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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Mar 11. 2019

가을의 끝자락, 겨울의 초입

16 피렌체에서 파리로, 그리고 뉴욕으로

'몽마르뜨' 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마도 테르트르 광장의 것이 아닐까. 실팔찌를 채우고 빙 둘러서서 당장 팔찌 값을 내라며 우겨대는 흑인들에 대한 이미지를 제하고 생각해보면 '낭만이 넘치는 예술가들의 동네'는 테르트르 광장과 꼭 닮았다.


싸늘한 날씨였는데도 화가들이 광장에 가득했다. 가이드북에선 일부 악덕 화가들이 무료로 그려줄 테니 모델이 되어달라 관광객을 꼬드긴 뒤, 막무가내로 그림 값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하라고 했지만 직접 보니 굳이 그렇게 속이지 않아도 초상화의 모델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넘쳐나고 있었다.


아무나 자리 깔고 그림을 그릴 수는 없고 일종의 허가를 받은 화가들만 작업할 수 있다는데 화가들의 수만큼이나 작품 세계도 엄청나게 다양해서 재미있었다. 초상화 대신 풍경화나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그림을 그리는 이들도 꽤 있었다. 그래도 역시 초상화 담당이 가장 많았는데 살짝보니 실물보다 더 예쁘게 그려준다.


온종일 걷느라 꽁꽁 언 몸을 녹이고자 따끈한 뱅쇼와 크레페를 주문했다. 알딸딸한 기분이 되었던 걸로보아 계피향이 알싸하게 났던 뱅쇼에 꽤나 알콜이 남아있었던 듯 하다. 취기를 핑계 삼아 계속된 여정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놓아본다.


동굴 벽화 등으로 미루어보아 인류가 생겨나면서부터 미술은 시작됐다. 그렇지만 우리가 달달 외워서 알고 있는 미술사다운 미술사는 크게 르네상스에서부터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르네상스는 이탈리아(피렌체)에서 시작되어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가 딩시 미술의 거점이 되었다.


이후 프랑스 혁명과 2월 혁명 등이 연달아 일어나며 기존의 사회 체계가 격변,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이 과정에서 '시민'이 출현하고 개인의 자유 의식이 높아지면서 예술 또한 귀족들의 전유물에서 일반 시민들의 것으로 변모하는데, 이에 따라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도래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한 다양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모든 격동의 중심지가 파리였기에 미술의 본거지 또한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프랑스에서도 특히 파리로 옮겨오게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이 군사력과 경제력을 발판삼아 세계 최강 대국으로 성장하면서, 미술의 중심은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간다. Soho를 중심으로 한 스튜디오와 갤러리들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미술 타운이 생겨나면서 뉴욕은 파리를 완전히 몰아내고 '세계 미술의 중심' 왕좌를 차지하게 된다. Soho의 임대료가 치솟으며 지금은 첼시와 브루클린으로 살짝 그 흐름이 옮겨갔지만 그래도 뉴욕인 것은 여전하다. 보통의 경우, 뉴욕이 틀어쥐고 있는 현재의 미술 '판'은 크게 4가지 구성 요소가 있다고 본다.


갤러리 - 소호, 첼시, 브루클린 등

경매장 - 크리스티, 소더비 등

미술관 - MoMA, 메트로 폴리탄, 구겐하임 등

작가(=화가)


하지만 난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어쩌면 위 4가지를 다 커버할 수 있을 가장 강력한 요소일 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돈이다. 그 시점에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동네에서 미술도 쥐락펴락하게 되어있다. 그러니까 그 시점에 어느 나라가, 그리고 어느 도시가 가장 돈이 많을까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르네상스 시절에는 이탈리아가 가장 부자였고 19세기에는 프랑스였다. 지금은 미국인 것이다.


미술조차 자본의 논리에 좌우된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지금은 가을의 끝자락, 겨울의 초입. 한 계절이 끝나고 새로운 계절이 오듯 상황에 따라 언젠가는 미술의 중심이 미국에서 또 다른 어딘가로 옮겨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변화를 직접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하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벨 에포크'라고 한다. 보통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의미하는데 이 시기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이자 파리가 최고로 번성한 때이다. 정치적 격동기가 끝나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많은 이들이 예술에 관심을 가졌다. 우아하고 기품있는 이들이 멋지게 차려입고 카페와 레스토랑을 가득 채웠으며 인상파들은 밝고 선명한 색으로 캔버스를 칠했다. 만국 박람회를 개최하며 에펠탑을 세웠고, 파리 최초의 지하철이 개통되기도 했다. 벨 에포크는 이미 지나간 과거가 되었지만 파리는 여전히 파리이고 프랑스 또한 여전히 프랑스이다. 역시 미술을 논하며 프랑스를 뺄 수는 없다.


내가 걸었던 프랑스는 동네마다, 골목마다 이야기가 깃들어있었다. 글의 서두에서 '미술 기행'이라고 간단히 말했지만 사실은 예술가들의 자취를 따라 그들이 걸었던 길을 걸으며 그들의 작품 세계와 삶을 좆았으니 '사람에 대한 여행'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환상적인 풍경과 맛있는 음식들을 덤처럼 만난 것도 큰 행운이었다.


마티스를 좋아하고 르누아르를 소중히 여기며 샤갈을 아끼는 이, 세잔을 존경하고 고흐를 안쓰럽게 여기며 수잔 발라동과 툴루즈 로트렉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이에게 프랑스는 무궁무진한 보물들을 한껏 품고 있는 보물섬이나 다름없다.


여행을 마칠 때마다 나는 마치 내가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 본 것 같은 기분이 된다. 그리고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고민 끝에 이 글들을 썼다. 이 매거진을 통해 으리으리한 미술관 바깥에도 미술이 있음을 알아봐주신다면, 더 나아가 미국이 짜놓은 미술 세계라는 판에서 잠시 벗어나 프랑스의 미술 세계에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격스러울 것이다.




지난 4개월 동안 한 걸음씩 이 여행을 따라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그 그림을 따라, 프로방스>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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