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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연말 책 결산

by 도냥이

연말이 되면 온갖 시상식 퍼레이드가 이어진다. 지상파 3사를 비롯해 청룡영화상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한 해를 결산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최근 청룡영화상에서는 화사의 무대에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한 배우 박정민이 함께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런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문득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나는 저런 화려한 무대에 갈 일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결심했다. 나만의 시상식을 개최하기로.


시상식이라면 노래, 연기 등 주제가 있어야 한다. 무엇을 주제로 할까 고민했지만, 역시 나에게 어울리는 건 책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평소 책 읽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이제는 취미를 넘어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존재이기 때문이다. 올 한 해 동안 읽은 책들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어쩌면 책을 주제로 한 시상식은 저자들을 초대하는 느낌도 든다. 모든 책들엔 저자들이 존재하니까.


사실 이런 생각은 처음이 아니다. 매년 연말이 되면 비슷한 계획을 세웠지만, 완벽주의 탓에 쓰다 만 글들이 쌓여만 갔다. 연초가 되어버리면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저장글에는 그런 글들이 한 무더기다. 글도 유통기한이 있어서, 시기를 놓치면 금세 식어버리곤 한다.


이번에는 다르다. 연초로 넘어가지 않도록 12월 초에 미리 올려보기로 했다. 자, 그럼 시작해 보자.


1월부터 12월인 현재까지 읽은 책은 총 68권이다. 작년에는 백 권이 넘었지만, 올해는 다소 줄었다. 아마 완독 하지 않은 책을 제외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5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나 술술 읽히지 않는 고전을 많이 읽은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한 번에 다 소개하기는 어려우니, 부문별로 인상 깊었던 책을 골라보겠다. 사실 부문 별로 채 다섯 권도 안 될 수도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시상식이니 다소 뻔뻔하게 진행해도 괜찮을 것이다.


✪ 올해의 소설상 - 파울로 코엘료 『불륜』

두구두구, 올해의 소설상은 파울로 코엘료의 『불륜』이다. 독서모임 선정도서였던 양귀자 작가의 『모순』과 마지막까지 고민했지만, 개인적으로 『불륜』에 손을 들어주었다. 불륜이라는 소재가 흥미롭기도 했고, 오랜 관계 속 권태의 분위기를 매우 섬세하게 담아냈다. 특히 초반 몰입감이 뛰어나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써도 되나 싶을 정도다. 다양한 변수들이 얽혀 있는 이 파국적인 관계까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지는 흡입력이 있었다.


✪ 올해의 에세이상 - 김영하 『단 한 번의 삶』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예전 책을 재출간한 게 아니라, 새로운 에세이라는 점이 반가웠다. 나는 김영하 작가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일상 속에서 무심코 흘려 넘기는 감정들을 명확하게 언어로 풀어주기 때문이다. "아,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하고 무릎을 치게 되는 순간, 이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감각을 느낀다. "너 같은 사람 여기도 있어"라고 말해주는 듯한 그의 문장이 큰 위로가 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이미 유명한 작가지만, 가족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모습은 그 또한 한 개인임을 느끼게 한다. 글맛은 말해서 뭐 하랴.


✪ 올해의 역사상 - 구범진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이 책은 자주 눈에 띄었지만 다소 딱딱해 보이는 주황색 표지 때문에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읽게 되었고, 정말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병자호란은 조선이 무능해서 당한 전쟁으로 여겨지지만, 이 책은 그 시선을 뒤집는다. 홍타이지의 입장에서 병자호란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전쟁의 흐름을 핀셋으로 짚듯 정밀하게 서술하고, 강화도 회담을 급히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며 하는 마지막 부분은 이 책의 백미다.


고(故) 남경태 작가의 『혼자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지식 : 역사』와 끝까지 고민했지만, 최종 선택은 이 책이었다.


✪ 올해의 사회과학상 - 이철승 『불평등의 세대』

올해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특히 좋은 책들이 많았다. 요즘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듯했다. 춘추전국시대에 제자백가가 쏟아졌던 이유처럼, 불확실성이 큰 시대에는 담론이 많아진다. 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 송길영의 『시대예보 : 경량문명의 탄생』도 인상 깊었지만, 결국 이철승 교수의 『불평등의 세대』에 손을 들었다.


『불평등의 세대』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과거와 연결해 분석하고, 그 해결 방향까지 제시하는 삼부작 중 첫 권이다. 이후 『쌀, 재난, 국가』와 『오픈 엑시트』로 이어지는 흐름은 탁월했다. 학술서의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교양서로서의 문턱도 낮췄다. 데이터가 많아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동양권 사회 구조 속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꼭 읽어볼 만하다.


✪ 올해의 과학상 - 싯다르타 무케르지 『세포의 노래』

이 분야에서 이미 유명한 싯다르타 무케르지의 『세포의 노래』를 올해의 과학상으로 꼽았다. 이 책은 세포의 기원부터 현재까지를 아우르며, 과학을 흥미롭게 전달한다. 만약 이 책을 중고등학생 때 읽었다면 진로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다. 두께에 비해 술술 읽히며, 생명과학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운동하는 사피엔스』, 『우리는 왜 죽는가』도 좋았지만, 『세포의 노래』의 완성도가 가장 뛰어났다.


이외에도 『물질의 세계』, 『인간 본성의 법칙』, 『편안함의 습격』 등 인상 깊은 책이 많았다. 특히 사회과학 분야의 독서가 많았던 한 해였다. 아마도 AI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내 독서 방향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나만의 시상식을 마치며, 한 해 동안 책이 있어 얼마나 든든했는지를 다시금 느낀다. 다음 해에도 또 어떤 책들과 만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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