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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루언니 Sep 10. 2019

"실패해도 괜찮아" 친구의 따뜻한 위로 한마디.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저마다의 답을 찾아서... 삽질을 받아들이


실패해도 괜찮다는 친구의 응원의 메시지


" **가 자꾸 자기 선택을 의심하는 거 같아서, 실패해도 되는 일이잖아.
옷도 많이 입어보고 실패한 사람이 잘 입잖아~실패해도 괜찮아 친구.♥"



'묻지 않겠다'라고 말과 글로 다짐했지만, 나는 여전히 묻고 있다.

일상의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쇼핑에 이르기까지.


자주 묻는 것은 쇼핑 전 아이템에 대한 검증과 쇼핑 후 잘 어울리거나, 잘 샀다는 피드백을 받기 위해 지인에게 물어본다. 때론 엄마, 남편, 절친들..... 문제는 여러 번 물어본다는 거다.

(작년에 상담을 통해 이런 행위는 '안심'을 얻으려는 나의 심리로 인해서라는 것 까지는 알게 됐다.)


특히, '옷'살 때 은근히 잘 못 사는 경우가 많다.


-내 마음에 드는 것은 A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입는 옷이나 주변 사람들이 추천하는 옷이 B인 경우

-다소 한국적 정형화된 체형이 아니기에 상, 하의에 맞는 사이즈를 고르기 애매할 경우

-눈(맘에 드는 것)은 상급이 되었는데 현실은 중, 하(지불할 수 있는 수준) 수준일 때

-지금 신체 사이즈에 맞는 옷을 사기보다는, 이상적 사이즈에 맞는 옷을 사고 싶어 하는 경우


생각해보면 서른일곱 해를 살았지만 옷을 그렇게 많이 사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맞다. 친구 말처럼 여러 가지 스타일을 시도해 봐야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이 뭔지 알고 호불호를 생각하며 취향이 좁혀질 수 있는 법. 뒤늦게 눈이 떠진 나는 이제야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려고 하니 시행착오가 생기는 법. 그 상황을 인정하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수정하고 재도전하면 되는데,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까지 나는 실패가 두려워 몇 번을 보고, 또 보고, 입고, 또 입고, 묻고 또 묻는다.


그러고 보니 <실패하면 안 돼>라는 내면의 메시지는 여러 번 내 머릿속에 종을 띵 띵 울린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자주 옮긴 것인가? 남들 볼 때는 멀쩡하게 잘 다녔지만, 내 맘속에서 어떤 한 부분이 내 기준보다 실패했다고 느꼈던 때 그러했을까.....


경험이 부족하니 실패와 좌절을 통해 성숙해 나가는 것이 진리인 것을 모르고 나는 실패하지 않을 상황, 무대, 일을 계속 찾아 헤맨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곳이 꽃길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친구의 저 메시지를 보는데, 마음 한켠이 시리면서도 든든한 이유는 뭘까.

자라면서 저런 이야기를 들어보진 못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성공하라는 강요도 들은 적은 없으나 그 시대 우리 부모님들은 사는 것이 바쁘기에 그런 부분까지 세밀히 챙기진 못했겠지. <기질>또한 무시 못한다.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는 부모님이 있더라도 본인 성향이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성향이라면 씨알도 안 먹힌다.


결국, 뭐든 스스로 경험해서 깨우쳐야 하는 법일까... 그렇다면 어려서부터 다양한 실패의 경험에 노출시켜주는 것이 필요하겠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에 빠진 아들


유치원을 다니는 아들은 요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에 푹 빠져있다. 오늘은 <독도는 우리 땅> 노래도 배워와서 흥얼거리는데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배운 것 같은데 6살인데도 잘 안 되는 발음을 흥얼거리며 가사를 외워서 부르는 모습이 기특하다.


아마도, 내 피도 물려받았으니 아들은 주도적으로 무언가 하려고 할 테고 드러나게 하고 싶어 할 거다.

친정엄마의 선물로 요즘 아들의 잇템인 NUGU에 "아리야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틀어줘"를 날마다 외치는 아들~ 오늘은 가사가 나오게 하는 모드로 모두가 합창을 했다.


아직 한글을 다 깨치진 못했기에, 나는 터치로 스크롤을 내리며 가사의 싱크로율을 맞게 조절하고 있었다. 아들은 자꾸 스크립트를 너무 빨리 터치해서 올리거나, 늦게 내렸다. 그런 아들의 모습이 나는 답답해서, 내가 해줄 테니 그냥 보고 있으라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들은 계속 본인이 하겠다고 스크롤을 올렸다 내리며 다 알지도 못하는 가사로 흥얼거렸다. 나는 갑자기 기분이 상했다. 뭔가 제대로 하지 못하는 데 자꾸 하려던 아들의 행동이 거슬렸던 것 같다. 노래 가사도 틀려서 부르면 아들의 노래를 끊으며 "아들, 발음이 부정확하잖아 그건 몽개토대왕이 아니라 광개토대왕이야 왕왕.." 


아들과 나의 이러한 우스운 광경을 보고 남편이 하는 말.

"그냥 애잖아. 하고 싶어서 하는데 어때~"



"실패해도 괜찮아."를 하지 못하는 나의 사고방식은 이렇게 아들에게까지 전달이 되는 것 같다.


아, 내 속에는 뭐든 완벽하게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혔었구나.

뭔가 퍼즐 조각이 하나씩 끼워 맞춰져 간다.


앞으론, 좀 더 수월해질 것 같다. 모든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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