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나예 Feb 18. 2019

사라진 모든 것들

13 아비뇽, 교황청과 쁘띠팔레 미술관

넓이는 15000제곱미터, 높이는 50미터에 벽의 두께가 4미터에 달하는 견고한 성곽. 딱 그만큼의 중압감. 그리고 그 물리적인 압도감에 못지않는 그 이름, 교황청. 이 곳은 웅장하고 거대한 모습과는 정반대로, ‘황제권의 강화로 인한 교황권의 약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아비뇽 유수’의 무대가 된 아비뇽의 교황청이다.


1300년대 초, 교황 클레멘스 5세는 프랑스 왕의 간섭으로 인해 로마로 들어가지 못한 채 아비뇽에 남았다. 이후 70여년간 총 7명의 교황이 아비뇽에 머물렀는데 이것이 바로 단골 시험 문제였던 ‘아비뇽 유수’이다. 덕분에 아비뇽은 교황청의 도시이자 종교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린 역사가 있다.


교황청은 구 궁전과 신 궁전으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구 궁전은 말 그대로 교황이 아비뇽에 머무르게 되면서 지은 부분이고, 신 궁전은 이후에 증축을 진행하면서 파리의 궁전을 모방하여 아주 호화롭게 건조한 부분이다. 구 궁전과 신 궁전 구분할 것 없이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며 교황이 소장했던 보물들은 약탈당하고 내부도 완전히 파손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보니 황량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못해 어처구니 없을 정도였다. 외부가 그 정도로 유지되어 있는게 신기할 정도로 내부는 몽땅 파손되어 마치 지금 한창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의도적으로 비워낸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그 때의 영광은 그 때의 사람들만이 기억할테지. 이러이러했었다더라, 하는 추정치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저 그 시절을 상상해 볼 뿐.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보다 더더 애매한 나날들이다.


아비뇽 제 1의 관광 포인트답게 발랄한 관광객들이 가득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텅 빈 예배당과 회랑은 침잠하는 가을과 꼭 어울린다는 감상. 지나가고 사라진 모든 것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쁘티팔레 미술관 / Musée Du Petit Palais

원래는 앙글라동 미술관에 가고 싶었지만 문을 열지 않는 날이라 대신 쁘띠팔레 미술관에 들렀다. 쁘티팔레 미술관은 교황청 옆에 있는 작은 건물로, 과거에는 대주교관으로 쓰이기도 했던 곳이다. 작은 규모와 달리 내부에는 기대 이상으로 많은 작품들이 가득했고 교황청과는 달리 구경하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조용하고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원근법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전과 아주 초기의 어색한 원근법이 쓰인 작품들 위주로 만나볼 수 있었는데 여기가 프랑스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이탈리아 화가들의 작품이 많이 있었다. ‘왜 그런거지?’ 하고 생각하다 이곳이 교황청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다. 본래 교황청은 이탈리아, 좀 더 구체적으로는 로마에 있었으니 관련 작품들도 이탈리아 화가들의 것이 많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쁘티팔레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보티첼리의 초기작인 <성모와 아기 예수>. 이 작품을 꼭 보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당시에 베를린에 가있다고 하여 기념품샵에서 판매하는 커다란 포스터로 간신히 보고왔다.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성모 마리아의 손이 무척 어색하다는 것. 어느 손으로도 아기를 받치고 있지 않아 아기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불안한 포즈인 것이 매력이다.

출처 :  위키피디아


이전 12화 나의 프로방스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 그림을 따라, 프로방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