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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Feb 25. 2019

아비뇽 다리 위에서

14 생 베네제 다리, 그리고 프로방스와의 이별

오쇼콜라
바게트
오렌지주스
카푸치노와 함께 새로운 하루이자 프로방스에서의 마지막 날이 시작되었다.


론 강 위에 떠있는 생 베네제 다리는 12세기 즈음 축조된 다리로, 가깝게는 강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고 더 나아가서는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오가는 길목의 역할까지 했다고 한다. 이 말은 당시 아비뇽이 교통의 요지였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비뇽 다리 위에서>라는 프랑스 민요의 배경이 된 다리로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잘 모르는 노래이다보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 다른 감흥이 없었다.


다만 강 한가운데서 뚝 끊어진 채 버티고 있는 다리의 모습이 꽤나 생경했다. 완공 당시에는 아치가 22개에 이르고, 그 길이가 900m나 되었다고 하는데 계속된 강의 범람으로 유실되면서 지금 남은 아치는 고작 4개 뿐. 다리가 다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어도 그대로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여전히 '다리'라고 불리고 있다는게 좀 놀랍다. 내가 나의 역할을 못할 만큼 망가졌던 시절에도 나의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찾고 나를 사랑해주었듯이. 세상에는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사회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존재하고 역할을 다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회화'라면 나는 이미 사회화에 실패한 인간이고 앞으로도 계속 실패하고 싶다. 다리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다리가 여전히 존재하고 심지어 많은 사랑을 받 듯, '효율'과 '역할' 만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아직은 믿고 싶다.


프로방스에서의 여정을 모두 마쳤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려면 파리로 가야 한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파리에서 허락된 단 며칠의 시간. 그나마도 한국행 비행기가 직항이었더라면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스탑바이 덕분에 얻은 선물 같은 그 시간들 역시도 루브르나 오르세 가 아니라 예술이 베어든 거리를 걷는데 쓰기로 했다. 결론은 몽마르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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