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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 am a stem cell Feb 27. 2018

괴물로 진화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서려면

콜린 크라우치 <왜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는가>

은행들은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을 기대하며 무분별하게 대출을 해주고 이것을 기반으로 또 다른 금융 상품을 만들어 이윤 극대화를 추구한다. 그러다 부동산 거품이 걷히면서 은행들은 위기에 처하고 심지어는 파산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이 망하면 너무 큰 피해를 촉발할 것이라며 오히려 피해자인 국민들의 세금으로 쓰러진 거대 은행들을 살려주고 부도덕한 경영자들은 여전히 높은 급여를 받으며 돈잔치를 벌인다. 이것이 최고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어째서 이러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것일까?
 
신자유주의. 전 세계적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귓가에서 가장 많이 맴돌았던, 그리고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이 다섯 글자. 마치 이명 현상을 겪는 것처럼 이 다섯 글자로 인해 우리는 아직도 고통을 겪고 있다. 어떤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인류가 만들어 낸 괴물같은 체제라고도 했고, 또 다른 이들은 여전히 가장 완벽한 경제 체제라고도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어 왔지만 우리는 이 신자유주의라는 명확한 실체가 없는 경제 시스템에 대해 이렇다 할 대안적 시스템을 이끌어 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거대한 구조 하에서 소규모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는 듯도 하지만 거대한 흐름의 방향을 바꾸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래와 같이 알려준다.


'개인들의 물질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자유 시장이 인간의 열망을 충족시키는 최선의 수단을 제공하며, 특히 기껏해야 비효율적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자유를 위협할 뿐인 국가와 정치보다 시장을 선호해야 한다'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위기를 겪은 후에 오히려 더 강해지는 현상과 요즘의 자유 시장에 충실하지 않은 신자유주의를 이해하고, 이에 대한 논란들에 거대 기업이라는 주체를 고려해야 할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현재의 논의에서 국가와 시장 대결 논쟁은 사실 논점을 흐리는 것이고, 국가, 시장, 기업 사이의 '안락한 조정'이 현재의 상황을 잘 나타낸다고 본다. 이 안락한 삼각 관계의 악행을 견제하기 위해 ‘분주하지만 작은 시민 사회'의 역할이 중요함을 역설한다.
 
책에는 신자유주의와 그 기원에서 시작해 국가 대 시장이라는 논쟁과 이 대결에서 기업이 중요해지고 기업의 성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가 나와있다. 이어서 케인스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이동해 가는 과정과 그 의미를 살피고, 그 과정에서 기업이 어떻게 중요한 주체로 떠올랐는지를 말한다. 마지막 부분에선 기업과 정치의 관계,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논하며 이 모든 상황들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며 글을 맺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정부나 다른 세력이 간섭하지 않은 채 상품 및 서비스의 수요와 공급 메커니즘을 통해 서로 조정되게끔 내버려두면 최적의 결과가 달성된다는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노동 시장에 간섭하려는 노동조합에 적대적이며,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경쟁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정부도 공격한다. 또한 전기,가스,수도,방송,철도 등 공적 산업과 자산, 심지어는 우편, 교육, 보건과 같은 공공 서비스까지도 민간에 매각하여 경쟁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신자유주의가 장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완전한 시장 혹은 순수한 시장이라는 이상향과도 같은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민간 부문을 균질한 특성을 갖는 존재로 일반화 할 수 없고, 이러한 민간 부문이 시장에서 정해진 역할만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같은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는 신자유주의는 세계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위험한 체제이다.
 
시장과 정부라는 전통적 싸움에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현대에는 거대 기업이라는 또 다른 행위주체가 개입하게 되었다. 현대의 경제 구조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제한적 경쟁 상태로 이들 거대 기업들은 엄청난 힘을 움켜쥐게 되었고 전체 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저자는 거대 기업의 사례를 다양하게 들어가면서 소위 시카고학파(신자유주의자들)에서 주장하는 시장이 이들 기업들에 의해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거대 기업은 획득한 경제권을 이용하여 정치권력에까지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에서 주장하는 경쟁이 전혀 아니다.


시장의 실패로 인해 공공 서비스에 대해 정부는 대응을 시도하지만 정부의 대응 또한 실패로 돌아가 신자유주의의 공격 대상이 되곤 했다.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경우 민영화를 주장하지만 저자는 시장화와 민영화를 구분하고 시장의 속성이 도입된 공공 서비스의 유지를 주장한다. 또한 시장과 기업을 동일시하려는 시도들에서 벗어나 기업을 또 다른 주체로 인식하고 대응해야 함을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거대 기업의 정치주체화를 다루면서 최근 몇 년동안 익숙하게 접하게 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논한다. 이윤의 극대화, 특히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포인트를 저자는 제공했다.


사회적 책임이 결과적으로 기업에 이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추구하는 것이든지, 아니면 고객들의 요구와 압력에 의해 최소한의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든 최근의 경향을 볼 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은 시대적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결과나 의도가 어떠하든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현대 경제 체계 상에서도 이제는 필수적인 활동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상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때때로 실패를 가져오는 시장, 현대적 의미에서 시장이라 여겨지는 기업, 시장의 실패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정부. 이 세 가지 주체가 현대 사회에서는 안락한 삼각관계를 이루고 있는 현재의 문제에 저자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동맹 관계를 정상적인 역할들로 돌려 놓기 위해서 저자가 눈을 돌리는 주체는 다름아닌 시민사회이다. 저자에 따르면 시민사회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 안에서 시장, 국가, 기업에 대한 가치 지향적 비판이 수행될 수 있는 공간이다.”


시민사회의 역할은 “공동의 가치에 대한 정당한 해석을 독접하려는 국가의 권리 주장과, 가치를 주주 이익 극대화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삶이라는 기업의 권리 주장에 맞서서, 지배에 대한 도전을 제기할 수 있고 공적 목표 개념을 탐구하고 실제 기획으로 바꾸는 것”이다. 자율적 정당, 교회, 캠페인 단체, 자원조직, 전문직 종사자들의 모임 등이 시민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 주체들이 안락한 삼각 동맹을 맺고 있는 구조에서 가치를 추구해야 할 것이라 저자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위와 같은 시민사회가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시민 사회 역시 잠재적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이 시민 사회 조직들도 기업과 정부 만큼이나 비판과 감시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이러한 비판과 감시는 아마도 시민 사회 조직들과 대립각을 세우게 되는 기업이나 정부에서 나오게 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자체적인 비판과 감시 활동이 필수적이다. 저자가 시민 사회에서 갖추어야 하는 모습으로 그리는 것은 “다양성의 의지가 확대되고, 비판적인 질문을 던지고 시비를 거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며, 이런 목소리가 실제 계획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 이후에 잠시 주춤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위기의 여파가 크게 남아 있는 지금까지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 그 동안에 신자유주의 구조가 맺어온 경제와 정치의 힘이 너무나 강력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책 전체를 통해 제안하는 것처럼 이러한 구조를 타파하고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 국가, 시장, 기업, 시민 사회 사이에 지속적인 긴장이 존재하면서 정치와 경제 시스템이 운영되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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