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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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얀마의 사태가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외신을 통해서도 그렇고 SNS에서 전해지는 군부 쿠데타의 진행 사항은 국제적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 그러나 중국만은 예외인 듯하다.
“여기 사는 미얀마인들은 미얀마 군경이 저지르는 만행에 분노하고 있다.” 3월 16일 중국 윈난(雲南) 성 루이리(瑞麗) 시에 사는 펑조는 필자와의 통화에서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펑조는 루이리의 미얀마인 상인회장이다. 1990년대 초 중국으로 넘어와 비취 거래로 성공했다. 비록 미얀마로부터 탄압받는 로힝야족이고 무슬림이지만, 누구보다 미얀마를 사랑한다. 펑조는 “중국 언론은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자세히 보도하지 않는다. 미얀마인들이 즐겨 쓰는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도 중국에서는 접속이 차단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해외에 거주하는 미얀마인들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미얀마 각지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라고 밝혔다.
루이리는 미얀마의 무세와 맞닿은 국경도시다. 또한 중국이 미얀마에서 소비되는 원자재와 생활용품을 공급하는 전진기지다. 실제로 지난해 루이리의 대(對) 미얀마 무역액은 764억 8000만 위안(약 13조 3000억 원)이었다. 이는 2015년 295억 위안보다 무려 2.7배나 급증한 수치다. 3월 12일 중국 상무부가 발표한 ‘대미얀마 경제무역합작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과 미얀마의 전체 무역액은 전년보다 1% 늘어난 188억 9000만 달러(약 21조 3457억 원)였다. 이 중 62.5%가 루이리를 통해 거래된 것이다.
이렇듯 중국은 과거부터 자국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미얀마 군부든, 반군부 무슬림이든 가리지 않고 손잡았다. 정치적 동지도 한순간에 저버렸다. 그렇기에 루이리를 통해서만 2019년 1700만 명이 넘는 중국인과 미얀마인이 오갔다. 중국은 미얀마를 더욱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2015년 쿤밍(昆明)에서 루이리에 이르는 752km의 고속도로를 완공했다. 또한 내년 12월 개통을 목표로 철도를 부설 중이다. 지난해 1월에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중국 최고지도자로는 19년 만에 미얀마를 방문했다. 시 주석은 방문 중 ‘중국-미얀마 경제회랑’ 프로젝트와 관련해 33건의 계약을 체결했다.
루이리 시(중국어: 瑞丽市, 병음: RuìlìShì)는 중화인민공화국 윈난성 더훙 다이족 징포족 자치주의 현급시이다. 넓이는 1020km 2이고, 인구는 2007년 기준으로 120,000명이다.
중국과 미얀마와의 주요 국경지대로 국경 건너편에 뮤즈 마을이 위치한다.
중국과 미얀마의 밀착 현장 ‘루이리’
과거 루이리는 중국이 미얀마와 극도로 밀착된 상황을 여러 면에서 보여준 곳이었다. 수만 명의 미얀마인이 거주한다. 미얀마인들은 1980년대부터 국경을 넘어 루이리로 왔다. 첫 번째 부류는 미얀마 군사정권에 반대했던 버마족이었다. 1962년 쿠데타로 집권한 미얀마 군부는 오랫동안 중국에 적대적이었다. 특히 군부 최고지도자였던 네윈은 반중(反中) 소문을 퍼뜨려서, 당시 미얀마의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던 화교에게 국민들의 불만이 쏠리도록 했다. 그 결과가 1967년 반중 폭동이었다. 폭동으로 화교 수백 명이 살해당했고, 10만 명이 추방됐다.
이에 분노한 중국은 미얀마 내 반군 세력인 버마 공산당에 인력과 무기를 지원했다. 필자가 2009년 루이리에서 만났던 미안 마오는 버마 공산당원이었다. 미안은 양곤대학을 졸업한 버마족 엘리트였다. 그는 “중국과 인접한 밀림지대에서 활동하면서 중국산 무기로 미얀마 정부군과 대등하게 교전했다”라고 말했다. 버마 공산당이 소수민족 반군과 손잡고 세력을 넓히자, 군부는 위기감을 느꼈다. 결국 네윈은 중국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고 덩샤오핑은 이를 받아들였다. 1978년 중국은 버마 공산당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결국 버마 공산당은 1988년 미얀마군에 항복했다. 이런 과정에서 버마족이 대다수였던 버마 공산당원은 중국 루이리로 넘어와 정착했다. 미안 마오는 그들의 리더로 활동하며 미얀마의 반군부 세력을 지원했다.
두 번째 부류는 미얀마에서 박해받던 소수민족 이슬람교도들이었다. 네윈은 집권 후 철저하게 버마족과 불교도 위주의 정책을 펼쳤다. 이에 무슬림들이 반군을 조직해 저항하자, 1978년과 1991년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토벌작전을 벌였다. 그로 인해 적지 않은 이슬람교도들이 방글라데시와 중국으로 탈출했다. 그들이 바로 지금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로힝야족이다. 펑조도 2차 토벌작전이 벌어지던 와중에 루이리로 넘어왔다.
중국이 자국 내 위구르족 이슬람교도는 탄압하면서, 로힝야족 무슬림을 환영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보석인 비취의 원석을 그들이 가져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루이리의 상업거리인 볜마오제(邊貿街)는 로힝야족의 천국이 됐다. 펑조는 “볜마오제 보석상점의 3분의 1은 미얀마인이 주인이거나 미얀마인이 중국 사람 명의만 빌려 운영하고 있다”면서 “이 중 열에 아홉은 무슬림”이라고 밝혔다. 볜마오제에 이슬람 사원이 두 곳이나 있을 정도다. 펑조는 맨손으로 중국에 와서 집·가게·자동차 등을 장만했고, 아들을 양곤에 있는 대학에 보냈다.
중국이 미얀마에 심혈을 들이는 이유는 자원 개발과 확보에 있다. 2019년 말 미얀마의 천연가스 매장량은 2832억㎥이고, 원유 매장량은 5000만 배럴이다. 천연가스와 원유는 2014년 미얀마의 짜욱퓨항에서 루이리를 거쳐 쿤밍까지 건설된 송유관을 통해 중국으로 옮겨진다. 또한 미얀마에는 우라늄 등 광물이 많고 비취 원석은 전 세계 매장량의 94%나 된다. 그동안 중국이 미얀마에 쏟아부은 돈은 수백억 달러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54억 1000만 달러의 엔지니어링 협력 계약을 맺었다. 투자를 통해 거둔 이익은 지난해 18억 6000만 달러였다.
중국, 미얀마 군부에 자신감의 원천 제공
따라서 3월 14일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서 벌어진 중국계 공장에 대한 대규모 방화 사건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국이 목적과 이익을 위해 미얀마 군부를 지원하고, 로힝야족 무슬림을 받아들이는 행태를 미얀마 국민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 직후 국수주의 성향이 강한 중국 ‘글로벌타임스’는 “서구의 반중 세력과 홍콩 분리주의자의 영향을 받은 현지 주민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일부 전문가는 미얀마인의 뿌리 깊은 반중 감정에 주목했다. 쉬리 핑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한 매체 기고를 통해 “일부 미얀마인들은 중국의 적극적인 투자가 자원 약탈의 성격이라고 여기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미얀마에서 자국 공장이 습격당하고 날마다 군부가 시민들을 학살하자, 중국인들조차 미얀마 사태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포털사이트의 뉴스에는 “왜 미얀마 같은 쓰레기 나라에 돈을 쏟아붓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댓글마저 달렸다. 하지만 3월 15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얀마와의 경제무역 협력은 상호번영 원칙에 기반하고 미얀마 경제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된다”며 협력관계를 강화할 뜻을 내비쳤다. 결국 이런 중국의 입장이 미얀마 군부 지도자들에게 “우리는 제재에 익숙하다. 소수의 친구와 함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자신감의 원천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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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NYTimes의 기사에서도 중국 왕이 외교 부장의 중간 화법을 인용하며 친 군부 미얀마 정책을 지지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였다..
How has China, Myanmar’s biggest neighbor, reacted?
China, which shares a 1,300-mile border with Myanmar and is one of the country’s largest investors, has responded cautiously, having cultivated cordial relations with both Ms. Aung San Suu Kyi and the military hierarchy that detained her.
“China and Myanmar are friendly neighbors. We hope that all parties will properly handle their differences under the Constitution and legal framework to maintain political and social stability,” Wang Wenbin, a Foreign Ministry spokesman, said in Beijing on Feb. 22, the day of the general strike.
Myanmar was the first stop of a regional good-will tour in January by China’s foreign minister, Wang Yi, who pledged to furnish free Chinese-made coronavirus vaccines to Myanmar.
( 미얀마의 가장 큰 이웃 인 중국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미얀마와 1,300 마일 국경을 공유하고 있는 중국은 미얀마 최대 투자자 중 하나 인 중국은 아웅산 수치 여사와 그녀를 억류 한 군 계층과 따뜻한 관계를 맺으며 신중하게 대응했습니다.
“중국과 미얀마는 우호적인 이웃입니다. 우리는 모든 정당이 헌법과 법적 틀에 따른 차이를 적절히 처리하여 정치적,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기를 바랍니다.”라고 총파업 당일 베이징에서 외교부 대변인 왕 웬빈은 말했다.
미얀마는 미얀마에 중국산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약속 한 왕이 중국 외무 장관이 1 월에 지역 친선 투어의 첫 번째 장소입니다. )
잠정적 , 진행 사항을 보자면 , 중국르서는 천연자원과 석유등 전력 물자 그리고 지리적으로 해상 운송로 중의 하나인 인도양을 접하게 된다라는 측면에서 매우 매력적인 입지 인 미양마를 군부가 되었던 아웅산 수치 여사가 되었던 놓치고 싶지는 않을 일이다. 위 글에서도 나타났지만 , 반군이라 핥지라도 무기 나 경제적 지원 없이는 금방 허물어지고 마는데 , 이들이 배후에 중국이 있다면 , 중국의 입맛에 맞는 정책과 외교전략 서방과의 거리를 두려는 정치 집단으로 축약이 될 수 있겠다.
당연하게도 미국과 친하지 않은 정권이 들어오길 내심 바라고 있는 것이 중국의 일대 일로 확정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미얀마의 운명이기도 하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적대적인 인도와의 접경 지역과 아울러 미얀마까지 약 1300 마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를 내편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보았다.
민주주의? , 중국의 사회주의 정책과 기치 아래서라면 수천 명이 죽어 나가도 자국에 이익이 되는 시스템이라면 기꺼이 감수하고도 남을 일이다. 다만 자기 손으로 피를 묻히지 않는 전략을 취한다라는 것이 교묘하다. 물론 세상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말이다.. Written by E HAN.
P.S ; 서방 중에 미국은 왜 잠잠할까?.. 아마도 미국의 국익에 직접적 도움되는 역할이나 전략적 물자 교환 차원에서는 G20 국가보다는 순위가 떨어져서 일까 ,, 하지만 , 중동의 이스라엘이 이를 지켜보고 있고 원유 수금에 대한 차단로는 이미다 해상 경로로 해서 이란 호르 무츠 해엽 까지 봉쇠 하는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역간 느긋할 것이다.... 물론 비민주주의적 처사인 군부에 대해서는 경제 제재 등 다른 경로로의 압박을 행해 나가지 않을까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