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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준 Feb 01. 2023

신은 우주와 그 안의 질서를 명료하게 설명한다

신 그리고 과학 2

    이제부터 모두가 그토록 궁금해 하는 창조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구체적이거나 깊이 있게 들어가지는 않을 예정이다. 왜냐하면 신의 천지창조를 믿는 창조과학에도 아직 너무나도 많은 모델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24시간짜리 하루가 여섯 번 되풀이되는 동안 모든 생명체가 지어졌다는 창세기 1장의 내용을 강조한다. 또 어떤 이들은 생명이 시작되게 만든 1차적 요인이 하나님인 것은 분명하나 그 뒤를 이어받은 것은 자연적인 요인들이라고 주장한다. 이 양 극단 사이에도 창조에 대한 다른 사상을 가진 이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이 6일이 아닌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대규모 창조활동을 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창조모델의 다양성에 관하여 팀 켈러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다면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크리스천들은 창세기 1장의 의미와 진화의 본질 양면에 걸쳐 제각기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으므로, 기독교 신앙을 총체적으로 받아들이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런 세부 논의에 시선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길을 찾는 회의주의자라면, 이런 입장을 가운데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걸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는 전제조건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기독교의 핵심적인 주장에 무게를 두고 집중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부활, 그리고 그분이 전한 메시지의 중심 교리들을 단단히 마무리한 뒤에 창조와 진화에 관한 다양한 옵션들을 생각하는게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는 신앙에 있어서 한번쯤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개념이기 때문에, 그 두렵게만 느껴지던 여정을 이제 떠나보려 한다. 지금부터 전부는 아니더라도 천지창조의 정수이자 수 많은 창조과학 모델의 교집합, 다시 말하자면 대부분의 창조론자들이 공통되게 인정하는 몇 가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986년, 오늘날 기독교 철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알빈 플란틴가(Alvin Plantinga)는 일리노이 주의 휘튼 대학에서 그가 하나님을 믿는 이유에 대해 24가지 방식으로 설명하는 강연을 진행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그의 유신론적 입장을 명료하게 풀어냈으며, 그 중에서 대중들의 이목을 가장 끈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우주’를 다룬 내용이었다. 우주에 대한 관심은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확장되어져 왔으며, 신의 존재에 관하여 논증을 펼칠 때에도 자주 사용되는 주제가 바로 이 우주론적 논증이다. 어째서 우리는 이 우주에 그토록 관심이 많은 것일까? 우리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만드는 우주의 무한함과 광대함으로부터 오는 궁금증 때문일수도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 그 우주 너머에 모든 것의 시작, 모든 것의 궁극적인 원인이 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적으로 보나 과학적으로 보나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한 모든 것에는 존재하게 된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존재하게 된 원인에는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있을 것이고, 두 부모님은 당연히 그 정자와 난자의 존재 원인이 될 것이다. 그 위에는 조부모님들이 동일한 존재 원인으로 있으며, 그렇게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어떠한 생명체가 아닌 자연 그 자체에 존재 원인이 있을 텐데, 그 자연의 꼭대기에 있는 존재 원인을 우리는 우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우주는 어떻게 그리고 왜 존재하는 것인가?


    당연히 우주도 한 지점에 시작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그 시작이 빅뱅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그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가장 먼저, 빅뱅이론을 지지하는 이들은 적어도 무신론자라면 무에 의해 무에서 우주가 나왔다고 믿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아무 이유도 없이 작디 작은 한 점에서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의 밝은 에너지 섬광이 쏟아져 나오면서 우주가 시작되고, 자연적 법칙과 시간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는 이론을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여러 무신론자들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현대 철학계의 무신론자 케이 닐슨(Kei Nielson)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귀에 갑자기 시끄럽게 쾅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자. 저 소리가 어떻게 난 것이냐고 당신이 내게 묻는다. 내가 아무 이유 없이 저절로 난 소리라고 답한다면 물론 당신은 수긍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쾅 소리에도 원인이 있는데, 온 우주를 만든 커다란 쾅 소리 (Big Bang)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일어났다는 주장을 어찌 그리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설령 그 거대한 폭발이 아무 이유도 원인도 없이 일어났다고 가정하더라도, 우리의 우주는 여전히 무신론을 향해 많은 설명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우주의 정밀함이다. 만약 우주가 조금의 의도성도 없이 정말로 그저 어떠한 폭발로 만들어졌다면, 그 우주는 지금 불규칙함과 혼돈으로 가득찬 공간이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혼돈의 연속이어야만 할 우주는 지금 극도로 정밀한 자연법칙과 미세한 숫자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신의 언어(The Language of God)>를 쓴 과학자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과학자의 시선으로 보면, 우주는 마치 인간이 나타날 줄 알고 기다린 것처럼 보인다. 우주에는 중력상수에서 강하고 약한 핵력과 관련된 다양한 상수들에 이르기까지 정확한 값을 가진 상수들이 15개나 작용한다. 그런 상수들 가운데 어느 하나가 백만 분의 일, 경우에 따라서는 천억 분의 일만큼이라도 틀어지면 지금 우리가 보는 우주는 사실상 존재할 수가 없다. 물질은 융합되지 못하고 은하계, 별, 행성과 인간은 나타나지 못했을 것이다.” 생명을 지탱하고 있는 이 우주는 사실 아슬아슬한 상태로 겨우 균형을 지키고 있다. 스티븐 호킹의 계산에 따르면 빅뱅이 일어난지 1초 후 우주의 팽창속도가 1019 분의 1만 늦었어도 우주는 불덩어리로 붕괴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한다. 영국의 물리학자 P.C.W. 데이비스는 별들의 생성에 적합한 맨 처음 조건, 즉 행성들의 필수 조건이자 생명의 필수 조건이 갖춰질 확률이 최소 1023 분의 1이라고 결론지었다. 또한 그는 중력의 힘이나 약력(力)의 힘이 10101 분의 1만 바뀌어도 생명체가 발육할 수 없다고 추정했다. 이 수치를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사하라 사막에 있는 모든 모래 알갱이들 중 단 하나의 알갱이가 빠지거나 더해진다면, 온 우주의 생명체가 즉시 붕괴되는 정도의 수치이다. 심지어 그런 사막이 하나도 아니고 최소 15개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정밀한 수치와 법칙들은 우리 삶 속에도 당연하다는듯이 존재한다. 물리학과 화학을 통해 관찰할 수 있는 모든 사물들의 움직임을 살펴본다면, 그들은 대부분 동일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보편적인 법칙들에 동일한 방식으로 순응한다. 온 우주의 물질의 행동방식에 광범위한 일치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약 세계의 모든 대상들이 가진 (특정한 조건에서 발휘하는) 힘과 성향이 전부 달랐다면 이 세계는 매우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는 곳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물은 용량에 관계없이 섭씨 0도를 기준으로 어는 성향을 갖고 있으며, 모든 전자들은 어떤 조건에서든지 서로 같은 크기의 힘으로 다른 전자를 밀어낸다. 이런 예시들이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과학을 통해 이미 더할나위없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과학의 역할은 그 이상을 초월할 수 없다. C.S. 루이스는 과학이 사물이 어떤 규칙을 따라 움직이는지를 관찰할 수는 있으나 어떤 사물이 왜 존재하느냐, 과학이 관찰하는 사물들의 배후에 무언가 - 그 사물들과 다른 종류의 무언가 - 가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는 과학이 던질 질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언젠가 과학이 완벽해져서 전 우주에 있는 것들을 낱낱이 알게 되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 “우주가 지금처럼 지속되고 있는 목적은 무엇인가?”, “우주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와 같은 질문들은 지금과 똑같이 남아 있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의 ‘원인’과 ‘의미’와 ‘목적’이라는 본질적인 주제들에 대해 유신론과 무신론은 각각 어떠한 설명을 내놓고 있는가? 옥스포드 대학교의 명예 철학교수이자 50년간 신의 존재에 관한 논증을 다뤄 온 리차드 스윈번은 유신론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가설을 통해 위 주제를 가장 간단하고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질서 속의 우주는 아주 확실하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 앞에서 어떻게(how)라는 질문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주 간단하게, 그것도 단 한 문장으로 정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 이 정밀한 우주와 그 안에 통일되어 있는 모든 자연법칙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대답: 무한한 지식과 능력을 지닌 지적설계자에 의해 직접 조정되고 만들어졌다. 


    혹자는 다음과 같이 반문할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신은 누가 만들었는가? 왜 신은 아무 원인도 없이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인가?’ 물론 이 반문에 완벽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해당 반론이 무신론에 아주 조금의 긍정적인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무신론 또한 유신론과 다를 바 없이 ‘우주가 아무 원인도 없이 탄생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빅뱅을 믿던지 혹은 초월적 존재의 개입을 믿던지간에 우주의 시작은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동의하지 않는 한 ‘시작’은 절대 극복할 수 없는 문제다. 우주를 만든 무언가는 우리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자연계를 넘어서서 초자연적이고, 비의존적인, 스스로 있는 존재여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있는 신을 택하거나 스스로 있는 우주를 택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에게 믿음을 요구한다. 따라서 ‘초자연적인 지적설계자의 개입으로 인해 우주가 탄생했다’라는 주장과 ‘우연한 폭발로 인해 우주가 탄생했다’라는 주장 둘 다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그 중 전자를 선택한다고 해서 ‘비과학적이다’라는 비난을 받을 이유는 조금도 없다. 이는 본질적으로 우리의 과학에서 벗어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라는 질문은 어떨까? 우주가 왜 생겼고, 그 우주에는 무슨 존재 목적이 있는가? 이 질문에 무신론이 줄 수 있는 대답은 ‘아무것도 없다’이다. 신이 없다면 우주는 아무 의미 없이 그냥 탄생한 공간이며, 그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에도 생존 이외의 존재 목적은 없다. 우주의 정교함과 자연의 모든 통일성 있는 법칙들 또한 그냥 어쩌다보니 만들어진 것이다. 존재의 원인은 있을지언정 존재의 의미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신론은 정 반대의 답을 내놓고 있다. ‘우주의 정교한 자연법칙에 존재 목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신은 당당히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법칙 아래에서 살아가는 우리가는 우리 인간에 대해 설명한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7)”


    기독교의 신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인간은 분명히 다른 모든 생명체로부터 구분된 존재다. 신의 형상을 본따서 만들어진 유일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신의 형상이란 무엇인가? 물론 인간의 눈, 코, 입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로지 인간만이 가진 독특한 점들을 생각한다면 나는 ‘창조성’을 신의 형상 중 하나로 본다. 이전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생명체는 오로지 인간뿐이며, 이러한 특성은 이전에 없던 ‘자연’이라는 것을 창조한 신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신의 형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은 그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들고 그 안에 창조성을 부여하는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들에게 그가 만든 세상 속에서 해야되는 ‘역할’을 부여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8)”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역할 중 하나는 그가 창조한 이 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이는 곧 우리에게 그가 만든 자연을 어떻게 운영하고 또 관리해 가도록 할 것인가에 대한 어느 정도의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주의 질서와 자연의 법칙의 존재 이유가 드러난다. 만약 우리가 다스릴 자연이 전적으로 불규칙적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도 통제할 수도, 정복할 수도 없다. 그래서 신은 그 자연에 일정한 규칙성과 통일성을 넣어서 인간이 이를 배움으로 말미암아 “선택이라는 창조적인 활동을 공유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또한 우리는 하나의 규칙성 안에 더 정교한 규칙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발견함으로써 이 세계를 향한 통제력을 더욱 확장시킬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물질들이 땅으로 떨어지려 한다는 대략적인 규칙을 발견했다면, 이제는 그 규칙 안에 ‘가속도’와 ‘에너지’라는 훨씬 더 세부적이고 정교한 규칙성이 있음을 발견함으로써 이전에 신으로부터 받은 창조성을 더 혁신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창조적 행위를 위한 우리의 지식과 능력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우리의 의지에 따라 매우 파격적으로 그리고 다방면으로 확장될 수 있다. 


    심지어 우리는 자연을 다스리는 것을 넘어서서 훨씬 더 중요한 일들을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자연의 법칙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우리는 그 자연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 그리고 타인에게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특수한 종류의 자유, 곧 선과 악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까지 부여받았다. 우리는 신으로부터 허락된 지식과 창조성을 통해 누군가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죽이지 않는 선에서 고통스럽게 만들수도 있다. 심지어는 그 모든 것들을 허락한 신에게 대항할 자유까지도 손에 쥐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신이 만든 땅과 하늘에서 보편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자연의 질서가 없었더라면 단 하나도 우리에게 주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이러한 기회들을 제공하기 위하여 우리가 발견하는 자연법칙들로 운행되는 세계를 창조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


    마지막으로, 이제 무신론이 설명하는 정밀한 우주의 존재 원인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고 우주라는 주제는 마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다룰 내용들은 다소 복잡하지만, 창조를 논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숙지해야 할 내용은 아니기에, 이 내용을 생략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간다 하더라도 이해에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리차드 도킨스를 포함한 여러 무신론자들은 정밀한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선택한 단어는 ‘우연’이었다. 특히 리차드 도킨스는 이 우연이라는 단어에 아주 긍정적이다.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매주 복권을 샀을 때에 여러 차례 당첨이 될 수 있듯이 이런 우연에 의한 사건들이 발생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함께 제시되는 개념이 바로 그 유명한 ‘다중우주론’이다. 흔히 멀티버스 (multiverse) 라고도 부르는 이 다중우주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와는 별도로 다른 우주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스티븐 호킹 또한 이 개념에 대해 분명히 얘기한 바가 있으며, 이 무한대에 가까운 우주들 중 한 곳에 생명을 지탱하기에 알맞은 조건이 갖춰졌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되었다는 것이 다중우주론을 기반으로 하는 설명이다. 몹시 설득력 있어 보이는 이론이며, 실제로 많은 현대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이 다중우주의 존재를 지지하며 지금까지도 그 이론을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이론을 반박할 증거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다중우주가 사실일 수 있다는 증거를 제시할 방법 또한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다중우주론도 결국 과학적 증거가 없는 하나의 생각이자 관념일 뿐이라는 것이다. 


    정말 만에 하나 다중우주론이라는 개념이 실재라 할지라도, 이를 믿는 무신론자에게는  여전히 극복하기 어려운 난제들이 남아 있다. 가장 먼저, 우리가 사는 이 우주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우주들이 존재한다고 믿는 이들은 그 다중우주가 우리 우주의 법칙과 동일한 형식의 법칙으로 운영되고 또 우리의 우주와 비슷한 종류의 물질만을 포함하고 있는지, 그게 아니라면 우리의 우주에서 작용하는 법칙과 전혀 다른 형식의 법칙을 따라 운영되고 또 우리의 우주와는 서로 다른 종류의 물질을 가지고 있는지를 선택해야 한다. 이에 대해 리차드 스윈번은 전자를 좁은 다중우주(narrow multiverse), 후자를 넓은 가능 다중우주(wide possible multiverse)로 구분짓는데, 둘 중 어느 편을 선택한다 할지라도 무신론자들은 어려운 난제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좁은 다중우주를 선택한다는 것은 곧 그 모든 우주에 속한 모든 물질적인 대상들이 서로 동일한 단순보편적인 힘과 성향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이 굉장한 사실에 대한 설명을 찾아야 한다. 수십억개도 넘는 수의 우주가 통일되고 보편화된 단순한 법칙들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일이다. 모든 우주가  아주 보편적인 법칙,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아는 뉴턴의 법칙과 같은 아주 간단한 과학적인 법칙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은 신적인 존재를 통해서라면 너무나도 쉽게 설명되지만, 신이 없다면 절대로 절대로 간단히 설명할 수 없다. 우리의 과학은 자연이 얼마나 질서정연한지를 아주 성공적으로 증명해주었다. 그러나 그 질서가 어떻게 그리고 왜 탄생하게 되었는지는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큰 주제이며, 이 주제 앞에서 과학은 멈출수밖에 없다.


    만약 넓은 다중우주를 선택한다면 어떨까? 넓은 다중우주론에서는 모든 우주가 우리의 우주와는 전혀 다른 물질들 그리고 전혀 다른 종류의 법칙들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런 우주들이 무한대라면, 우리의 우주와 비슷한 우주를 만드는 것 그리고 우리와 비슷한 인간이 존재하는 다른 우주들이 있을 가능성도 나름 주목할만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적이라는 단어보다 더 대단한 단어를 요구할 정도로 매우 엄청난 우주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다중우주를 다루는 영화들을 보면, 우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이 또 다른 우주에서 살아가는 장면들이 나오지만, 서로 각기 다른 자연법칙을 따르는 다중우주에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그 모든 우주들은 절대로 우리의 우주와 유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극악의 확률을 뚫고 생명이 발현될 수 있는 우주가 탄생한다는 점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생명이 탄생할 확률은 나중에 더 설명하겠지만 또 다른 극악의 확률을 지닌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우주는 그저 생각하고 판단하는 생명체를 만든 정도가 아니다. 설령 정말 엄청난 우연의 일치로 우리와 비슷한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주가 어딘가에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러한 우주에 살고 있는 인류는 자신에게든지 남에게든지 좋거나 나쁜 영향을 미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은 단단한 껍질 안에서 살기 때문에 서로에게 도움을 주거나 혹은 해를 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식량이 풍부하게 있어서 음식을 생산하기 위하여 협력할 필요도 없을 수도 있다. 아기들은 부모의 돌봄이 필요 없는 무성 생식의 방법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는 서로를 향한 자연적인 사랑과 도덕 감정이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우주에는 우리의 우주에 존재하는 고통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유형의 고통이 있을 수도 있다.(신은 존재하는가 pp.121)” 그런 우주에서 사는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는 굉장히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우주에 살고 있다. 그리고 만약 신이라는 존재가 우리의 우주를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었다면, 이 모든 사실들은 아주 단순하게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신에 의해 생성되지 않은 우주가 이렇게 만들어졌다는 것은 아주 개연성이 낮다고 볼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무신론자들은 또 다시 '우연'이라는 단어를 꺼낼 수밖에 없다. 그저 어쩌다가 우연히. 운좋게 이런 엄청난 우주가 탄생했고 또 우리가 그 행운의 주인공이라고 말이다.  


    앨빈 플란팅가는 결국 '우연'이라는 단어에 의존하는 다중우주론를 카드게임에 빗대어 설명한다. 포커 게임에서 카드를 돌리는데 매번 돌릴 때마다 유독 한 사람에게만 에이스 네 장이 계속해서 돌아온다. 함께 게임을 즐기던 사람들이 그를 향해 총을 겨누자 에이스를 받은 사람이 다급하게 말한다. “나도 알아! 스무 번 게임을 했는데 나에게만 에이스 네 장이 연속으로 나올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는건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우주가 있다고 생각해봐. 그 무수히 많은 우주에서는 어떤 패라도 나올 수 있어. 그리고 우리가 있는 이 우주가 우연의 일치로 어떤 속임수도 없이 나한테 계속 에이스 네 장이 돌아오는 우주인거야.” 물론 에이스가 한꺼번에 네 장 씩이나 묶인 패가 스무 번 연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사실상 기술적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그와 함께 게임을 한 사람들이 그의 속임수를 입증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가 그들을 속이지 않았다고 속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철학자 존 레슬리(John Leslie)도 이와 비슷한 예시를 든 적이 있다. 한 죄수가 총살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그 총살형을 집행하는데 무려 50명의 노련한 군인들이 참여했다. 그런데, 그 50명의 군인들이 2미터 남짓 되는 거리에서 죄수를 향해 총을 쏘았지만 모든 총알이 하나같이 빗나가고 말았다. 물론 아무리 노련한 사수라고 해도 가까운 거리에서 표적을 맞추지 못할 가능성은 있기 때문에 어쩌다 보니 50명이 동시에 못 맞추는 사태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설령 그들의 공모를 입증할 방법은 없다 해도 증거가 없다는 이유때문에 그들이 공모했을 리가 없다고 마무리짓는 것은 매우 비합리적인 것이다. 다중우주론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보니 우리가 이런 엄청난 가치를 지닌 우주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을 반박할 증거는 우리에게 없다. 그러나 그것을 반박할 증거가 없다고 해서 우주가 누군가의 설계에 의해 만들어졌을리가 절대 없다고 섣부르게 결론짓는 것 또한 비합리적이다. 



    해당 글은 원고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수정되고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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