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갑작스러운 명퇴 통보와 겹쳐 돈이 필요했던 엄마의 사정, 할머니를 모셔야 했을 때의 작은 회피 수단, 그게 섞여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1초도 없었다.
취업이 나보다 늦었던 언니에게 몰래 몇 년간 용돈을 준 사실을 나에게 말한 엄마는, 그 비밀을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도 했었고. 2만 원이 아까워서 나만 빼고 사주 본 이야기를 나에게 몇 시간이나 읊기도 했다.
내가 빚 없이 매가가 낮은 집에 살 땐 빚이 없는 내가 제일 잘 산다고 안 보태줘도 된다, 빚이 많아지니, 넓은데 살아서 잘 살지. 좁은 서울 사는 언니를 보태주고 싶다는 우리 엄마.
명품을 휘감고 다니는 동생 내외는 외벌이라 유니클로 패션으로 다녀 딱하니 돈 들어가는 얘긴 절대 하지 말라고 하는 우리 엄마는, 외할머니가 딸년은 자식 취급도 안 해서 상속도 안 해준다며 몇 달을 울고 불고 했던 일을 기억도 못한다.
집에 있는 가전제품은 작은 밥솥까지도 내가 다 사다 둔 거 같은데. 퇴직하고 용돈도 몰래 찔러 드리고 환갑이며 칠순은 다 내가 챙겼건만. 나한텐 한 푼도 받은 적 없다고 말하는 아빠에게, 나는 제일 잘 못 키운 딸년이다.
내가 뭘 달라고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살면서 이게.. 질문 한 번 한적 없는 내가 느껴야 하는 치사함인가 싶다.
나는 엄마 아빠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이렇게 오래 견뎌왔는데, 가끔 그렇게 서운하게 하고 치사한 사람으로 만든다. 나는 자식이 아니라 보험 같은 건가 싶을 때가 참 많았다. 그런데 이번엔 좀처럼 참아지질 않는다.
내가 잘 살면 엄마 기분이 별로 안 좋은 듯한 느낌도 받고, 내 아이가 잘하면 당신은 그런 거 못 느껴봤다고 하신다. 아니, 엄마는 엄마보다 잘 사는 내가 분명 싫다. 남동생보다 잘 사는 꼴은 죽어도 못 본다. 나는 엄마에게 깨물어보고 싶은 손가락이 긴 할까. 차라리 그냥 대놓고 너는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야 하고 말해주면 기분이 덜 나쁠 것 같다.
필요한 게 있을 때, 어디가 아플 때, 자랑이 하고 싶을 때, 누구 욕이 엄청 하고 싶을 때, 심부름시킬 일이 있을 때만 나를 찾는다. 아니, 이젠 강요한다. 갑자기 그 강요가 너무 싫다. 마음에서 우러나 움직이던 날들이 가고 없다.
곧 어버이날인데 감사한 마음이 하나도 없다. 결국 이렇게 또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나는, 엄마의 때 묻은 손가락인 건지, 더러운 발가락인 건지, 그마저도 감사해야 하는 건지도 이젠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