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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 am a stem cell Aug 31. 2019

기회주의자들의 득세를 막기 위해 기억해야 한다

친일파 후손의 삶 추적한 <친일과 망각>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합니다. “그때 ‘만약’ 그게 그렇게 됐다면 지금 이 모양은 아닐 텐데...”, 이처럼 아무리 한탄한들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비슷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만약’이란 질문을 던지면서 회고해 봐야 할 역사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봅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 소속 김용진, 박중석, 심인보 기자는 <친일과 망각>의 머리글에 이렇게 썼습니다. 저자들이 책의 첫머리에서 상상한 것처럼 친일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아마도 우리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에 살고 있을 것입니다. 특히 최근 전국민의 분노지수를 높이는 이영훈류의 사람들은 발붙일 곳이 없었을 것입니다.



친일청산 실패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 중 하나입니다. 떠올리기 고통스럽고 부질없어 보이지만 우리는 계속 이 역사를 떠올려야만 합니다. 기억해야만 합니다. 저자들이 말했듯이 “배반과 치욕의 역사는 망각을 자양분으로 해서 되풀이”되기 때문입니다.

뉴스타파는 기억을 위해 해방 70주년 기획으로 <친일과 망각>시리즈(4회)를 2015년에 방송했고 이듬해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일본 극우 정권과의 갈등에 더해 이영훈류의 사람들이 망언을 넘어서 그것을 책으로까지 내놓는 것을 보면 떠올리기 고통스럽고 치욕스런 역사지만 또 복습해야 하겠습니다. <친일과 망각>은 1960년대 임종국의 <친일문학론>,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잇는 후속작이라 봐도 되겠습니다.

매국이 애국을 이긴 나라

저자들은 2005~2009년 활동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확정한 1006명의 친일파 후손을 취재했습니다. 그 결과 친일파 후손들은 친일 청산을 무산시키고 기회주의 세력이 득세하게 했던 이승만 정권 덕분에 일본제국주의에 부역해 얻은 선대들의 사회경제문화적 유산을 물려받았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으로 공고히 자리를 잡았음을 확인했습니다.

친일파 후손들 중 일부는 친일 청산 작업을 노골적으로 반대했고, 심지어는 친일 청산이 좌파와 빨갱이들의 요구라는 막말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해방 후 반민특위를 해체했던 이승만 시절의 인식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않은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들이 썼듯이 이들은 과거의 진실을 마주할 용기 혹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사망했고 그 후손들 역시 극악스럽게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래도 친일의 역사를 묻어두어서는 안됩니다. 과거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못했기에 우리 사회에는 “불의가 정의를 대체”했고, “매국이 애국을 이겼”습니다. 이 잘못 묶여진 역사의 매듭을 풀 수는 없지만 책에서 말하듯 “망각 속에 계속 방치해선” 안됩니다.

저자들은 친일파 후손들이 취재에 응해달라는 뉴스타파의 요청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친일파 후손들은 어떻게 성공적인 삶을 유지해 갔는지, 이들은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친일 재산을 물려받았는지 등을 알려줍니다. 과거 실패했던 친일 인사 처벌 만큼이나 친일 재산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한 것도 안타깝습니다. 친일파 후손들이 선대의 재산을 이미 빼돌릴만큼 빼돌렸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실패한 친일 청산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마주하게 되면서 혈압이 상승하는 것을 느낍니다. 특히 일제에 부역해 쌓은 선대들의 부를 약싹빠르게 차지한 친일파 후손들과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대조적인 삶을 마주할 때는 심장 박동수가 더 빨라지고 혈압이 최고조에 이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진정 나라를 사랑했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고통속에 살아가고 매국한 이들과 후손들은 태평성대를 누려온 나라.

고백하고 사죄한 후손들

말초 혈관들까지도 팽팽해지는 느낌은 책의 6장에 이르러 다행히도 해소됩니다. 6장에는 친일을 한 선대들의 자손임을 확인한 후손들의 ‘고백’이 실려있기 때문입니다. 일제 말기 경남 하동 군수를 지냈던 이항녕은 “조선인 앞잡이들의 협력이 없었다면 일제의 식민 지배도 불가능했다”고 강조하며 자신의 행동을 공개적으로 사죄/반성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음성군수를 지냈던 이준식의 손자 이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성하지 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그것이 이윤 씨가 할아버지의 친일행적을 반성하고 공개 사죄한 이유였다. 이 씨는 “자기 집안이나 조상의 떳떳하지 못한 문제를 덮고 쉬쉬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그것은 결코 조상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 집안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공개사죄했다”고 밝혔다. 역사 앞에서 당당해지는 것, 그것이 오히려 선조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209쪽)

뉴스타파가 취재를 시도한 친일파 후손 350명 중 선대의 잘못을 인정하고 공개 사죄한 사람은 세 명이었다고 합니다. 저자들이 이 세 명의 사죄를 의미 있게 받아들인 것과 같이 저 역시 이 세 명의 마음을 담은 사죄가 결코 실망스런 결과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이들의 사과를 보며 아마도 어떤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같은 기억을 가질 때까지

폴란드는 1998년 <민족기억연구소 및 폴란드 민족에 대한 범죄기소위원회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의회 소속으로 ‘민족기억연구소’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나치 독일과 공산 체제 하에서 자행된 범죄가 어떠했는지 교육하고, 지금도 관련 범죄를 조사하고 범죄자를 추적해 법정에 세운다고 합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로 나치 부역자들을 철저하게 처벌했습니다. 우리 나라는 어땠을까요.
 
“해방 6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국가 차원의 친일 진상규명 작업이 다시 이뤄졌다. 그런데 우리는 당시 이뤄졌던 친일 진상 규명의 성과물을 사회적 차원에서 충분히 공유하고, 가르치고 있을까?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는 게 제작진의 생각이었다. 25권에 이르는 반민규명위의 방대한 보고서와 그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수집된 수많은 기록들은 더 이상 활용되지 않은 채 국가기록원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잊혀진 존재가 됐다.”(266쪽)


“누군가 되묻지 않으면 잊히고 마는 게 기억이다. 기억은 늘 부정확하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뒤틀리고 변조된다. 우리는 친일 문제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기억하려 노력했는가?”(274쪽)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과 그들의 행위를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기억의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저자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공간에서 식민지근대화론, 식민지배축복론 등을 여전히 입에 담는 이들과 마주앉아 <친일과 망각>을 펴고 우리가 같은 기억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 읽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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