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정치권력과의 유착관계를 통해 정치의 뒷마당에서 마음껏 권력을 누려왔던 검찰이 윤석열이라는 검사출신 정치 새내기를 중심으로 정치 전면에 나서고 있다.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때 법무부와 갈등을 이어가다 총장직을 사퇴한 윤석열은 과거 검찰을 유용하게 활용하던 정당의 제안을 받아 급기야는 대통령 후보까지 되었다. 이 기회를 놓칠새라 검사 출신 정치인들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며 검사출신의 꿈동산인양 윤석열 대선캠프로 모여들고 있다.
윤석열 후보에 대한 의혹을 투명하게 밝혀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질을 검증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지금의 윤석열을 만든 대한민국 검찰이라는 조직의 본질을 모든 국민들이 다시 살펴보는 일이다. 이와 함께 검찰이라는 조직이 민주정부들에서 왜 개혁 대상이 되었는지, 개혁 시도의 결과는 어떠했는지 되짚어봐야만 한다. 이를 위해 2011년 당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김인회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함께 쓴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를 다시 펼쳤다.
참여정부 시절 검찰 및 사법개혁의 많은 부분에 직접 관여하고 경험했던 당사자인 문재인. 참여정부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에서 활동했던 김인회. 두 저자는 대한민국 검찰의 역사, 권한, 이론 등을 설명하며 검찰조직의 실체를 살펴본 후 참여정부의 검찰개혁 성과와 한계를 알기 쉽게 정리했다. 이 책을 통해 민주정부에서는 왜 검찰이 개혁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지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동시에 근본적인 검찰 개혁이 왜 실패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검사들만큼 헌신적이고 유능하고 책임 있게 일하는 사람을 못 봤습니다. 열심히 하는 만큼 또 본인들이 대한민국을 끌고 가고 있고, 검찰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이라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 검찰은 국민의 공복이다. 어떻게 하면 국민들을 잘 섬기고, 국민의 명령을 잘 따를까 하는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지 않단 말이에요. 그리고 자기들 잘되는 게 검찰과 나라가 잘되는 것이다, 그 말을 거꾸로 하면 우리를 공격하면 마치 나라를 공격하는 국사범이 되는 것처럼 생각해요. 이런 생각들이 딱 똬리를 틀고 있단 말이에요.”(264-265쪽_천정배 전 장관의 말)
체제와 정권 유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검찰은 대한민국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유례없는 권한을 누려왔다. 해방 후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자체가 일재의 잔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국가주의와 전체주의 유지를 위한 시스템이었다. 이 시스템 내에서 검찰 권한은 비정상적으로 강화되었고 대체로 정치적 반대파(대표적으로 조봉암, 김대중)를 제거하는 데 이용되어 왔다. 검찰이 수사지휘권으로 경찰을 지배하고 수사결과를 통해 재판을 지배하는 일제 강점기 검찰 중심 형사사법시스템이 여전하다.
검찰은 본질적으로 행정부에 속하기에 사법기관이 아니다. 검찰이 준사법기관이라는 이론이 받아들여져 왔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저자들은 말하고 있다. 때문에 검찰에게 필요한 것은 독립이 아니라 정치적 중립이고 국민과 정치권력, 법원에 의한 견제와 감시이다. 저자들은 1987년 6월 항쟁 이래로 쟁취해 온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이 과거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정부의 종말을 고했음을 말한다. 그 중심에 있었던 검찰 역시 새로워져야만 한다.
공권력의 폭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은 대한민국의 폭력적 법치주의의 중심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왔던 검찰은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의 흐름에서 그 권한과 역할이 조정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와 같은 철학 아래 노무현 참여정부가 검찰 개혁을 시도했지만 검찰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쉽게 내려놓지 않았다. 몇 가지 제도의 개혁을 이뤄냈으나 검찰 권한의 민주적 통제(검찰권한 견제와 감시) 시스템 구축에는 실패했다.
“정치적 중립을 보장해주면 검찰이 저절로 민주화될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이었다. 검찰은 한국 사회에서 이미 기득권 세력 중 가장 강력하기 때문이다.”(369쪽)
참여정부의 제도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결국 검찰은 이후 정치권력과 유착관계로 돌아가버렸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복수와 같은 수사, 한명숙 전 총리 사건(표적/강압 수소, 피의사실공표, 플리바게닝 동원 수사, 수사 기록 누락, 수사권 남용 등), PD수첩/정연주 사장 사건, 미네르바 구속/기소 등으로 퇴행했다.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떡값 검사라는 비리는 지속되었다.
자신이 몸담았던 참여정부 검찰개혁의 실수들을 차곡차곡 정리했던 책의 저자 문재인은 부당한 권력에 투쟁했던 국민들 덕택에 대통령이 되어 민주 정부를 다시 한번 이끌게 되었다. 선거에서부터 검찰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고 이후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정부 출범 후에는 대표 국정과제로 추진해 왔다. 2021년 6월에 참여연대에서 발간한 검찰보고서를 보면 문재인 정부 4년 동안의 검찰개혁 이행 현황이 정리되어 있다.
참여 정부의 검찰개혁 한계로 분석했던 중수부 폐지,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의 과제들이 이행되어 왔으나 여전히 검찰개혁에는 실패한 것 같다. 거칠게 말하면 참여정부 검찰개혁의 실패는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복수와 함께 과거 검찰로의 회귀로 나타났고,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실패는 윤석열이라는 검사출신 대통령 후보를 만든 것 아닐까.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책을 들고서 10년 전 자신의 검찰개혁 평가를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10년 전 책을 읽으면서 참여정부의 검찰개혁 실패가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실패와 상당히 겹쳐진다는 생각을 했다. 참여정부 시절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인한 검찰개혁 동력 상실, 문재인 정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와 탄핵에서의 공로로 인한 검찰의 본질에 대한 착각, 법무부 장관의 빈번한 교체, 법무부와 검찰 사이의 갈등, 제도는 바꿨으나 검찰 조직의 본질은 그대로인 상황 등 여러모로 참여정부 시절 개혁 실패의 데자뷔를 보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더 이상의 검찰 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검찰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2003년 고 노무현 대통령과 대화를 하던 검사들의 태도와 수준이 과연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평생을 검사로 살아오다 검찰 조직의 정점에서 정치로 옮겨탄 윤석열 후보는 어떨까?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정부를 이어가게 될 다음 대통령은 책에서 인용한 이 말을 잊지 말기를.
“루쉰의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는 글에서처럼 물에 빠진 개가 주인을 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패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208쪽)
“정치가 스스로 개혁되지 못하면 그 역할을 검찰이 담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치는 검찰에 종속된다.”(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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