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잘 놀았다

<싱큐 베이션 1기를 마치며>

by 도냥이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있을 땐 길었고 반팔을 입을 쯤엔 짧았다. 그리고 결국 그 날이 왔다. 싱큐 베이션 1기가 끝났다. 분명 마지막 모임을 하고 왔건만 끝이라는 게 아직은 그다지 실감 나지 않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렇고 ‘화요일 데드라인’을 의식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면 더더욱 그렇다.


이런 까닭에 싱큐 베이션 후기를 쓰기엔 지금은 어쩌면 조금 적합하지 않을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마지막 식사자리에서 내 설레발은 춤을 추었고 결국 팀장님께 후기를 작성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기염을 토했으니. 그러니 이런 마음을 살짝 뒤로 한 채 조금은 가볍게 적어보려고 한다.


싱큐 베이션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굳이 ‘성황리’라는 거창한 표현을 쓴 까닭은 팀장님의 출석/독서/서평 3가지 분야의 야심 찬 공약이 현실로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완전무결하게 말이다. 즉, 우리 팀원 전부는 12주 동안 12권의 책을 읽고 12개의 서평을 작성하는 미션을 달성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미션을 영어로는 퍼펙트하게 숫자로는 100% 달성한 것이다. 당연히 이런 놀라운 업적은 우리 모두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런 모임에 잠시나마 소속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훗날 값진 추억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KakaoTalk_20190702_230210528.jpg

첫 오프라인 모임은 2019년 4월 4일이었다. 그때의 기분 좋은 설렘과 이로 인한 떨림은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새로운 사람을 접하기 힘든 환경에 있었기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집인 인천에서 모임 장소인 미켈란 107 빌딩까지 오는 내내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모임 장소에 더 가까워질수록 떨림은 점점 더 몸집을 키워갔다. 그리고 미켈란 빌딩에 거의 다 와갈 쯤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뭐라고 얘기할까”, “첫 멘트를 뭐라고 해야 하지?” 등 부질없는 생각들을 머리에 가득 채운채 한 발 한 발 걸어갔다. 다행히 엘리베이터에는 팀원들이 없었고 떨림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6층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엘리베이터를 내려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정문을 열었다. 팀장님은 가장 먼저 도착해 자리에 앉아 계셨고 나에게 “어디서 오셨어요?”라고 물으셨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인천에서 왔다고 말했고 거기서 끝내긴 뭐해 6시부터 출발했다는 사족을 덧붙였다. 팀장님은 “아 일찍 나오셨네요.”라고 답하셨고 나는 다시 “어디서 오셨어요?” 등의 고리타분한 질문을 했었다.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고 그 공백을 타고 들어온 짧은 침묵이 빈자리를 채웠다.


영겁처럼 느껴졌던 시간을 깨고 한 남자분이 들어왔다. 그분은 굵은 얼굴 선을 가지고 있었고 당당한 걸음걸이가 인상적이었다. 그분은 자리에 앉기도 전 유창하게 자신의 얘기를 풀어내며 팀장님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눴다. 마치 영화에서만 접했던 사교 파티의 한 장면과 같았다.(파티 사교모임에 가본 적은 없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것이 사회인인가!?” 하며 기가 죽기도 하고 “여기는 내가 올 곳이 아닌가?” 하며 지레 겁먹었던 기억이 난다. 추후에 알고 보니 그분은 이미 빡독 스피치를 하신 경험이 있었고 나중에는 강연 요청도 받으셨다. 그리고 우리 모임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토론을 주도해 나가셨다. (게임 시작부터 끝판왕이 나온 셈이다.)


그리고 잠시 후 토론은 곧 진행되었다. 지금은 토론에서 무슨 얘기를 나눴지는 잘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그때의 분위기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생각은 자유로웠으며 모두가 존중해 주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이야기 꽃이 만개했다.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함에도 어떻게 그렇게 얘기를 나눌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마치 게스트하우스에서 저녁 파티 후 나누는 취중진담과 같았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도란도란 모여 자신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었다. 이 대화에 나이, 성별, 사회적 위치 등과 같은 부차적인 것들은 낄 곳이 없었다. 그저 삶을 말하고 듣고 공감하며 때론 웃기도 울기도 하며 그렇게 놀았다. 아주 잘 놀았다. 그 후로도 5번의 오프라인 모임이 더 있었지만 그 길이 한 번도 설레지 않은 적이 없었고 즐겁지 않았던 적도 없었다.

KakaoTalk_20190702_225839069.jpg <모임의 마지막 순간에서>


나는 싱큐 베이션을 통해 무엇을 얻었고 어떤 것이 변화했을까?


물질적으로는 필사 노트를 얻었고 내가 자주 쓰는 단어들을 알았으며 커피음료를 얻었다.(규승 님, 용마님, 위경님 감사합니다.) 정신적으로는 인터뷰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추천해주신 현진 님, 팀장님, 규원 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싱큐 베이션 기간 동안 31권의 책을 읽고 24개의 서평을 남겼으며 세 번의 인터뷰를 경험했다. 물론 이로 인해서 내 삶이 천지개벽하여 드라마틱하게 변한 것은 아니다. 또한 지금 있는 문제들이 단박에 해결된 것도 아니다. 이는 신박사님께서도 누차 말씀 셨듯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내 순간의 실수로 인한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잘못된 선택이 누적되어 생긴 결과물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내가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문제를 대하는 태도다. 예전 나는 눈 앞에 닥친 문제들을 최대한 외면하고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꼭 해야만 하는 일임에도 그랬다. 그런데 이번 싱큐 베이션에서 임계점을 넘는 경험을 해보면서 깨달았다. 피하는 것도 내 선택이었음을 말이다. 그리고 그 선택이 차악도 아닌 최악이라는 것을 말이다. 앞으로 나는 내 문제들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이다. 내가 정말 고민해야 될 문제를 선택할 것이고 필요하면 만들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행동할 것이다.


싱큐베이션 아래 문구.jpg

사진출처 :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