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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Mar 28. 2024

일년간 쉬기로 했다.

내가 달려온 시간들.. 진급말고 휴직.

갑자기 눈물이 터져버렸다. 6년동안 애쓰며 일했던 내 모습이 고작 이런거에 부딪혀서 한계를 맞았나?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느 한 사건이 아닌 그동안 내 마음 속에 쌓이고 있던 생채기들이 이 사건을 기점으로 터져버린 것이다. 대리를 달고 과장을 달아야하는 시기가 왔는데 필요한 자격증을 아직 하나 못따고 있을 때 였다. 그래도 다른 지점과 비교했을 때 나보다 경력도 높고 나이도 많은데 아직 만년 대리로 남아있는 분들을 보면서 위안을 삼고 있었는데 그 분들이 갑자기 특별승진이 되었다. 나야말로 지금 대리직급 달고 그래도 이 작은 공간에서 제일 선임이라며 권한은 없이 온갖 실적과 수금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 .. 이 승진 공고문은 마치 물이 서서히 데워지다가 100도가 되어서 끓어오르는 끓는점과 같이 내 마음에 폭풍을 가져왔다. 그렇게 나는 곪아있다가 드디어 펑 하고 터졌다.


 20대에 남들보다 돌고 돌아서 애매한 경력을 쌓았고 서른이 된 해에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두 아이를 낳고 3년간 경력단절이 되어 나는 경력단절녀가 되었다. 게다가 아이들은 아직 너무 어려서 큰아이는 4살이었고 작은 아이는 이제 막 돌이 되었다. 그래도 육아에 지쳐있던 나는 한달에 백만원을 벌어 시터에게 백만원을 주더라도 일이 하고 싶어서 애기 엄마 향기를 풀풀 풍기는 그런 나를 받아주는 이곳으로 왔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워킹맘이 되었다. 그렇게 이 회사에 입사하였지만 지점이 생긴지 얼마 안되어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않았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신입인데다가 나는 경력단절에 워킹맘이라니...이곳에서 일하던 6년동안 나는 참 힘들었고 그만두고 싶었고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무수히 많았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하면 진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버티던 날들이었다. 그렇게 잘 버티던 내가 애들도 어느 정도 컷고, 일도 손에 다 익어서 내 집처럼 편하게 다니는 지금 번아웃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일단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매일 술과 야식을 참지 못해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더부룩함이 느껴져 전 날 과식한 내 자신을 혐오했고 늘어진 뱃살이 싫었다. 임신 이후로 최대치의 몸무게를 찍은 시점이었다. 회사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에 많이 가라앉았다. 과장 진급을 목표로 달려야 하는 시기에 나는 달릴 수 있는 에너지가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잠들기 전까지 타인들에 의하여 사는 기분이다. 회사, 아이들, 남편, 부모님 모든게 굴레처럼 느껴졌다.  '나'라는 사람은 없고 누군가에 대한 역할만 남아 내 자신은 빈껍데기 같았다. 작은 사무실 그 공간에서 권한도 자신감도 없는 선임 역할을 하고 가정에서는 엄마 역할, 아내 역할, 며느리, 딸로써의 역할과 존재.. 나만의 시간을 갖는것이 사치처럼 느껴졌다. 거기에 진급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니 미칠것만 같았고 가슴이 답답하고 하루 하루가 무기력하고 무가치했다.


 나 좀 그냥 제발 내버려두라고 소리치고 울고 싶었다. 이대로 계속 지내다가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도망쳐버릴 것만 같았다. 밤마다 울었고 이불속에서 일어나려는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누워있으면 땅속으로 꺼지는 느낌이 들었고 살기 싫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날 보니 스스로 무서워졌고 당장 돈보다 경력보다 내 건강이 중요했다. '마음 건강'을 챙겨야했다. 그래서 나는 치열한 고민 끝에 휴직을 선택했다. 이 결정은 정말 나만을 위한 결정이었다. 잃어버린 내 자신을 찾기 위해서 휴직 일년 동안은 오로지 '나'만을 위해 시간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고 고생한 나에게 일년의 시간을 선물로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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