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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달걀 May 02. 2024

열 손가락 깨물어 덜 아픈 손가락이 있다.

그걸 인정해주기만 하면 마음이 풀릴 것 같다.

엄마가 아이를 봐준다고 했을 땐, 그게 나를 위한 엄마의 모성애라고 착각했다.

아빠의 갑작스러운 명퇴 통보와 겹쳐 돈이 필요했던 엄마의 사정, 할머니를 모셔야 했을 때의 작은 회피 수단, 그게 섞여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1초도 없었다.

취업이 나보다 늦었던 언니에게 몰래 몇 년간 용돈을 준 사실을 나에게 말한 엄마는, 그 비밀을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도 했었고. 2만 원이 아까워서 나만 빼고 사주 본 이야기를 나에게 몇 시간이나 읊기도 했다.

내가 빚 없이 매가가 낮은 집에 살 땐 빚이 없는 내가 제일 잘 산다고 안 보태줘도 된다,  빚이 많아지니,  넓은데 살아서 잘 살지. 좁은 서울 사는 언니를 보태주고 싶다는 우리 엄마.

명품을 휘감고 다니는 동생 내외는 외벌이라 유니클로 패션으로 다녀 딱하니 돈 들어가는 얘긴 절대 하지 말라고 하는 우리 엄마는, 외할머니가 딸년은 자식 취급도 안 해서 상속도 안 해준다며 몇 달을 울고 불고 했던 일을 기억도 못한다.

집에 있는 가전제품은 작은 밥솥까지도 내가 다 사다 둔 거 같은데. 퇴직하고 용돈도 몰래 찔러 드리고 환갑이며 칠순은 다 내가 챙겼건만. 나한텐 한 푼도 받은 적 없다고 말하는 아빠에게, 나는 제일 잘 못 키운 딸년이다.

내가 뭘 달라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살면서 이게.. 질문 한 번 한적 없는 내가 느껴야 하는 치사함인가 싶다.

나는 엄마 아빠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이렇게 오래 견뎌왔는데, 가끔 그렇게 서운하게 하고 치사한 사람으로 만든다. 나는 자식이 아니라 보험 같은 건가 싶을 때가 참 많았다. 그런데 이번엔 좀처럼 참아지질 않는다.

내가 잘 살면 엄마 기분이 별로 안 좋은 듯한 느낌도 받고, 내 아이가 잘하면 당신은 그런 거 못 느껴봤다고 하신다. 아니, 엄마는 엄마보다 잘 사는 내가 분명 싫다. 남동생보다 잘 사는 꼴은 죽어도 못 본다. 나는 엄마에게 깨물어보고 싶은 손가락이 긴 할까. 차라리 그냥 대놓고 너는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야 하고 말해주면 기분이 덜 나쁠 것 같다.


필요한 게 있을 때, 어디가 아플 때, 자랑이 하고 싶을 때, 누구 욕이 엄청 하고 싶을 때, 심부름시킬 일이 있을 때만 나를 찾는다. 아니, 이젠 강요한다. 갑자기 그 강요가 너무 싫다. 마음에서 우러나 움직이던 날들이 가고 없다.


곧 어버이날인데 감사한 마음이 하나도 없다. 결국 이렇게 또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나는, 엄마의 때 묻은 손가락인 건지, 더러운 발가락인 건지, 그마저도 감사해야 하는 건지도 이젠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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