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프라하 여행
8월의 마지막 주말, 올해의 마지막 bank holiday를 맞이하여 늘 가보고 싶었던 "프라하" 로 2박 3일 여행을 갔다.
여행 내내 비가 내렸지만, 그마저도 내겐 낭만 그 자체인 프라하였다. 대학생 때 '프라하의 연인' 이라는 드라마가 우리들 사이에서 대박을 쳤고, 그때부터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드라마에서도 나오는 대사지만 말 그대로 '지구 반 바퀴' 를 돌아 오직 프라하만 여행을 갈 수 있을 만큼 한국에서의 생활은 여유롭지 못했다. 런던에 살고 있는 지금이 아니면 프라하는 평생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에 런던생활 초반부터 종종거리며 (혼자) 조바심을 내었던 곳이 프라하였다.
같이 온 남편은 여타 다른 유럽 도시와 비슷한 분위기에 뭔가 크게 볼 것 없어 보이는 단조로운 프라하가 지루한 듯 했지만, 나는 그냥 까를교와 저 프라하 성 야경을 보는것만으로도 마음이 쉬어가는 기분이었다. 주변에서 하도 작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기에 정말 뭐 볼게 있겠나 생각했지만 의외로 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가봄직한 아기자기한 볼것들이 구석구석에 있었다. 영국보다 물가도 쌌고, 여태 다닌 여행지 중 가장 호텔의 상태가 좋았기에 그런 것에서 얻는 심리적인 즐거움도 컸다.
프라하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즐기고, 맛있는 음식과 호텔의 편안함을 실컷 누린 후에 우리는 호텔 건너편의 백화점 커피숍에 앉아 공항 가기 전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를 뭘로 할 것인지에 대해 토론한 후 타이식당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타이식당을 예약하던 남편의 얼굴색이 심상치 않았다.
요즘 여행 좀 다닌다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저가항공에 대한 안 좋은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흔하디 흔한 항공 이착륙 지연부터 운항 날짜 임의 변경 및 항공사의 일방적인 결항 등이 그것인데 이착륙 지연이야 백번 양보해 공항에서 기다리면 된다지만, 뜬금없이 통보하는 '결항' 은 여행자에겐 지연과는 비할 수 없는 '어나더 레벨'의 고난이 아닐 수 없다.
2년간 이지젯을 비롯해 저가항공들을 이용했지만 이착륙 지연만 겪어본 우리는 처음으로 맞이한 "결항" 이라는 시련 앞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항공사에서는 대체 항공편 안내도 없이 그저 환불신청을 하라는 통지만 해왔다.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항공편을 검색해보니 직항편은 이틀 후에나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 2박3일을 묵었던 호텔에 자리가 있어 바로 체크인을 다시 했다. 어쩐지 비행기 이륙시간이 점점 늦어지더라니.... 이래서 밤비행기면 타면 안되는건데..라는 부질없는 후회속에 우린 거의 2시간동안 핸드폰을 손에 쥐고 대체 항공편을 찾아 헤맸다. 직항은 없으니 환승 항공편을 검색했는데 한번의 환승만으로 런던에 가는 항공편은 우리가 찾는 족족 마치 짠듯이 마감되었다.
어쩌면 내일도 런던에 못갈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했을 그때, 그리스 자킨토스를 경유해 가는 비행기를 찾았다. 비록 새벽 5시 이륙이지만 항공편이 있다는 자체가 우리에겐 감지덕지, 드디어 대체 항공편 찾기에 성공한 것이다!
우리는 그제서야 한숨 돌리고 늦은 저녁을 해결하러 밖으로 나왔다. 피는 못 속인다고 화나고 배고프고 지치니 한식 생각이 절로 났다. 정신없이 김치찌개와 밥을 떠넣으며 그제서야 생각했다
'근데 자킨토스가 어디지...?'
결론적으로 이번 결항의 원인은 항공사가 아니었다. 영국 관제시스템의 문제로 그날 대부분의 항공이 무더기로 결항되었고, 다음날까지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자킨토스에서 런던으로 가는 경유 비행기가 혹여나 또 캔슬되진 않을까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쫄깃한 시간을 보낸 후 우린 드디어 런던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단 2시간 비행이면 돌아왔을 집을 돌고돌고돌고돌아 온 느낌이라 몸은 굉장히 지쳤지만, 막상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고 보니 나중에 생각하면 이것도 참 즐겁고 행복한 추억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꼬박 하루의 시간을 투자했지만, 덕분에 환승 시간을 이용해 그리스 자킨토스에서 잠시나마 내려쬐는 태양볕 아래 아이가 막바지 여름 바다를 즐길 수 있었다. 혹여나 다음번에도 비행기가 결항된다면 긴 생각 하지말고 보이는 비행기를 바로 예약해야지만 돌아올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으며 뭔가 우리가 각본대로 짠 듯한 여행이 아닌 진짜 날것의 여행을 해보았다는 이상한 희열감 같은 것도 들었다. 되도록 여러 나라에 발자국을 찍어보고 싶던 나는 이만하면 자킨토스도 가본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내 자신을 위로했다 ㅋㅋㅋ
참고로, 너무 다행스럽게도 비행기 환불은 물론 결항으로 인해 지출한 1박의 호텔비와 스트레스 해소 겸 먹었던 한식당 저녁식사값도 모두 항공사로부터 환불받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날 더 많이 시켜먹을걸 그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