원 딸린 별장으로 세잔은 이 곳에서 아버지의 초상과 이 곳 주변의 풍경 등을 그렸다고 한다. 풍경화의 경우엔 어느 위치에서 어떤 각도로 바라보고 그린건지 등이 상세히 안내되어 있어 찾아다니며 그 각도에서 풍경화와 비슷한 구도의 사진을 찍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 위치에서 요리조리 사진을 찍어봐도 그의 작품 속 모습과는 미묘한 차이가 난다. 그건 세잔의 작품 속에 왜곡된 형태가 종종 담겨 있어서다.


세잔은 3차원의 소재를 2차원의 화폭에 담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작품들은 대강 보면 평범한 풍경화 같지만 하나하나 자세히 뜯어보면 같은 그림 안에서도 옆에서 본 각도와 위에서 본 각도가 동시에 담겨 있어 한 시점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만 그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사진으로는 절대 비슷한 느낌을 낼 수가 없다. 즉, 그의 작품 속 풍경들은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어긋난 구도'인 것이다.


이런 구도적인 차이도 물론 있지만 지금은 나무들이 그 때보다 훨씬 더 커져 집을 거의 가리고 있기에 그림 속 모습과 느낌 자체가 많이 다르기도 하다. 사람들은 모두 떠났고 나무들은 그 빈 자리를 채우려는듯 엄청나게 자라났다. 그대로 있는건 집과 연못 뿐이다.


그래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공간인 것은 분명해서 쉬이 발을 뗄 수가 없었다. 특히 이 정원은 가을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예술이 스며든 잔잔한 풍경. 내가 꿈꿨던 바로 그 여행을 이 곳에서 흠뻑 누릴 수 있어 행복했다.


카뉴쉬르메르에서 만났던 르누아르는 사람에게 흥미를 느껴 인물화를 주로 그렸지만 세잔은 자연을 추구해 많은 풍경화를 남겼다. 그는 이 별장 외에도 근처의 생 빅투아르 산 역시 8~90번이나 화폭에 담기도 했다. 시간 여유가 넉넉하다면 하루쯤 생 빅투아르 산을 걸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 자 드 부팡 방문은 시내의 Tourist Information Center에서 반드시 사전 예약을 해야하며 인솔 직원의 인솔에 따라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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